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졸업한지가 언제이던가?! 공부에 담쌓고 지낸 3년 세월의 공을 하늘이 아셔서 친구들 특별전형으로 명문대 합격통지서 미리 받은 날, 본 기자는 청량리 입시명가 XX재수학원 등록했다. 그 오욕의 시간들이 뼈마디에 사무쳐 지금까지 모교 근처에 얼씬도 안했건만, 영화 <왕의 남자>로 한 순간에, 내 맘대로 ‘내 남자’가 돼버린 이준기가 남부터미널 근처에 있는 서울고등학교에 등교한다는 정통한 소식을 전해 듣고, 그날 오후 4시 부랴부랴 고등학교 재입학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모교는 아니었지만 십수년만에 방문한 고등학교는 주마등처럼 그 시절의 청춘과 낭만을 돌려주기는커녕, 영화<플라이 대디>의 과열취재경쟁으로 벌써부터 혼잡 그 자체였다.
39살 먹은 대한민국 대표 소심가장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 <플라이 대디>(제작:(주)다인필름 제공:(주)아이엠픽쳐스)는 딱 봐도 소심하게 생긴 이문식을 소심가장 ‘장가필’로 캐스팅한 후, 그에게 절대고수의 무공(?)을 가르치는 19살 먹은 스승 ‘고승석’ 캐스팅에 골머리를 앓았다. 그때 <왕의 남자>로 한국영화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이준기가 <플라이 대디> 쪽에 적극출연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애늙은이 고승석이 맡겨졌다고 한다.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이 당시 이준기가 지금처럼 시쳇말로 완전 뜬 상태가 아니고 매일 주가상향곡선을 치던 때라 현재의 인기 값에는 조금 못 미치는 개런티로 그를 영입할 수 있었다고 관계자는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다. 한 마디로 이준기가 복덩이란 게지.
아니나 다를까? 이날 촬영이 진행되는 서울고등학교 체육관에는 평소 얼굴보기 힘들었던 다양한 매체의 여기자들만 유독 우글우글 집합해 있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을 하며 능청스레 친한 여기자에게 말을 건넸더니, 돌아오는 말 차마 밝히기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다. 그러나 쪽팔림을 무릅쓰고 함 공개해 볼란다.
“어머~ 현장에 잘 안 나오는 최기자님이 여기 웬일이래? 어머! 화장까지 하셨네(호호~). 기자님도 이준기 보러 왔구나? 나도 이준기 아니었으면 안 왔어.”
그녀의 말에 적극 동의를 표하자, 그때부터 취재는 뒷전이 되고 세끼 굶은 하이에나처럼 청각과 후각을 곤두세워 이준기의 흔적을 찾기에 여념이 없게 돼버렸다. 삼삼오오 짝을 이뤄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체육관으로 들어가 보니 예상치 못한 장애가 우리 앞을 말 그대로, 가로 막고 있었다. 실제 고등학생인지 아닌지 지금까지 확인 불가능한 40~50명 되는 교복 입은 남학생들이 사각의 링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것도 모자라 체육관은 온통 안개에 휩싸여 있더란 말이다. 체육관 한 귀퉁이에서 한 스텝이 흰 뿌연 연기를 뿜어내는 기계를 연신 돌려대고 있는 걸 보니 이날 촬영은 이런 침침한 분위기에서 진행되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그렇지 넘 한 것 아니여?!
이준기가 온 몸을 던져 액션을 펼친다는 사각의 링은 겉만 고등학생이었지 덩치는 천하대장군급인 장정 남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지 않나, 그것도 모자라 안개효과 살린답시고 체육관 안은 달랑 천청에 세운 조명만 킨 채로 진행하다니, 취재의 어려움을 떠나서 우리 준기 얼굴이 잘 안 뵈이자너! 맘 맞는 타매체 여기자들과 분통을 터트리며 체육관 관람석에 억지로 앉았지만 이준기에 대한 끓어오르는 애달픔은 쉽사리 진정이 되질 않았다.
여기서 잠깐!
