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미 4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스크린에 옮겨진다고 해서 사형수(강동원)가 다시 재판을 받아 살아나거나, 어린 시절 몹쓸 짓을 당한 유정(이나영)의 기억이 지워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으니까. 그러나 이 영화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그 ‘찬란한 기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세 번의 자살시도를 한 여자와 거친 삶을 전전하다 세 명을 죽인 살인자로 곧 사형을 앞둔 남자의 사랑은 어차피 어울리지도, 이뤄지지도 않는다. 만났다는 사실 조차 ‘기적’일 만큼 묘한 인연으로 마주 선 두 사람의 상처는 ‘죽음’을 갈망하는 공통점으로 서로를 보다듬고, 변화시킨다.
어울리지 않는 연인들의 슬픈 사랑은 한국 멜로의 뻔한 소재였지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함은 법과 가족이란 테두리에서 보호받지 않고, (되려 상처받았고) 이미 갈라져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뭔가를 해결하고 치유 받는 익숙한 전개과정보다는 내면의 슬픔과 상처를 고스란히 내보임으로써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세상의 진리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오해와 가식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배우들의 연기는 원작에서 보여진 진하고 깊은 슬픔을 조금씩 희석시켜 영화만의 장점으로 승화시켰다.
나약하고 선이 고운 두 주연배우의 고정된 이미지는 한 화면에서 묘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이별을 앞둔 서로의 감정과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어색하지 않게 드러낸다. 그 감정선을 한정된 공간에서 지루하지 않게 잡아낸 송해성 감독의 연출력은 공지영 작가가 깊은 신뢰를 보인 만큼 원작의 슬픔과 진한 감동을 별무리 없이 담아내는 것으로 보답했다. 이 영화는 단 한번의 키스와 포옹 없이도 진실한 사랑할 수 있다는 가설을 화면으로 증명한다. 상처와 용서를 다룬 휴먼드라마의 모습으로 사랑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담아낸 특별함은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마지막 장면에서 충분히 빛난다.
정작 되돌아보면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 ‘타인’이 아니라 ‘가족’ 이였던 건 그만큼 그들을 사랑해서였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너무나 소중했기에 더 큰 상처를 받았고, 믿었기에 더욱 아파한 나약한 영혼들의 진실된 이야기를 담아 가장 챙겨야 할 사람은 바로 내 자신이란 걸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기적 같은 영화다.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픽션의 형태를 빌려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했으니 말이다.
2006년 9월 4일 월요일 | 글_이희승 기자
☞ 얄밉도록 선남선녀! 강동원 이나영 현장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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