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영화제] 오해와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고픈 극장을 ‘박찬욱’ ‘황정민’이 돕는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Les amis de la Cinematheque 영화제' | 2006년 1월 18일 수요일 | 최경희 기자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Les amis de la Cinematheque 영화제' | 2006년 1월 18일 수요일 | 최경희 기자
사실, 이 바쁜 세상에 재미다고 소문 팍팍난 <왕의 남자>도 볼 시간 없는데 상영시간, 상영횟수 일일이 확인하면서 영화제 시간표에 맞춰 영화 보러가기는 어불성설, 귀머거리 귀 파는 소리만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 간절히 당신네들의 발걸음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이제나 저제나 내 님 오실까나 하면서 관객을 기다리는 한 작은 극장이 있다.
영화 낙원을 꿈꾸며 그 유명한 돼지골목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구 허리우드 극장의 시네마떼끄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가 바로 망부석처럼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그 작은 극장이다. 한국영화가 경쟁하듯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을 때, 이 작은 극장은 어디가서 이런 물건을 찾아오나 싶을 정도로 오래되고 낡은 필름을 구해와 많으면 200명 적게는 단 몇 사람의 관객을 위해 구닥다리 영화를 365일, 날이면 날마다 연일 틀어댄다.
문화가 점차 계급을 대신 말해주는 향유의 대상이 되는 시점과 궤를 같이하며 영화는 모든 계층에서 소비할 수 있는 대중적 오락물로 너무나 탄탄히, 오바스러울 정도로 빠르게 자리 잡아 갔다. 요즘 같은 풍토로 봐서는 ‘아트시네마’의 작은 행보는 뭔가 있는 ‘척~’하기 좋아하는 일군의 무리에게나 환대받으며 고상한 영화관람 취미를 만족시키는, ‘소비’ 그 이상의 의미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이게 다 오해란 말씀! 그래서 ‘서울아트시네마’는 억울하단다.
그 오해에서 비롯된 편견을 깨부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건만 돼지골목으로 거처를 옮긴 이후부터는 그마나 찾아오던 고급문화(?)의 향유자(일명 ‘척’꾼들)들도 발걸음을 끊었다. 결국, 억울하다고 일일이 사람들 붙잡고 얘기하기도 이제는 지쳐간다고 한다.
정확히 말해서 인사동 정독도서관 앞에 서울아트시네마라는 간판을 걸고 영화를 상영할 때는 그 동네 환경이 좀 ‘우아’해서인지 몰라도 묵은지 마냥 시간의 스크래치가 난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그나마 있었는데 낙원상가 구 허리우드 극장으로 이사 오고 나서부터 그들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대체 그들은 어디로 떠난 걸까? 궁금타~
하여튼, 본 기자 소실적 서울아트시네마를 제집 드나들 듯 찾아가던 시절이 있어 잘 아는데, ‘서울아트시네마’에 관련한 몇 가지 편견은 정말로 오해긴 오해다! 한 점 부끄럼 없이 우리들이 ‘몰라서’ 가지고 있는 그곳에 대한 오해를 오늘 지대로 풀어볼란다.
☞ 첫 번째 오해: 유명 영화제에서 상 탄 예술영화만 틀어댄다?
한마디로 이 첫 번째 오해는 극장이름 때문에 생긴 오해다. 요놈의 ‘아트’자만 들어가면 사람들은 자기 영어실력 무시하고 바로 직독으로 들어가 ‘예술’로 풀이한다. 물론 art, 사전에도 떡하니 명시돼 있듯 ‘예술’ 맞다. 그런데 예술의 범위는 광범위하고 난해하다. 허영만의 만화 「타짜」에선 48장 화투장 꽃무늬 그림들도 예술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왜냐고 반문하신다면, 예술은 보는 이의 정서를 흔들어줘야만 예술로서 제 기능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족이 길어지긴 했는데 본론을 얘기하자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영화들, 태어난 연령층이 높아서 그렇지 소위 아트무비만 틀어주는 곳이 아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복식호흡을 한 다음 천천히 과거의 일을 떠올려보자. 토요일 밤마다 부모님 눈치 보면서 즐겨봤던 ‘토요명화’가 기억나는가? 툭하면 그 TV프로에서 <황야의 무법자>를 틀어줬는데, 기억나지? 현재 나이가 10대가 아닌 이상 <황야의 무법자>를 대부분 텔레비전에서 봤을 것이다. 어린 맘에도 주연을 맡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얼마나 근사해보였던지 지금도 그 황야를 배경으로 애마부인 돼보는 게 소원일 정도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지금같이 영화가 모든 이에게 오락물로 대접받기 이전에 만들어진 재미난 영화를 고르고 골라 엄선해 상영하는 유일무이한 곳이다. 그 시대를 대표할 만한 상징성과 세대가 달라져도 변함없는 재미를 유지하는 영화만 골라 영화보기의 진전한 즐거움을 설파하는 게 서울아트시네마의 목표다. 물론, 난해하고 잠 오는 영화들도 곧잘 상영하지만 대부분은 장르적으로 재미난 영화 위주로 프로그램을 짜고 작은 회고전을 연다.
