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라운드 시작!
● 캐스팅의 모든 것
캐스팅에서 전제 되었던 생각들일단 각 등장인물들이 무술 전문가라는 시나리오상의 내용에 따라 역할 상 무술 고수들이 등장해야하는데, 실제 시간상, 예산상 연기자들에게 무술 연습과 조련을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음.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실제 무술의 고수들로 캐스팅한다는 원칙을 세움. 또 실제 꾸미지 않는 진짜 액션을 모토로 한 우리영화의 이상에도 맞았음. 따로 연기연습이 된 상태가 아닌 연기자들이라면 자칫 영화상의 인물들이 평면적으로 비춰질 수 있고 밋밋해 질 수 있는 상황이라, 먼저 확실한 캐릭터와 의상 및 역할, 상황설정을 만들어 이들의 초보연기에서 오는 손실을 감소시키고 어색함을 가려주는 방안이 필요했음.
동시대의 젊음을 표현하고 호흡한다는 의미에서, 다양한 젊은이들의 계층을 대표하는 설정으로 각 인물을 구축함. 본인이 전혀 무술세계에 문외한인 관계로 주로 인터넷을 검색하여 캐스팅을 진행해 나가기로 함.
● 각 캐릭터의 기획
청바지: 어려서부터 무술에 인생을 바친 바른생활 도장청년. 반듯한 예의바른. 진지한. 이소룡.
캐스팅 과정시나리오를 쓰면서 인물을 만들기 시작 촬영일자가 잡혀있는 관계로 시간 절약을 위해 캐스팅을 미리 시작했다. 한편 캐스팅을 하면서 인물에 맞춰 시나리오를 고치거나 만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유인 청바지 역할인 장태식은 미리 정해져있는 상황. 방송에 방영된 후 연락을 하며 몇 년 간 쭉 알고 지냄. 나를 무술의 세계로 입문시켰고 이미 인간극장에서 주인공을 하면서 연기 경험을 했다. 예의바르고 순박한 무술청년 역할로 내정된 상태.
모히칸: 낭만파 무술인. 정통파 숨은 고수. 소탈함. 예술적인. 여유. 패션 감각. 준수한 외모. 깃털을 허리에 차고. 여행.
지금은 없어졌지만 당시 유일한 무술잡지였던 ‘마르스’의 편집장인 한병철씨에게서 우슈의 고수를 소개받았다. 그러나 나름대로 텔레비전과 영화의 단역으로 나왔던 그는 경력관리를 위해 작은 영화에는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거절당했다. 대신 우슈계의 떠오르는 신성 권흥석을 소개받았다. 무술은 당연히 고수였고 얼굴도 고수다. 차분하면서도 매력적인 분위기에 끌려 캐스팅 하게 됐다.
살인미소: 뒷골목 싸움을 하는 깡패. 수단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는. 닭싸움. 노랑머리. 일수가방. 금목걸이. 살벌한 표정도 지을 줄 아는. 검은 양복. 야한 와이셔츠.
태식이가 무술 후배인 살인미소 역할의 유지훈을 어느 날 데리고 왔다. 첫눈에 끼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좀 부담스러운 상체. 근육이 너무 많음. 그러나 서로 앉아 무술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시범을 보인다며 첫 만남 10분 만에 감독인 나의 멱살을 잡고 마구 뒤흔들었다. 무척 당황했음. 그러나 즉각 캐스팅 합격. 불량스럽지만 순수한 듯 한 묘한 인물의 뉘앙스가 (깍두기) 맘에 들었다.
무사시66: 지적인 인텔리 무술인. 무술을 스포츠로 즐기는. 대기업 총각직원. 고액연봉. 단정한 외모. 노트북. 안경.
비트박스: 신세대. 힙합뮤직. 무술을 즐기는. 작고 날쌘 다람쥐. 헤어밴드. 이어폰. 힙합바지.
실전격투기를 할 인물이 필요해 역시 인터넷을 뒤지다가 신촌의 무에타이 도장을 발견하고 세 명을 소개받았다. 헤비급의 한명과 조그만 체구의 꼬마 두 명이 등장했다. 190정도의 키를 자랑하는 유양래는 얼굴은 모델 급이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바로 캐스팅 해 버렸다. 밴텀급의 두 명 중 한명을 캐스팅했고 그게 비트박스다.
