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샤는 미를 중시하는 일본의 상징적 장식품이다. ‘게이샤’는 철저히 남성들의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모든 행동과 말투 그리고 일상의 습관마저 다듬고 깎아 만든 고된 수행의 흔적이다. 게이샤는 우리나라의 기생과 마찬가지로 예술가로 대접 받으며 철저하게 매춘부와는 그 격을 달리한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고작 이것뿐이다. 그래서인지 하얗게 분을 칠한 그들의 비정상적인 얼굴은 신비의 다른 이름이 되었고 그들의 세계는 어둡지 않으면서도 장막이 길게 내리쳐진 신천지라 여겼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하고 <시카고>의 롭 마샬 감독이 연출한 <게이샤의 추억>은 그래서인지 개봉 전부터 매혹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게이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우리는 그 매혹에 눈이 멀어 정작 그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게이샤는 고달픈 수행 과정을 거쳐 탄생하는 존재, 그렇다면 우리는 그들처럼 게이샤 훈련은 안 받더라도 그 혹독한 과정 정도는 상식 차원에서 미리 알아두는 것도 영화를 보는 센스~일 게다.
일본에서 파란 눈을 가진 미소녀는 특이한 사람이기보다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신비한 배척대상이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소장하고픈 ‘인형’의 의미다.
파란 눈을 가진 소녀에 대한 SM멜로 일본만화가 있을 정도니 ‘파란 눈의 소녀’는 일본인들에게 매력적인 접근불가 대상이었을 게다. ‘장쯔이’는 그 파란 눈의 소녀 아니, 게이샤를 연기한다. 장쯔이가 분한 ‘치요’는 게이샤로서 뿐만 아니라 그 신비로운 눈동자 색깔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사랑 받았을 거다.
그러나 모든 아름다움을 소유한 치요의 단 하나 뿐인 사랑은 게이샤이기에 운명의 대가를 치른다. 그건 그녀가 게이샤가 되는 과정보다 더 고달픈 삶의 훈련이다.
장쯔이는 최고의 게이샤로 거듭나기 위해 일명 30cm 나막신을 신고 춤을 춰야만 했다. 물론 공리, 양자경도 30이 주는 압박감을 견뎌냈다. ‘마이꼬’(게이샤 수련 중인 소녀) 시절부터 연기를 해야 했던 장쯔이는 춤뿐만 아니라 걸음걸이, 눈빛, 예법에 맞는 요염한 말투까지 실제 게이샤가 되기 위한 마이꼬처럼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특히, 게이샤는 남성을 위한 존재일 때만 그 가치를 인정받기에 게이샤 특유의 언어는 가장 예민하게 신경 써야만 하는 미묘한 부분이다. 정치와 경제를 논하면서도 음담패설을 즐길 수 있어야 하는 게이샤의 언어는 남성을 추켜세우면서도 지성과 너그러움을 동시에 갖춰야 하는 게이샤만의 장기이자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최고의 게이샤였지만 세월의 흐름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치요를 질투하고 음해하는 ‘하츠모토’로 열연한 ‘공리’는 게이샤하면 떠오르는 외적인 이미지를 철저하게 몸으로 표현해냈다. 세 여배우 중 공리는 시각적인 이미지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역을 맡았기에 감정의 기복과 그 안에서도 흐트러지지 않는 게이샤로서의 품격을 유지하지는 연기에 힘을 기울였다고 한다.
실제, 게이샤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2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장쯔이, 공리, 양자경은 그 시간만큼은 아니더라도 영화 속에서 최고의 게이샤로 거듭나기 위해 6주간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았다. 또한 영화촬영 내내 기모노을 입은 채 생활했다고 하니 이 세 여배우의 불꽃 튀는 연기 욕심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격식과 틀 안에서 정제된 미(美)를 상징하는 게이샤로 분했다는 사실은, 영화 <게이샤의 추억>이 다른 건 몰라도 시각적 괘감에서 만큼은 즐거움을 보장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