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에 관한 영웅담은 반일감정과 맞물려 묘한 애국심을 자극한다. 일본에서는 이순신을 '해전의 신'으로 가르칠 정도라고 하니 우리나라에서 '이순신장군'이란 존재의 무게감은 그 어느 영웅보다 뿌듯한 자긍심으로 다가온다. 그런 성웅이 평균 연령 19~20세에 응시하는 무과에 28살에 응시, 낙방하고 서른 두 살이 돼서야 급제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위인전을 읽었어도 가물가물한 사실일터.
역사적으로도 잘 안 알려져 있는 그 4년을 시나리오로 푼 영화가 바로 <천군>이다. 이미 <황산벌>로 사극을 한적이 있는 박중훈과 밀키보이의 이미지가 강한 김승우가 카리스마 넘치는 북한 장교 역을 맡았고, 남한군인으로 황정민이 열연한다는 사실이 언론에 발표 됐을 때 식상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으로 사료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실망하지 않아서 영화가 재미있다고 말하기 보다는 영화개봉 전 우연히 시나리오를 본 기자의 의견을 솔직히 밝히자면 이 영화, 상당히 재미있다.
분석하기 좋아하고 난해하게 풀기 좋아하는 영화기자들은 나름대로 ‘재미 없다’와 ‘별로 였다’는 평가를 내렸지만, 확실히 시나리오보다 잘 나왔고 되려 15세 개봉인 게 아쉬울 정도로 전쟁씬과 시대를 살린 몇몇 장면들은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남북한 공동 연구로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핵무기를 개발한 연구진들은 평화공동회담으로 인해 졸지에 연구를 중단하고 미국측에 핵을 넘겨야 한다.
이에 불만을 품은 강한길(김승우)가 핵무기를 탈취, 남북한 군대가 대치하는 가운데 때마침 433년 만에 한반도를 지나는 혜성에 의해 타임워프가 이뤄지고 이들이 당도한 곳은 1572년 조선 변방마을. 그 당시 28살 이순신은 장인의 도움으로 늦게나마 무과에 응시하지만 낙방하고 변방마을에서 인삼을 밀매하고 도적질을 일삼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여진족에 의해 살육 당하는 우리 민족과 한량으로 다시는 무과에 응시하려 들지 않는 민족 영웅 이순신의 길들이기는 진부하기 보다는 기발하게 펼쳐진다.
어쩔 수 없이 뭉쳐야 하는 남북한 군인들이 서로 으르렁 대자 “너네는 적도 아니면서 왜 맨날 싸우냐?”고 어이없어 하는 이순신과 서로의 이념으로 대적하며 내뱉는 배우들의 대사는 현재 한반도의 대치상태를 여지없이 조롱한다. 특히 미국에 의해 핵무기를 분해에 전달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임무를 맡은 공효진이 “그들이 모든 걸 버려 지킨 나라인데 우린 뭘 했죠?”라고 반문하는 장면은 단순히 액션 코미디로 규정하기엔 아까운 여운을 남긴다.
역사적으로 고증되지 않은 부분을 극화했다는 것, 모두가 다 아는 성웅의 인간적인 모습은 할리우드 액션히어로 중에서 가장 인간 다운 배트맨이 꾸준한 인기를 얻듯이 확실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특히 활 쏘기에 능했던 이순신장군의 제대로 된 한방은 영화의 클라이막스로 영웅으로 태어나기 보다 만들어지는 극중 전개의 재미를 더한다.
민족의 성웅인 이순신 장군을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네티즌들의 반발이 컸지만 개인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는 법. 재미있지만 감동적이지 않는 영화와 감동적이지만 재미없는 영화의 중간에 있는 <천군>은 역사 속 영웅들은 근엄하고 카리스마 넘쳐야 된다는 고정관념을 깼다는 점에서 이미 반쯤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