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큰 적은 권태이며 권태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죽음뿐이다 -쇼펜하우어-
사랑이란 의미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고 추앙 받는 일련의 명화들 중에서 프랑스 영화 <권태>는 한국에 쉽게 발붙이기 힘들었던 영화다. 무삭제판으로 개봉되기까지 3년의 시간이 흘렀으나 정작 뚜껑을 열어보면 '별로 야하지 않은데 뭘 그래?’라고 실망할지 모르겠다.
세드릭 칸 감독의 <권태>는 현대인이 느끼는 당연한 심리를 제목으로 삼아 소재 면으로는 전혀 지루하지 않은 교수와 누드 모델의 사랑을 모티프로 삼아 스크린에 옮겼다. 아내와 이혼 뒤 6개월간 금욕하면서 알 수 없는 권태감에 빠져 정신과에 찾아가는 철학교수 마르땅은 젊은 여자와 기분전환 삼아 여행이나 다녀오라는 처방을 받고서도 “정신과 의사들은 너무 이상적이야.”라며 자신의 냉철한 이성을 신뢰하는 남자다.
그런 남자가 우연히 술집에서 만난 늙은 화가 메어스에게 술값을 대신해 그림을 받게 되고 그림 속 주인공인 세실리아를 만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육체관계를 빼놓고는 모든걸 따분하게 만드는 그녀에게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드는 마르땅은 끊임없이 주위사람들에게 “내가 따분하기 때문에 여자가 바람을 피우는 걸까요?”, "여자가 약속시간에 늦는 건 마음이 떠났다는 건가요?”라며 철학교수의 품위는 던져버린 채 질문을 해댄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라면 사람의 감정이 마음대로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르땅의 이런 행동은 관객들로 하여금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 낸다.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아버지가 있으면서도 죽음을 한번도 생각해 본적 없고, 섹스를 통해 사랑 받고 있다고 확신하는 17살 세실리아는 사랑에 있어서도 다른 의미를 둔다.
책을 쓴다는 핑계로 안식년까지 내고 섹스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 마르땅의 모습은 차라리 솔직하지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만 아는 세실리아의 행동은 철없음을 벗어나 개념 없이 느껴진다. 달래도 보고 협박도 해보고 급기야는 돈을 주면서까지 그녀에게 매달리는 마르땅을 보고 있자니, 저 욕망이 과연 사랑인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인지 헷갈리는 것도 잠시, 모든 일에 시큰둥 하던 남자주인공이 그 누구보다 권태롭지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무뚝뚝한 남자와 그런 남성에게 목매는 여자가 단골인, 그래서 결국엔 스토커가 되버리는 여자 캐릭터와, 너무나 사랑하는 여자를 결국엔 팔 다리 다 짤라 도망 못 가게 곁에 두는 영화처럼 극단적으로 달리지 않더라도, 인간의 집착에 관해 차분하게 접근하는 <권태>는 번민과 괴로움이 의욕 없는 방황보다 찬란하다는 걸 보여준다.
독점이야 말로 도리어 삶을 더 권태롭게 만든다는 걸 세실리아는 알고 있었던 걸까? 독점했다는 기쁨도 잠시, 또 다른 집착(혹은 관심)대상을 찾는 현대인의 심리를 감독은 일부러 모른척 하고 있는 것 같다. 이탈리아 작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 동명소설을 영화화 해낸 세드릭 칸은 로마제국이란 시대배경을 현대 프랑스로 옮겨 세련되게 재구성했다.
반복되는 침실장면과 끊임없이 사랑을 확인하려는 마르땅의 히스테리컬 한 대사들이 영화중반이 되면 ‘권태’롭게 느껴지는게 아쉽지만 철학 교수답게 소유욕을 누르고 마음을 비우는 마지막 장면은 서두에서 밝힌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우리에게 또 하나의 사실을 알려준다. 인간의 가장 큰 적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