마시마로: 유도의 달인. 거구. 귀여움. 선함. 대학생. 철사장: 여성무술인. 매서운 독기. 미모.
거구의 씨름선수를 구하려고 용인대에 문의해서 말짱한 외모의 부산 사나이가 왔는데 체구가 좀 작았다. 더 큰사람을 원하자 즉각 선뜻 전화를 걸어 후배를 연결해 줬다. 그런데 그 후배가 영어학원에 가야한다면서 주저했고 즉각 오라는 불호령을 내리자 얼마 안 있어 한 덩치가 얼굴을 보임으로써 체육대학 선후배의 군기를 보여줬다. 마시마로 역할의 김진명이 그 주인공. 수줍은 미소로 여전히 캐스팅이 되더라도 영어 학원을 나가야한다고 간청해서 일단은 키와 몸무게에서 합격점. 여전히 연기하는 것 배우가 되는 것에 아주 어색한 모양이다.그렇게 뜸을 들이더니 나중에는 현장에서 가장 즐기면서 재미있게 놀았다.
천장지구: 가짜 얼치기 무술. 폼생폼사. 허세. 말빨. 현실의 잔주름이 배어나는.
태권도 역할을 맡기로 내정된 친구가 다른 친구를 데려옴 그러나 그게 화근이 되어 본인은 빠지고 그 친구가 캐스팅 됨. 바로 천장지구 역할을 맡은 연극배우 성홍일이다. 이런 역할은 시나리오선 없었는데 본인의 의욕과 성의로 역할이 만들어졌다. 얼치기 무술역할로 8명의 무술 고수 중 유일하게 비 무술인 역할이다. 그러나 연기수업으로 각종 무술을 조금씩은 배운 경험과 비교적 날쌘 발차기에 낙점.
철사장: 유일한 홍일점. 가냘프면서도 미모와 무술을 겸비한 캐릭터. 당찬 매력과 상당한 중국무술 실력
중국무술을 하는 아가씨가 필요해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인천의 한 우슈도장과 연결됐다. 그 도장 관장님의 소개로 제주도에서 한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즉각 상경했는데 키는 작지만 당찬 몸과 빼어난 미모를 가진 오미정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즉각 결정. 수줍은 성격에다가 연기경험이 없어서 본인은 걱정이 태산이다. 또 제주도 처녀라 서울에는 연고가 전혀 없고 제주도 부모님도 걱정이 많아서 결국 인천도장에서 한 달 동 안 출 퇴근 하며 준비를 했다. 연습기간 내내 숙소가 멀어 고생이 막심했고 몸이 약해서 무술을 시작했다고 한다. 대학시절 우슈 장권 전 종목을 3연패를 했다는 화려한 경력을 가졌다. 그럼 이제는 몸이 튼튼해졌나? 도복을 입고 운동을 할 때는 정말 강자이자 고수다. 펄펄 남. 그러나 사복을 입혀놓으면 금방 타고난 약골이 되며 감기를 달고 살며 콜록거렸다. 정말 신기한 풍경이었고 그것이 오미정의 매력이었다.
● 영화 속 대결을 말하다.
모히칸(우슈) VS 천장지구(가라데)
쉽게 이겨보려고 만만해 보이는 모히칸에게 도전한 천장지구. 곧 자기가 아주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을 곧 알게 된다.
(감독의 변)승부의 세계에서는 잘못된 계산을 가지고 상대방을 고르는 경우가 있다. 부족한 정보와 자만심은 곧잘 그런 선택을 하게 만드는데 대부분 바라던 결과를 가져오지는 못하고 초라한 도전으로 그치곤 한다. 진짜 승부라면 서로 싸울만한 이유가 있는 상대가 붙어야 진정한 승부라고 하지 않을까? 애초부터 잘못 설정된 대결은 진정한 승부의 종류는 아닐 것이다. 또 그런 승부를 보는 것은 때로는 재미난 일이지만 보통 좀 불편한 일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욕심 때문에 종종 어울리지도 않는 도전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보는 관람자는 재미가 있을 수 있으나 복권을 사는 사람 중에 거의 대부분은 꽝으로 마감되는 허무한 축제를 즐기는 것이다.