예술이 아니면 어떻고 설사 예술이면 어떠하리. 영화를 무조건 재미우선으로 선택하는 이가 있다면 멀티플렉스 극장으로 가던 발걸음 돌려 구 허리우드 극장에 펼쳐진 영화 낙원 ‘서울아트시네마’에 잠시 들려주시라. 세월이 보장한 재미만땅 영화들이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 두 번째 오해: 흑백의 지루함?
컬러풀한 세상이다. 인간의 색 인식 능력을 능가하려는 기계들의 욕망은 디지털 카메라 화소 싸움을 낳았고 인간의 눈으로 실제 본 것보다 기계를 통해서 본 세상을 진실로 믿는 사회풍조가 만연되고 있다. 이런 세상에 적어도 30년에 전에 만들어진 흑백영화는 무슨 의미일까? 아니 무슨 재미가 있을까? 재미없음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 의외로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오해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영화들 대부분이 흑백영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번만큼은 직접 눈으로 확인해주시길 바란다. 칼라 영화도 많이 상영한다. 이 얘기를 하려고 ‘두 번째 오해’라는 거창한 주제를 단 것은 아니지만 노파심에 일단은 짚고 넘어가 본다.
‘흑백영화’의 동의어는 만들어진지 오래된 영화라고 곧잘 해석된다. 지금도 가끔 흑백필름으로 영화를 찍는 감독이 있지만(홍상수감독의 <오! 수정>) 대부분 컬러필름이 발명되지 않은 시절에 찍은 영화를 흑백영화라 지칭한다. 그런데 이 기술적인 문제가 ‘재미’로 직결되는 요상한 시추에이션이 벌어지고 있다.
흑백영화는 재미없다.
남 얘기 아니다. 스펙터클로 치닫는 영상 속에서 정작 중요한 영화의 맥을 놓치는 경우가 태반이다. ‘흑백영화’는 그런 점을 보완하면서 숫처녀의 순결미를 자랑하듯 영화의 본질에 가까운 재미를 보장한다. 찰리 채플린 영화로 예를 들어보자. 뭐 굳이 찰리 채플린 영화를 찾아서 보지는 않겠지만 가끔 TV화면에서 소개되는 찰리 채플린 영화 속 장면들을 보면 지금 봐도 시선을 가로채는 설정이나 행동이 눈에 띌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주인공 찰리 채플린의 행동에 집중하도록 이미지가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그의 영화 대부분이 흑백영화라서 이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자의적인 해석일 수 있겠지만 찰리 채플린은 미남도 아닐뿐더러 키도 땅딸만하다. 더더군다나 의상마저도 매번 턱시도만 입고 나온다.
그런데 그의 영화는 지금 봐도 지루하지가 않다. 흑백필름은 주인공의 행동과 상황에 집중할 수 있도록 이해를 방해하는 요소들을 명암차이로 살포시 지우고 주인공의 이끄는 대로 영화의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친구들에게 형광들이라고 놀림 받는 이들에게 흑백영화를 정말로 추천하고 싶다. 서울아트시네마에 맘먹고 한 번 가봐라. 흑백필름이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진정한 영화의 재미를 맘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 괜히 옆에 있는 사람한테 자신이 이해한 영화의 재미를 얘기하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할걸!
☞ 세 번째 오해: 영화를 보려면 돈이 든다!?
영화표 값이 일인당 7천원이다. 데이트라도 할라치면 2인 14000원에 밥값 찻값까지 보태면 돈 꽤나 들고 나가야 한다. 지금도 데이트 비용 마련하느라 전전긍긍하는 인간들 주변에 널려 있을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이런 고민을 완전 박멸까지는 아니지만 20% 할인쿠폰을 퍼부어 주듯 일 년 내내 당신의 주머니 사정을 세심하게 신경써주는 곳이다.
