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 감독의 영화는 항상 과거의 추억을 건들이며 출발한다. 과거에 대한 향수는 엄마의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가는 판타지 멜로나(인어공주) 유년시절 엄마의 죽음을 간직한 소심한 은행원과 평범한 학원강사의 사랑(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처럼 과거의 회상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주위에서 항상 볼 수 있는 친근한 캐릭터들을 현실감 있게 다루면서 잔잔한 영상미를 추구한다는 점 또한 박흥식감독만의 매력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사랑해,말순씨>는 기억 속에만 존재하던 우리 일상생활을 그대로 담아놓은 것 같아 더욱더 공감이 가는 영화다. 지루함과 잔잔함의 차이를 확실히 구분하는 박흥식 감독의 스타일은 초등학교 때 한번쯤은 받아본 ‘행운의 편지’를 중심으로 친근하기에 막대하고 환상을 갖기에 가슴 설레는 가족과 첫사랑의 미묘한 교집합을 잘 살려냈다.
열네 살 중학생 ‘광호’의 눈으로 본 학교는 “나라님 돌아가셨는데, 축구를 하는 정신 나간 놈들 다 나와!”라고 말하는 폭력적인 학교 선생님과 동갑이지만 누구나 무서워하는 ‘철호’와의 비밀스런 우정이 뒤섞인 평범한 장소이다. 하지만 문제는 학교 밖이다. 집에서는 푸근한 엄마 냄새가 아닌 화장품 냄새만 지독한 화장품 외판원 ‘김말순’여사가 맨손으로 쥐를 때려잡고, 옆집누나에 대한 아련한 마음은 동네 바보 형 ‘재명’에 의해 망신을 당하기도 한다.
무식하고 창피하기만 한 엄마 ‘김말순’여사의 억척스러움은 결국 광호의 이유 없는 ‘가출’로 이어지고 우여곡절 끝에 엄마와 함께 술에 취해 내뱉는 ‘엄마! 사랑해”는 너무나 당연히 존재해왔고 영원히 있을 것만 같은 ‘엄마’의 존재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준다. 이미 <효자동 이발사>에서 모자 지간을 연기한 문소리와 이재응의 앙상블은 친 모자 같은 자연스러움을 뿜어내고, 영화 속 캐릭터가 실제 자신의 모습인 냥 소화해 내는 문소리의 열연은 영화의 무게 감을 더한다.
감독이 ‘죽음’이란 소재를 가지고 전작인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대로 재현한 담벽 신은 불길한 기운을 그대로 잡아내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더불어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를 재현하기 위해 영화 속에 보여지는 미술, 의상, 소품의 완성도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더 돋보이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불안했으나 누구보다 행복했던 자신의 추억 속으로 잦아드는 감성은 극장 문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그 시절 어땠나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