철사장(우슈) VS 살인미소(합기도)
버스에서 내내 도도하게 구는 철사장을 우연히 맞닥뜨린 살인미소.여자라고 만만히 보다가 철사장의 매서운 반격에 큰코다치려는 찰라 방해자가 나타나 대결이 무산된다. 속으로 안심하며 겉으로는 경찰에게 짐짓 마구 화를 내는 살인미소.
(감독의 변)승부의 세계에서 항상 결과가 정확히 나오는 것은 아니다. 중간에 승부가 중단되는 경우도 많고 승부가 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정확한 판정을 가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만약 확실한 승부가 나더라도 결과적으로 진정한 승자가 누구인지 판단하는 것도 진정 힘든 법이다. 그게 실제의 승부의 세계다. 때로는 자신만이 알 수 있고 때로는 자신만이 모를 수 있다. 상대방만이 그것을 알 수도 있고 모든 사람이 알아도 상대방만 모를 수 있다. 또 당사자들은 알아도 제3자만이 알 수도 있고 또 제3자는 절대 모르는 승부도 있다. 진정 승부의 진정한 결과는 아주 다양하게 나타나고 상대적인 것이고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마시마로(유도) VS 천장지구(가라데)
마시마로와 비트박스의 대결에 가로채기로 끼어들어온 천장지구. 이미 토너먼트에서 탈락했지만 그 사실을 숨기고 한풀이 차원에서 정말 만만한 상대를 골라 한번 흠씬 두들겨주려고 마시마로를 택한다.
(감독의 변)멀리 여기까지 왔는데 한번은 이겨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마시마로도 숨은 강자. 결국 천장지구는 또 한 번 신나게 얻어터지며 비참한 상황에 이르는데... 승부에서는 실력이 아니라 사기로 이기려는 부류가 항상 존재한다. 때로는 일시적인 성과를 보이며 푼돈을 끌어 모으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거덜이 나고 비참한 결과에 이르는 편이고...
무사시66(무에타이) VS 비트박스(권투)
190cm, 90kg인 무사시66과 160cm, 58kg인 비트박스의 대결.권투가 주특기인 비트박스가 권투글러브를 꺼내 끼고 하려고 하자, 무사시는 손을 내밀어 글러브를 받아들고 자신의 손에 낀다.
(감독의 변)최소한 글러브를 통해서라도 체급차가 보완 돼야 공평한 게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경기는 우정의 대결이니까. 특히 무사시66은 정정당당 게임을 즐겨온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은 평지에서 일방적으로 밀리자 비트박스는 거구가 운신하기 힘든 좁은 장소로 무사시66을 불러들인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될까? 무에타이는 실전에서는 다른 무술보다 최강으로 꼽힌다. 그러나 권투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체급이 차이가 날 때는 어떨까.헤비급과 경량급의 대결. 애초 이런 대결은 불공평하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그런 조건은 없다. 무조건 이겨야 승자가 될 수 있다.
살벌한 승부의 세계에서 네가 크니까 살살 치라고 말할 수 있을까? 왜소한 단신도 때로는 생존을 위해서 거인을 눕혀야 자신의 땅을 지킬 수 있는 법이다. 그래도 난장이가 거인을 이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난장이는 항상 져야하나? 체격적인 조건이 전부인가? 승부에서는 자신의 조건과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전략이 때로는 더 중요한 법이다. 자신의 약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기지와 이기기 위한 전략. 이게 승부를 가르는 편이 오히려 더 많다. 그래서 오히려 화려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고 삶을 살만하게 만드는 요소가 많다.
삶에는 비상구가 있고 역전의 드라마가 있고 불가능할 것 같았던 것들의 실현이라는 희망이 있어서 아름다운 게 아닌가. 인간승리, 집념의 화신, 기적 같은 역전 등등... 하지만 결국 그 태생적인 문턱은 높고 극복하기 힘든 법이다. 그게 현실이고 인생이다. 그걸 인정해야 할 때가 결국 오고 그것을 받아들였을 때 (게임에는 졌더라도) 우리는 자기 삶의 최후의 진정한 승리자가 되는 것이다.
청바지(택견) VS 마시마로(유도)
간식거리로 핫바를 먹고 있는 마시마로를 발견한 청바지는 마시마로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준다. 버스에서 서로 인터넷에서 못 다한 무술인으로서의 고민을 서로 털어놓으며 친해졌던 둘.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승부의 세계는 서로 피해갈수는 없는 상황이다.
