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연일 관객들의 높은 호응을 끌어내면서 무사고 4일째에 접어들었다. 성공가도를 달리는 이 작은 축제의 자리에 한 중년의 아저씨가 눈에 띄는 초록색으로 무장한 페리카나치킨 쇼핑백을 들고 홀연히 나타났다. 그는 쇼핑백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그 뒤로 몇 시간째 계약서처럼 보이는 흰 종이를 읽으면서 혼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그의 요지부동한 행동에 영화를 보기 위해 찾아온 관객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쳐다봤고, ‘사채업자 아닌가?’하는 의혹을 증폭시켜 나갔다. 이 중년의 아저씨는 낙원상가 옥상에 당당하게 써 붙은 경고문구를 못 본 게 분명하다.
“사채업자 출입금지!”
“여기는 영화를 보기 위한 장소입니다. 사채업자는 출입이.........??” (속으로는 이 말을 외쳤다. ‘누구냐 넌?’)
고개를 들고 오히려 더 의아한 눈빛으로 본 기자를 쳐다보는 중년의 아저씨.
허걱~ 저 눈 밑에 깊게 그려진 다크써클과 사람 좋아 보이는 입매, 낯설지가 않다. ‘어디서 봤더라??’ 본인의 이런 맘을 눈치 챘는지 이 아저씨 기분 좋게 대답해준다.
“아~ 경희기자님 아니세요? 김홍준입니다.”
망했다!! 김홍준이 누구더냐. 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집행위원장이었고, 리얼판타스틱영화제 운영위원장을 역임한 현 영상원 원장이신 그분이 아니시던가. 하나 더 있다! 지금은 YB밴드로 이름 바꾼 윤도현밴드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한 전설 속의 영화 <정글스토리>의 감독이 아니시던가 말이다.
한국영화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김홍준 감독에게 사채업자라는 오명을 씌우다니, 아무 곳이나 들이미는 오지랖 넓은 사명감이 결국 일을 치르게 만든 것이다. ㅠㅠ;;
죽을죄를 인정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기자에게 김홍준 감독 괜찮다며 살갑게 대해준다.
“오늘 유현목 감독의 <춘몽>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자리를 가졌어요. 혹시나 영화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다면 여기 앉아 있을 테니 물어보라고 관객들에게 말했죠. 허허~ 여기에 앉아 있으니 정말 사채업자처럼 보이긴 하나보네요. 하하~”
<춘몽>을 복원해 상영까지 하게 만든 장본인으로서의 애정도 느껴지지만 관객들과의 작은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김홍준 감독의 영화 사랑이 느껴진다. 그렇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런 기능을 담당하는 곳이다. 영화를 보고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 영화를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체험하게 해주는 장소. 김홍준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로 이 자리를 조용히 지켜주고 있었다.
사족이긴 한데, 본 기자 자랑질에 썩 재능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오늘따라 꼭 하고 싶다. 김홍준 감독이 들고 온 페리카나치킨 쇼핑백 안에는 기자에게 주고 싶어 가지고 온 책과 탁상용 캘린더가 들어있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공식 데일리를 하고 있는 무비스트에게 전한 그만의 작지만 정성스런 선물. 부럽지?(호호~) 정말 으쓱으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감독님, 잘 읽을게요~~”
취재: 최경희 기자
사진: 권영탕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