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서 산다‘는 말은 <씨인사이드>의 라몬(하비에르 바르뎀)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수심을 알 수 없는 바다에서 다이빙했다가 목이 부러지는 바람에 목 아래로는 움직이지 못해 침대에서 여생을 보낼 수 밖에 없는 라몬은 안락사를 갈구한다. 하지만 법정은 안락사를 인정하지 않고 그는 자신의 죽음을 위한 소송을 불사한다.
실제 인물인 ‘라몬 삼페드로’의 이야기를 극화한 <씨인사이드>는 <떼시스><오픈 유어 아이즈><디 아더스>등을 통해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아우르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 감독의 2005년작이다. 당시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비롯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의 외국어영화상을 휩쓴 사실은 이 영화의 작품성에 대한 보증과도 같다. 일단 영화에서 안락사에 대한 찬반 논쟁이 드러나긴 하지만 본질적으론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의지에 대한 고찰에 가깝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매기가 죽음을 갈구하듯 라몬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삶에 대한 회피가 아닌 삶에 대한 욕망 탓이다. 그는 상상을 통해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으로 날아가고 움직인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이뤄질 수 없는 현실이자 벗어날 수 없는 꿈이다. 사랑하는 이와 1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있지만 그 1미터는 그녀에게 다가갈 수도, 만질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거리다. 결국 현실은 그에게 1미터의 자유조차 용납하지 않는 잔혹함일 따름이다. 물론 그에게는 매일같이 찾아주는 친구도 있고 그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주는 가족도 있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자유가 없는 삶은 삶이 아니야.”라고. 라몬은 26년 전 자신의 삶을 결정지어버린 깊은 심해에 대한 충동적 열망처럼, 삶의 무력함으로부터 침전해 갈 수 있는 죽음을 갈구한다. 죽음으로써 삶의 극단적 의지를 실천하려는 그 남자의 의지는 지지되기도 하고 부정되기도 하지만 그와 무관하게 남자는 그저 묵묵히 죽음을 꿈꾼다.
<씨인사이드>는 침대 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삶을 미화하지도 동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그 남자의 선택 자체를 주목하고 존중할 뿐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때론 인간 본연의 가치를 근엄하게 부각시키지만 삶에 대한 지독한 의무감을 부여하기도 한다. 사실 인간의 생이 스스로의 선택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담긴 의지는 죽음의 선택에서 증명될 수 있지 않을까. <씨인사이드>는 그렇게 인간의 존엄성을 뒤집어 구현한다.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있는 극단적 포기를 통해 인간이 지닐법한 극한적 의지를 역설한다.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소재를 일상적인 정경에 담아냄으로써 논쟁의 여지보다는 소박한 감성을 일깨운다. 어차피 옳고 그름의 판단이 확실할 수 없는 관념이기에 논쟁은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그 불확실한 선에 명확한 잣대를 내리는 것은 인간의 의지이자 선택이다. <씨인사이드>는 그런 선택을 존중한다. 그리고 그 선택의 끝에 눈물이 발견되는 것은 죽음이 이별의 정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씨인사이드>는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되어야만 지켜지는 것인가에 대한 조용한 반문이자 동시에 한 인간의 선택에 대한 숭고한 목격을 담담하게 담아낸 명백한 수작이다. '살아있다'와 '살고있다'의 뉘앙스가 지닌 미세한 차이를 존중할 줄 아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투명한 감동을 줄 것이다.
2007년 3월 8일 목요일 | 글: 민용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