(감독의 변)대표적인 발차기 무술인 택견과 잡기 무술의 대표인 유도의 대결. 유술과 타격의 대결. 잡기와 지르기의 대결이다. 접근전에서는 유술이 유리하지만 조금 사이를 띄우면 치고 지르는 타격기가 진가를 발휘한다. 초반에는 메치기에 연전연패하는 청바지.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상대방의 유술을 이용해 공격을 가하기 시작하는 청바지. 아예 타격을 포기하고 유술을 사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려한다. 승부는 점점 점치기 힘든 상황으로 이르고...
역시 고수들은 진검승부의 세계에서 진짜 공부를 하고 무공을 터득하는 법이다. 합이 더해가며 타격기는 유술을 배우고 유술은 타격기를 배운다. 진정한 고수는 힘과 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승부를 하는 때의 상황과 조건을 얼마나 빨리 이해하고 적응하는가에 달린 것이라고 누군가 갈파했다.
살인미소(유술) VS 천장지구(가라데)
초반에 박살나고, 사기 쳐서 붙은 싸움에서도 얻어터진 천장지구는 이제는 대결을 피해 달아나려한다. 그리고 기진맥진해서 숨어든 폐가. 하지만 거기에는 살인미소가 버티고 있는데. 버스에서 살인미소는 천장지구와 앙숙이었다. 결국 살인미소에게 걸려 원치 않는 세 번째 대결을 한 번 더 벌이게 된다.
(감독의 변)토너먼트에서 본의 아니게 세 번이나 싸우게 된 천장지구. 통상 인생에서 사람들은 원하는 전쟁만 치르지는 않는다. 원하든 원치 않던 전쟁을 치르며 대결로 살아가야 하는 게 인생인 것. 그러나 같은 인생이라도 유독 피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대게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철사장(우슈) VS 모히칸(우슈)
겨울산 산사에서 마주선 두 사람. 같은 중국무술이라도 화려한 동작을 중시하는 외권과 안으로의 내공을 중요시하는 내권, 서로 다른 계통의 두 사람은 서로 직접 주먹을 맞대는 것 보다는 일단 서로의 무공을 상대방 앞에서 시연으로 내보이며 승부를 가르고자 한다.
(감독의 변)승부를 가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직접 칼이나 주먹을 휘두르지 않아도, 옛날 고수들은 서로의 작은 움직임과 흘리는 말투에서도 상대방의 무공을 알아내고 미리 승부를 점칠 수 있었다. 결국 무공은 단지 힘과 손끝이나 발끝에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무공은 결국 맘속에서 창조되고 온몸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공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금방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준비가 된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다.
살인미소(유술) VS 무사시66(무에타이)
버스에스서 내내 서로 티격태격하다 신경전을 벌이던 그들 둘. 드디어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 이제는 물러설 곳도 없고 승부를 가르는 일뿐.
(감독의 변)뒷골목 싸움꾼과 도장무술의 대결. 보통 뒷골목싸움은 도장무술보다 강한 편이다. 각종 잔재주와 치열한 승부근성, 그리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고 늘어지는 데야 당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둘 중 누가 이길까? 제도권에서 우아하게 자라며 대학을 거치며 무술을 단지 스포츠로 알고 즐겨온 무사시66. 그리고 뒷골목에서 악으로 버티면서 고등학교 때 이미 삶을 쓴맛을 보며 조직에 몸을 담고, 잡초처럼 살아오며 싸움과 무력을 밥 먹는 유일한 도구로 알고 버텨온 살인미소.
물론 둘에게는 무술은 전혀 다른 의미다. 그리고 오늘 하루 서로 피차 손을 보려고 일찌감치 노려왔었고. 이제 대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번 승부는 단지 싸운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그 이상의 의미도 있다. 그들 뒤에는 계급과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실려 있는 것이다.
철사장(우슈) VS 청바지(택견)
황태덕장에서 마주치게 되는 두 사람. 청바지는 여자인 철사장과 승부를 겨룬다는 게 좀 거북스럽다. 그러나 청바지를 이기고 거칠마루를 향해 가야하는 철사장의 매운 독기는 확고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감독의 변)서로 원치 않는 사람이 억지로 만나는 수도 있다. 그리고 남녀의 대결도 흔한 일은 아니다. 더구나 그 둘이 아주 조그만 호감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둘이 무술대결을 벌인다는 게 좀 곤란한 일이 될 수도 있다. 반나절 버스에서 청바지를 지켜보며 철사장은 그에게 남다른 모습을 발견한다.
