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빨간구두 때문에 충분히 고통당했어, 이제 교회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야지" 카렌은 이렇게 생각하며 교회 입구로 갔습니다. 그런데 바로 카렌의 눈앞에서 그 빨간 구두가 춤을 추면서 지나가는 것이 아니겠어요.('안데르센' 원전 『빨간 구두』중에서)
'빨간 구두'의 저주를 벗어나기 위해, 소녀는 가녀린 발목을 잘라버린다. 아름다운 동화로 기억되는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는 알고 보면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잔혹하게 자신의 운명을 결박하는지를 보여주는 섬뜩한 '공포'를 내포한다. 안데르센 동화를 모티브 삼아 도시괴담에 인간의 '욕망'을 포장하고 그 위에 잔혹한 모성을 덧씌운 현대판 '빨간 구두', <분홍신>은 여성의 욕망이 해소되지 못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파생한, 잔혹한 진실을 담은 작품이다. 신발은 여성의 음밀한 곳을 상징한다고 한다. 쉽게 노출되지 않는 그 곳의 특징상 현대 여성의 '구두'는 타인의 욕망을 부채질하는 페티시이면서 여성의 동시대성을 증명하는 환영적 부산물이다.
남편의 외도로 인해 이혼한 후, 낡은 아파트에 딸 '태수'(박연아)와 이사 온 '선재'(김혜수). 안과의 전문의인 선재는 우연히, 전철에서 '분홍신'을 줍는다. 태수는 엄마의 구두를 탐내고 선재는 그것을 뺏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모녀 사이라고 믿지 못할 정도의 맹렬한 육탄전까지 불사른다. 유령처럼 어미의 의무만을 행하는 선재에게 인테리어 디자이너 인수(김성수)가 다가오고, 그녀는 분홍신의 설명되지 않는 힘에 이끌려 욕망을 흘린다. 그러나 딸에게서 구두를 강탈한 후배의 죽음과 연이어 벌어진 의문사들 속에서 선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분홍신의 비밀에 점차 다가간다.
김용균 감독의 <분홍신>은 욕망과 모성을 충돌시켜 여러 가지 가능의 수를 타진한다. 의미를 확장함에 있어 여성의 잠재된 본능만큼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는, 소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포를 배가시키기 보다는-심연을 건드리는- 원형적 형질의 모성을 겹겹이 쌓인 도시의 조형물 안에 숨겨놔, 공포의 정체를 단박에 눈치 채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점점 조여 오는 심리적 압박감이 거세지지도 않는다. 구두수집광 선재의 거실에 즐비하게 널린 구두가 그녀의 실질적인 '욕망'-어미이기보다 여자로서의 자신-을 설사 상징한다 치더라도, 분홍신을 신은 모녀의 모습을 끊임없이 비쳐내는 '거울'은 현실을 부정하고픈 보편적 인간군상의 비타협적 환상에 더 가깝다.
남성은 애초부터 모녀 사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거울'은 남성을 대신해 욕망을 투영한 대상이고, 분홍신은 그것을 부추기는 촉매제로써 기능한다. 주워온 구두로 붉어진 모녀의 갈등은 아버지 또는 남편의 부재에서 불거진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름다움을 찬탄할 이가 없음을 의미할 뿐이다. 아버지(남성) 앞에서 춤을 추고픈 욕망 때문에 태수가 구두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결혼에 관심 없는 선재의 후배 또한 '결혼'보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이 보고픈 것이다.
잘려나가는 여자의 다리는 남성들의 거세공포증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의미차원에서의 공포다. 선재는 남편과 딸에게 헌신하는 듯하지만, 그녀의 유일한 취미 구두수집은 모든 것이 그녀에게 억압체제임을 의미한다. 누군가의 아내, 연인, 딸임을 요구받기에, '선재'는 오직 자신을 걷게 하기 위한 도구의 일종, '구두'에 집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가 여성에게 슈퍼우먼 콤플렉스를 강요할수록, '모성'은 성역화 되어간다. 그 사이에서 욕망의 출구를 찾는 여성들은 잔혹동화를 빗대, '모성'의 붕괴를 경고한다. 우연히 주운 '분홍신'은 사실, 반갑기 그지없는 이 시대의 필연적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