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주의보>는 원작소설이 다룬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관한 깊이를 제대로 살리진 못했다. 대신, 원작보다 호감 가는 주인공들을 등장시켜 멜로영화의 전형성을 차근차근 따라가 대중영화로서의 재미를 터득했다. 다시 말해, 일본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보다는 훨 재밌씀.
수은(송혜교)은 교내에서 최고의 얼짱으로 인정받고 있는 미소녀다. 수호(차태현)는 그에 반해 별 볼일 없는 평범한 남학생. 이야기는 뻔하다. 소녀가 소년을 좋아한단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이 이들의 첫사랑을 데코레이션 해주자, 순진한 소년의 첫 정은 생애 가장 아름다운 사랑으로 치닫는다. 그 사랑의 절정은 여기서 다시 한 번 뻔해진다. 그 자체로도 한 폭의 그림이 되는 소녀의 죽음.
<파랑주의보>는 첫사랑을 영원으로 기억하며 세상에 홀로 남겨진 소년의 성장담이다. 또한 첫사랑을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로 회고하고픈 현대인의 판타지이기도 하다. 결국 ‘죽음’은 추억 할 순 있지만 현실에서 재현할 수 없는 부당함을 대변한다. 수호와 수은의 사랑에 눈물 한 방울 떨구기는 어렵지 않을지언정 그들의 사랑에 현실의 사랑을 이입해보기란 여간해선 어렵다.
사실, 맑고 청아한 영화를 보는 이유가 영화와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을 곱씹으며 힐책하려는 데 있지 않을 것이다. 잊거나 혹은 처음부터 없었던 순수함을 돌려받고픈 욕망의 발로가 이런 영화를 보게 만든다. 그저, 죽음에 관한 묘사가 팬시한 영화의 장식 정도로 어여쁘게만 다뤄진 게 아쉬울 뿐이다.
특히, 영화 속 주인공들이 입고 나온 ‘교복’은 이런 시각적인 청순함을 강조하는 소품으로 이용됐다. 한국 사람들에게 교복이란 단순히 학원문화의 상징은 아니다. ‘교복’은 현실의 억압을 은유하면서도 성적으로 미숙한 청춘남녀의 ‘순수’를 의미하곤 한다. 때문에 교복 입은 ‘소녀’는 언제나 속세의 찌든 때가 묻지 않은 청초하고 아름다운 얼굴로 남성들의 공통된 기억으로 뭉뚱그려지기 일쑤다. <파랑주의보>는 가공된 그들의 기억을 가감 없이 담아내 소녀의 모습을 여성성의 표본으로 산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물론 수호의 모습도 만만치 않지만 말이다.
누구나 하는 첫사랑이지만 영화처럼 그렇게 아름답게만 기억되지 않는 게 또 첫사랑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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