이날 본인만 사심을 드러내고 취재에 열을 올린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많은 기자들은 이날 이준기를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기 위해 치열하게 몸싸움을 벌일 정도였다. 영화<플라이 대디>에 대한 관심보다 이준기에 대한 관심이 높은 촬영장공개라는 게 아쉬움이 남지만 <왕의 남자>로 시대의 아이콘이 된 이준기의 인기는 그의 차기작 <플라이 대디>가 개봉했을 때 흥행적인 면에서 분명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듯 긴장된 촬영장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취재에 나선 기자들은 곧 사각의 링 위에 등장할 이준기를 기다리며 그에 대해 수다 떨기에 여념이 없었다.
본 기자: 나 얼마 전에 이준기 팬클럽에 가입했잖아.
타 매체 기자1(이하 기자1): 하하~ 기자님 그거 너무 오바 아니유?
타 매체 기자2(이하 기자2): 어머 무슨 말씀이세요? 저도 가입했어요.
본 기자: 자기도 가입했어?!(호호) 역시.
기자2: 오늘도 우리 편집장님이 다른 사람 나가라는 걸 우겨서 제가 나온 거여요. 이준기 자체만으로도 뉴스 꺼리가 될 정도니. 물론 오늘 여기 온 건 내 개인적 사심이 강해서지만 서리(호호~)
본 기자: 나도 그래. 사실 일을 떠나서 이준기 너무 괜찮잖아. 저번에 우리하고 인터뷰 했을 때 보니깐 나이도 어린데 어찌나 똑똑하고 예의가 바른지.
기자1: 사실 저도 그래요.(헤헤) 오늘 잘 취재해서 이번 영화 홍보 때 인터뷰 잡아야 하거든요.
기자2: 우리 편집장은 저보고 제발 사심을 버리고 취재 좀 하라고 만날 닦달이야. 우리도 인간인데 맘 가는 배우가 있는 게 당연하지 않아요?
본 기자: 맞아. 나도 오늘 이준기 아니었으면 안 나왔어. 밀린 기사가 산더미인데. 우리 취재팀장도 매일 나보고 꽃미남 배우에 대한 개인적 취향 좀 버리라고 충고해.
기자1: 그런데 최기자님 아무리 사심이 들어간 취재라고 해도 이준기하고 기자님하고 나이 차가 얼마인데. 좀 너무하단 생각 안 들어요?
본기자: 어머 내 나이가 어때서? 나 아직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아~ 죽지 않아~
기자1, 기자2: (동시에) 기자님 다 좋은데, 그 똥배는 가리고 말씀하세요. 앉아 있으니깐 앞뒤로 살들이 다 튀어나왔어요.
본 기자: 그래 이것들아~ ㅠㅠ 나, 우리 준기랑 나이차가 10년지기다. 우짤래?
뭐 대충 이런 수다를 떨었다 정도이니 큰 오해 없길 바라며 기자들끼리 오고 간 대화를 거짓 없이 정리해 봤다. (여)기자들의 수다가 한창 무르익어 갈 때 드디어 이준기가 사각의 링 위에 올라섰다. 강렬한 오렌지 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이준기에게서 예전 공길의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는 변해 있었다. 눈을 가리는 긴 앞머리 사이로 예리하게 빛나는 눈빛은 삶과 사랑에 애달파하던 공길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독기와 거만함으로 무장한 이준기는 19살에 인생과 싸움에 통달한 고승석으로 완벽 변신해 있었고 전에는 미처 알아보지 못한 남성미마저 엿보였다. 그의 이런 변화에 거기 모인 여기자들 본인 포함, 사실 많이 자지러졌다.
