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영화제는 그의 초기작 <도시의 앨리스>, <시간의 흐름 속으로> 등 미개봉작 4편과 <파리, 텍사스>,<돈 컴 노킹> 등 개봉 작 6편으로 짜여져 있다. 10편의 영화 중 특히 애정이 갖는 영화를 추천해 달라는 질문이 나오자 “<베를린 천사의 시> <더 블루스: 소울 오브 맨> <랜드 오브 플렌티>를 뽑으려고 했는데 다른 작품들이 모두다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웃음) 영화라는 게 아이와 같아서 그 중 한 편을 고르라고 하면 많은 죄책감을 느낀다. 아무래도 성공하지 못한 영화들에 애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라며 자신의 속내를 밝히기도. 10년간 함께 작업한 한국인 PD덕분에 한국 음식을 즐겨먹고 특히 불고기에 중독됐다고 밝힌 빔 벤더스 감독은 100번째 영화를 찍고 있는 임권택 감독의 소식을 들었다면서 “지금껏 30편의 작품도 겨우 찍었는데 100편이라니 앞으로 60년은 더 살아야겠다. 정말 존경스럽다.”고 말해 평소 한국 영화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숨기지 않았다. 3월 15일부터 5월 9일까지 두 달간 진행되는 ‘빔 벤더스 특별전’은 서울 시네코아를 시작으로 부산 광주 대구 대전에서 열린다.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www.spongehouse.com) 참조하면 된다.
다음은 일문일답
-당신의 작품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번은 들어볼 만큼 유명하다. 자신의 영화가 한국에서 왜 인기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마도 내 영화를 본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참 이상하게 난 독일감독인데도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유명한 케이스다(웃음)<베를린 천사의 시>같은 경우에는 아시아에서 더 큰 성공을 거뒀다. 독일 속담에 '예언자는 자기 나라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내가 그런 것 같다. 내 영화가 덜 독일스럽기 때문인 것 같다.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를 많이 만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음악은 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21살 때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영화를 너무 찍고 싶었지만 카메라가 없었다. 마침 전당포를 지나는데 꿈에 그리던 60mm 카메라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가격이 너무 비싸 살수가 없었다. 마침 꽤 좋은 테너 색소폰을 가지고 있던 터라 그걸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니 마침 그 가격과 똑같아서 카메라와 색소폰을 맞바꿨다.(웃음) 그 죄책감 때문에 음악을 다룬 영화를 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독일인이면서 미국과 유럽 사회의 문제에 더 집중하는 것 같다.
어린 나에게 미국은 약속의 땅이었다. 허클베리 핀이나 톰 소여 같은 만화를 즐겨보고 팝송을 듣고 자라면서 어른이 돼서는 가서 확인을 해봐야겠단 생각을 하기도 했다.또 실제로 15년을 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미국은 약속의 땅이 아니다. 내가 찍은 영화 중 이런 대사가 있다 “양키들이 우리의 무의식을 식민지화했다.”라는. 미국에 대한 나의 감정은 <랜드 오브 플렌티>에 잘 나와있다.
-영화를 찍으면서 세계를 많이 여행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어떤 영감을 얻었나?
아무것도 없었던 곳에 큰 도시가 생겨버렸다. 일단 큰 차부터 몰고 보잔 식인 것 같아 깜짝 놀랐다. 지금 당장 장면을 생각해내라면 핸드폰을 들고 운전을 하는 사람들이 주차공간을 찾아 헤매는 신이다. 그 중 한 명은 발레파킹을 해주는 사람일 테고. 너무 마음에 드는 차를 발견하고는 그대로 시골길을 내달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내가 만약 그 역할을 한다면 차는 분명 벤츠(Mercedes-Benz) 일거다(웃음)
-한국영화 중 인상 깊은 작품이 있다면?
두달 전 <그때 그 사람들>을 보고 너무 놀라서 어제 임상수감독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실제 사건을 너무나 재미있게 그려냈는데 흥행결과를 듣고 약간 놀랐다. 얼마 전에는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봤다. 유명 영화제에서 많은 수상을 하는 만큼 더 많은 발전을 거듭할 거라 생각한다.
-차기작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앞으로 개봉할 영화는 2편이고 한편은 쓰고 있어서 밝히기가 그렇지만 올해 말 이태리에서 촬영을 시작할 것 같다. 내년에는 독일어로 만든 영화를 찍는다. 2002년도에 촬영한 <퀼른에의 송가>는 독일 내에서도 자막이 필요할 정도로 지금은 쓰지 않는 고대 방언으로 이루어진 영화였기 때문에 독어로 만드는 영화는 아마도 12년만인 것 같다. '국경 없는 의사회'을 통한 다큐멘터리 <인비저블(The Invisible)>를 찍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한국에서 꼭 개봉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5명의 감독이 아프리카에 대한 5가지 이슈를 제기하는 영화인데 나는 아프리카 여성들이 겪는 일상적인 폭력에 초점을 맞췄다.
2007년 3월 15일 목요일 | 글_이희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