좀 괜찮은 놈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오늘 나는 다른 목적으로 여기에 왔다. 갈 길이 먼 것이다. 몇 년 동안 거칠마루에게 호감을 가지고 여기까지 오게 된 철사장. 물론 무술인으로 거칠마루를 존경하지만 그를 생각하면 볼이 빨갛게 상기되는 것은 감출수가 없다. 과연 거칠마루는 한 남자로서 어떻게 생겼을까? 그가 입은 옷도 헤어스타일도 확인하고 싶다. 그에게서 나는 체취는 과연 어떨까. 거칠마루를 생각하면 몸이 점점 굳어진다. 이 이상한 떨림은 뭘까? 그런데 오늘 만난 또 다른 한 남자 청바지가 앞에 있다. 마치 거칠마루 같은 단정하고 예의바른 남자다. 게다가 무술도 고수임에 분명하고.
그러나 승부는 승부. 난 청바지가 아닌 거칠마루를 만나러 여기에 온 것이다. 청바지에게 주먹을 쥐고 서는 철사장. 그러나 왠지 청바지와 합이 더해갈수록 마치 거칠마루와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 어쩐 일인가. 앞의 남자도 거칠마루를 무척이나 찾고 있는 것 같은데... 혼란스럽다. 결국 청바지와의 싸움에서 지고 마는 철사장. 이제 거칠마루의 얼굴을 보는 것은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그런데도 아쉽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마치 거칠마루를 봤다는 이 느낌은 과연 뭘까?
모히칸(우슈) VS 무사시66(무에타이)
물론 둘은 토너먼트에서 탈락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둘은 버스에서 내내 서로를 눈여겨 봐 왔던 터이다. 강자는 강자를 본능적으로 알아보는 법. 둘은 기꺼이 번외경기를 갖기로 한다.
(감독의 변)강자들의 최대의 바람은 자신보다 더 강한 사람을 만나 이김으로서 자신의 강함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이다. 한수 배운다면서. 승부를 가르기 위한 대결이 있고, 때로는 단지 대결을 즐기기 위한 승부도 있다. 그리고 진정한 강자는 진짜 강자를 만날 때 신이 나는 법이다. 천하를 얻은 유방도 작은 종이접기를 할 때도 최선을 다해 접느라 이마에 땀이 맺혔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이미 글로 치열하게 만났었던 관계라면 우정의 대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정의 대결이라도 고수라면 어떤 게임에서도 비록 그것이 아주 사소한 게임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청바지(택견) VS 살인미소(유술)
결국 결승전에 나타난 인물은 청바지와 살인미소다. 살인미소는 좀 의외다. 버스에서 내내 다른 사람들과 티격태격하다 분위기를 흐렸었고 또 무림지존 사이트에서 글도 잘 올리지 않던 정체불명의 신삥이다. 게다가 무술도 정식으로 도장에서 연마한 놈 같지도 않은데... 하여튼 좀 골치 아픈 놈이다.
(감독의 변)도장에서 정식으로 연마를 했다고 고수가 되는 법은 아니다. 그리고 뒷골목에서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렀다고 모두 가짜 무술가는 아니다. 짱돌로 찍었다면 반칙이라고? 그러나 승부의, 무림의 세계에서는 때로는 결과가 말해 줄 수도 있다. 무조건 이겨야하는 게 승부의 세계가 아닌가. 도장에서 우아한 무술을 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고 작심한 막싸움꾼 상대는 될 수 없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발동작? 엄격한 수련? 정신수양? 그러나 막싸움꾼과 뒹굴다보면 결국 어느새 자신도 막싸움꾼과 같은 모습이 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진흙탕에서 구르던 인간이던 도장에서 풀 먹인 도복으로 무술을 하던 인간이던, 결국 본질은 하나다. 모든 무술도 삶도 존재하기위해 살려고 발버둥치는 몸짓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최고의 리얼 코믹 무협으로 탄생한 <거칠마루>의 선전을 기대하며 영화의 모든것을 밝힌 이번 기사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