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원수처럼 싸우다가도 금방 풀어져 친구처럼 자잘한 수다를 나누는 모녀지간 과는 달리 한번 등을 돌리면 그 서운함에 평생을 안보게 되는 비극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 거리감은 세월이 지날수록 멀어지다가 어떤 극적인 계기가 생기고서야 가슴의 응어리를 풀고 인생의 동반자로 서로를 인정하게 되는 동지애를 발견해 내는 게 부자지간을 다룬 영화의 뻔한 수순이었다.
영화 <원탁의 천사>는 그런 동지애를 채 발견하기도 전에 아니, 막 형성되려는 기회가 주어지려는 찰나 아버지의 어이없는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사기 전과 3범인 강영규(임하룡)는 출소 하루 전날 뇌진탕으로 죽게 되고 아버지가 감옥에 있는 동안 거칠게 자란 아들 원탁(이민우)에게 단 한번이라도 친구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을 데리러 온 천사에게 부탁해 아들또래의 나이로 환생하게 되는 것.
불고기 버거를 찾는 아들뻘 친구들에게 ‘햄버거 집에서 왠 불고기?’라며 박장대소하고, 씨디 구워오란 말에 연탄불에 CD를 올려놓는 무늬만 10대인 40대 아버지 동훈(하동훈)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싸움만 해대는 아들의 곁에서 ‘부모’가 아닌 ‘친구’의 존재로 남아있으려 애쓴다. 자식의 입장에서 본 학교는 배움의 터전이 아닌 폭력과 편애가 난무하는 거친 세상이다. 그 안에서 언제나 어린 줄만 알았던 아들은 남자로 커가기 위해 거친 신고식을 치른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에는 그걸 대신 하는 모성이 있고, 아버지와 닮은 남자를 사랑하게 되는 딸의 심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삽입하려는 권성국감독의 의도는 ‘가족애’라는 울타리에 포함되지도, ‘부성애’로도 묶이지도 않는 결과를 초래했다. 영규에게 기회를 준 천사도 이번 기회에 제대로 된 부모역할을 하려 드는 것과 한물 간 조폭 석조(김상중)가 죽음의 끝에서도 남성의 본능을 포기하지 못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여전히 부성을 토대로 남자만의 이야기를 담고자 하는 욕심을 드러낸다. 특히 연기에 몰입하려 애쓰는 새내기 연기자 이민우의 진지함은 상황을 겉도는 대사처리로 되려 웃음을 자아낸다.
이미 여러 편의 영화에서 조연급 연기를 뽐낸 하동훈만이 연기의 맥을 이어나가며 영화를 이끌어나가고, 망가진 조폭 보다는 함량미달의 천사역할이 더 잘 어울리는 김상중과 회상장면만으로도 그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임하룡의 연기내공이 <원탁의 천사>가 가진 유일한 장점이다. 세대유별에서 오는 웃음요소들은 억지설정에서 오는 실소들을 채우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인생은 아름다워>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려던 연출의도는 ‘감동’보다는 ‘웃음’에 중심을 둔 장르적 한계에 부딪혔지만 가수 출신 연기자에게 쏟아지는 비난 속에 출발한 이민우의 연기도전이 덧없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주는 극적인 요소만큼은 잘 살려냈다.
2006년 8월 17일 목요일 | 글_이희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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