본능에 이끌려 향수를 완성해 나가던 그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향수를 만들기까지 희생된 여인은 모두 13명. 머리카락과 피부에 남아있는 체취를 몇 방울의 향수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잔인하지만 탐미적으로 그려진다. 거리의 여자부터 수녀, 쌍둥이 자매와 귀족의 딸까지 다양한 부류의 체취를 농축시킨 그의 향수는 단 한 방울만으로도 상대방을 매료시키는 힘을 발휘하고, 교수대로 향하는 그르누이의 생명까지 구한다. 전설 속에 내려오는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향을 재현하고자 했던 한 남자의 욕망은 우발적 살인과 필요에 의한 죽음을 반복하지만 결코 거북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스크린 속에 보여지는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와 섣부른 군중심리만이 관객들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할 뿐이다.
향수의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 향기의 지속성처럼 점차 진한 욕망의 향기에 취하게 만드는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향기가 느껴지는 영화로 완성돼 15년 동안 판권을 팔지 않았던 원작자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소설 ‘향수’의 파격적인 결말 또한 유럽 최고의 무용단이 참여해 아름다운 군무(群舞)로 표현돼 장르를 뛰어넘는 예술성을 선보인다. 베스트 셀러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가진 독자들의 지나친 충성도조차도 단번에 매료시킬 <향수…>는 ‘추하고 더럽게’ 그려진 소설 속 그르누이가 원작과 달리 가냘프고 선이 유약한 남자로 그려졌다는 것 빼고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조차 길지 않게 느껴진다.
벤 위쇼가 자신의 향수를 완성시킬 로라 (레이첼 허드우드)를 바라보는 눈빛연기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치명적 외모를 지닌 그녀의 아름다운만큼이나 강렬하고 더스틴 호프먼의 출연은 잠깐이지만 영화의 무게감을 더한다. 영화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향수…>는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영화적 상상력이 원작의 명성을 어떻게 이어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선례다.
2007년 3월 22일 목요일 | 글_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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