예술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극복하고 탄생했을 때 더욱 더 빛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아직까지 영화를 업으로 삼으며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돈과는 무관하게 오직 영화가 좋아서 영화만 쫓으면 살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는 돈 욕심 없이 영화를 미칠 듯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뭉쳐 만든 작은 극장이다. 때문에 당신들 주머니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상영하는 영화 1회 관람료는 1인 6천원이다. 이것도 비싸도 싶으면 목돈 6만원으로 회원가입하고 관객회원겸 후원자 자격으로 1회 관람료 4천원으로 사시사철 지겹게 영화 보면 된다.
첫 주 관객 수 얼마!
이런 숫자놀이로 관객 머릿수를 돈으로만 환산하려고 든다. 잘못된 영화판 구조를 조용히 비판하면서 관객을 오직 관객으로서 대접하는 유일무이한 곳이 딱 한군데 있다. 바로 ‘서울아트시네마’다. 우리가 6만원을 주고 회원가입을 한다면 우리는 그 순간부터 더 이상 관객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 이름 앞에는 영화를 진정 사랑하는 ‘후원자’라는 별칭이 붙는다. 단지 영화만 봤을 뿐인데 당신은 ‘후원자’라는 사회적 명예를 얻게 되는 것이다. 영화를 볼 때 낸 돈 6천원, 4천원 그리고 후원회비 10만원, 회원가입비 6만원은 더 큰 이익을 내는 곳에 쓰이지 않는다. 영사기를 돌리는 아가씨에게, 넉넉한 웃음으로 표를 끓어주는 오빠에게 그리고 최소한의 극장 시설관리비로 쓰인다.
많은 이들이 찾지 않기에, 우리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상황의 연속에서 그 돈은 관객들을 변함없이 기다리기 위해 유용하게 쓰일 곳을 찾는 중이다.
돈 없다고 남들 다보는 영화마저 못 본다면 정말 이 세상 살기 싫어질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에 함 가봐라. 재미만땅 보장하면서 당신의 지적 수준을 자극하는 영화 널려있다. 영화가 끝난 후 돈 없다고 집으로 곧장 들어가지도 말자. 조금 냄새나서 그렇지 그 맛만은 끝내주는 1500원 짜리 국밥집이 당신의 풍요로운 마음이 아닌, 허기진 배를 달래줄 터이니.
서울아트시네마는 영화에 허기진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식사 제공처다. 그래서 일까? 박찬욱, 김지운, 류승완 같이 잘 나가는 감독들도 뭐가 그리 아쉬운지 자꾸만 찾아온다. 박찬욱의 팬이라면 한번쯤 그를 직접 만나 얘기도 걸어보고 싸인도 받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멀리 가지 말고 지하철 5호선 종로 3가 역에 위치한 낙원상가 옥상으로 올라가봐라. 박찬욱을 만날 수 있다.
박찬욱의 영화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면 혹은 김지운의 영화 스타일을 좋아한다면 그들이 열광하는 영화 한 편 정도는 봐두는 게 좋다. 천재가 아닌 이상 영화는 모방과 참조 그리고 재창조로 귀결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대중적인 지지도가 높은 ‘김지운’ ‘류승완’ ‘박찬욱’ 감독 이들 세 명과 오승욱, 김홍준 감독이 경쟁하듯 스스로를 ‘시네마떼끄 친구’라 자칭하면서 자신들이 최고로 꼽는 영화를 각자 한 편씩 추천해 상영하는 영화제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19일부터 26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더불어 ‘황정민’ ‘문소리’까지 이번 행사에 동참한다고 하니, 평소 좋아하는 영화도 보고 좋아하는 스타 감독, 배우도 한꺼번에 만나보자.
관객과의 대화시간이 널널하게 잡혀 있다고 하니 혹여나 이들을 보지 못할까하는 걱정은 붙들어 매시길 바란다.
이런 경우를 두고 ‘꿩 먹고 알 먹고’ 혹은 ‘뽕도 따고 님도 보고’라고 하는 거다.
서울아트시네마에 가지고 있는 편견과 오해를 허물어뜨리기 위해 서울아트시네마를 좋아라 하는 친구들이 모여 주최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18일 후원의 밤 행사를 시작으로 26일까지 본격 가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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