곧 이어 이준기의 거친 액션이 장렬했고 여기저기서 카메라 후레쉬가 터졌다. 그럴수록 현장은 더욱 더 긴장감에 싸여갔다. 모든 이가 링 위에 펼쳐지는 액션에 시선을 모으고 있을 때, 관람석 뒤편에 이문식이 나타났다. 후배 연기자의 액션 연기를 보면서 흐뭇해하는 그의 표정을 보니 <플라이 대디>가 무척 좋은 현장분위기에서 진행됨을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어찌됐든 이준기의 거친 액션 씬이 끝나고 드디어 이문식이 링 위에 등장하는 장면이 촬영에 들어갔다. 이문식은 ‘장가필’로 분하기 위해 몸무게를 12kg 감량했다. 그의 이런 노력은 오늘의 장면을 위해 준비한 것이기 때문에 이문식은 꼼꼼히 자신의 연기반경을 체크하기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언론에 공개될 장면 모두가 무사히 촬영을 마친 후, 곧바로 서울고등학교 시청각실에서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조금이라도 이준기 얼굴 가까기 보고 싶은 마음에 득달같이 이동했건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시청각실에는 20여명의 기자들이 맨 앞자리를 벌써 선점한 뒤였다. 어떻게든 앞자리에 앉으려고 요리저리 위치와 각도를 재가면서 자리를 살펴보고 있던 중, 나머지 기자들이 한꺼번에 간담회 장소로 몰려들었다. 촬영장에서 같이 수다 떨던 기자들이 “최기자님 뭐야~ 그렇다고 혼자 바람처럼 뛰어가냐”라는 원망 섞인 목소리로 쪽을 주건 말건 일단, 그 순간 본 기자에게는 남아 있는 자리 중 최적의 자리를 선점하는 게 중요한 일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높이와 각도가 최적인 맨 뒷자리에 꼽사리 앉게 된 본 기자 취재노트를 꺼내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사실, 눈치보다 좋은 자리 다 놓치고 맨 뒷자리에 앉게 됐지만 서도 이 당시 본 기자 뒤로 영화제작사 대표와 이준기의 매니저가 앉아있었더랬다. 열심히 취재하는 척 가열차게 취재노트에 무언가를 끼적인 것도 다 훗날 이준기 인터뷰를 잡기 위한 포섭의 제스처였다는 말씀. 속으론 ‘우하하~ 역시 난 앞날을 내다볼 줄 아는 기자야. 이때 잘 보여야 돼’ 이런 말도 안 되는 자뻑에 빠져있었단 뜻이지 일에 있어서 특종 잡을만한 급반전은 사실 없었다, 아니 없는 게 당연하지. 그래도 ‘촬영장 공개가 다 그렇지’하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해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 말을 듣자마자 넋이 빠져버려 엉덩이를 의자에서 뗄 수가 없었다. 주옥같은 명질문을 준비했건만 꽃망울 한 번 터트리지 못하고 봄철 황사에 시들어버린 꽃처럼 축 늘어진 본 기자를 이날 누가 봤어야 한다. 정말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의 한 대목 그대로였다. ‘시간을 돌려도~’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사회적 명성과 품위 때문에 굳건함 결심 금방 접었다. 빠른 포기와 동시에 배 안에선 꼬르륵 소리가 밥 때를 알리는 신호를 주자, 이번에도 역시 득달 같이 저녁 식사가 준비된 식당으로 가장 먼저 내달렸다.
김형준 영화사 대표가 따라주는 달달한 반주(飯酒) 를 벗 삼아 이날 <플라이 대디> 촬영장 공개는 이렇게 무사히 마무리 되는가 싶었다. 약간 취기가 오른 본 기자, 결국 이날 사고치고 말았다.
새벽 1~2시까지 서울고등학교 체육관에서 <플라이 대디> 촬영이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혼자 남아 단독취재를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 영화 관계자들을 당황케 한 것도 모자라 굳게 닫힌 교문을 몰래 월담하려는 만행을 저질러 사람들을 아연실색케 만들었다.
어떻게든 무비스트 회원들에게 이준기와 이문식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픈 마음과 본분에 충실한 기자열에서 발생한 일이니만큼 다들 이해해주시리라 믿는다.(어디서 돌날라오는 소리가 텅~) 같이 취재에 나선 권영탕 사진기자가 본의 아니게 땡깡을 피운 본인 때문에 이날 많이 고생했다. 더불어 관계자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 전한다.
<플라이 대디>는 현재 80% 분량의 촬영이 진행되었으며 올 여름 개봉예정이다.
취재: 최경희 기자
사진: 권영탕 사진 기자
☞ 이준기 달라진 모습 포토갤러리에서 확인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