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산과 바다로 피서를 떠나는 한 여름날 아름답기로 소문난 부안 변산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길게 줄지어 움직이는 휴가차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녁 늦게야 도착한 곳은 변산 해수욕장도 부안 해수욕장도 아니었다. 어두운 산길을 털털 거리며 찾아간 곳은 바로 <왕의 남자>의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인 부안영상테마파크 세트장!
<황산벌>을 만든 이준익 감독의 새 작품으로 관심을 받고 있는 <왕의 남자>는 자유로운 광대 ‘장생’과 아름다운 광대 ‘공길’, 광대의 자유를 부러워했던 슬픈 왕 ‘연산’ 그리고 질투로 가득 찬 연산의 아름다운 애첩 ‘녹수’의 운명적인 만남이 불러일으키는 화려한 비극을 그린 드라마로 감우성, 이준기, 정진영, 강성연 등이 출연하는 색다른 시대극이다.
● 이제 본격적인 휴가 대신 다녀온 <왕의 남자> 촬영현장 스케치를 시작한다.
밤 9시가 넘은 시간 버스가 가파른 산길을 달려 찾은 현장. 차창 밖으로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궁궐이 달빛을 받아 모습을 드러냈다. 차에서 내려 커다란 대궐의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 나타났다. 조명으로 인해 대낮처럼 환한 그곳은 현실의 세계가 아닌 과거의 궁궐 속 연회장 한가운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아름답고 웅장했다.
● 배우는 어디에?
소수정예로 찾은 덕분에 복잡하지 않은 가운데서 취재를 할 수 있어 더욱 마음이 편했다. 이곳저곳 둘러보던 중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이준익 감독이 나타난 것이다. 감독은 다음 장면을 준비하라며 배우들이 모여 있다는 곳으로 이동을 하고 있었다. 붉은 천이 내리워져 있는 그 곳에는 분명 감우성과 이준기 그 외에도 유해진 등 배우들이 대기하고 있다고 했건만 경극을 위해 분장을 한 배우들만 있을 뿐 주인공들은 보이질 않았다. 그때 많이 듣던 목소리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감우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돌려 바라 봤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진짜 경극 배우인양 분장을 한 감우성과 배우들은 누가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하게 변신을 해 있었기 때문이다.
● 열정이 보이는 뜨거운 현장!
감우성의 옆에는 여성처럼 아리따운 이준기가 감독과 감우성의 눈과 입을 바라보며 무엇이든 배우려는 모습으로 진지하게 서있었다. 이준익 감독은 배우들과 대사와 모션을 조율하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다가 취재진들이 주위에서 카메라를 찍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잠시 쉬어가자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감독은 이 자리에서 <왕의 남자>를 위해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알 수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했는데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광대에 대한 이야기로 광대 흔히 말하는 남사당패 들이 사라진 이유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탄압을 했으며 특히 당시 광대의 존재가 사회 비리나 여러 가지 사회 현상에 대해 서민들에게 알리는 지식의 창구를 했고 이들의 영향력이 일반인들이 하는 생각보다 훨씬 컸기 때문에 일본이 잠재적인 위협의 존재로 규정 광대와 남사당패와 같은 집단들을 없앴다는 것을 감독은 열변을 토하며 영화의 중심 의도에 대해 설명을 했다. 이때 감독에게서 느껴지던 의욕은 마구 터져 나오는 활화산처럼 엄청난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높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마련된 모니터를 통해 지휘를 하던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컷!’ 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는 다음 촬영을 위해 세트의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감독 뿐 아니라 현장의 모든 스태프들과 배우들 모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영화의 주인인 것처럼 항상 무엇인가 하고 있는 모습들 그리고 야심한 밤 시간인데도 초롱초롱한 눈빛에서 <왕의 남자>가 보여주는 가능성을 느낄 수 있었다.
● 너무나 예쁜 그녀 이준기!
감우성과 조연들이 한바탕 촬영을 마치고 난 후 막간의 휴식이 있었다. 그때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 - 아니 반달곰이라 해 두자. -처럼 이리저리 배우들을 찾아다니며 취재 꺼리를 찾던 중 예쁘게 차려 입은 곱디고운 여인네를 발견했다. 이름 하여 이준기!
아마도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였다면 정말 실수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과연 내가 아는 그 어떤 여성도 그런 미모는 가지질 못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때다 싶어 말을 걸었다. 사실 좀 더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 농담으로 던진 말이었다. “남자한테 미안한 말이지만 진짜 너무 예뻐요”라고 하자 돌아온 담변은 가히 본 기자의 말을 막아 버리고 말았다. “저 예쁘다는 말 진짜 좋아해요.” 그 말이 공감이 가는 이유는 왜인지 스스로도 헷갈리는 순간이었다. 중요한 것은 진짜 예뻤다는 것!
덕분에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분장 때문에 얼굴의 미동을 잘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외모와는 달리 그는 진지하고 또렷하게 질문에 답을 해 주었다. 그는 태권도 유단자로 지역 대표선수까지 지낸 사내였다. 또 현재 그는 <왕의 남자>를 통해 선배 연기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때로는 힘도 든다고 했다. 힘든 이유는 나이차가 많이 나고 자신의 역할이 여성스런 남자이기 때문에 선배 연기자들이 왕따를 시킨다는 것. 그 이야기를 웃으며 하는 이준기는 자신의 역할을 좀 더 집중하라는 선배들의 배려라며 이제는 혼자 놀기의 대가가 됐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의 여성스러움에 약간의 선입견을 가지고 시작한 대화였지만 잠깐 동안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가 얼마나 이번 영화를 위해 준비를 했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지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 그런 질문은 이제 그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감우성이 질문 공세를 받고 있었다. 한 기자가 분장이 힘들지 않았는가? 덮지는 않는가? 등의 질문을 던지자 감우성은 한마디로 잘라 답했다. “오늘 기자 분 몇 분이나 오셨죠? 모두들 한 번씩 다 물어 보시니까 힘들어 죽겠어요. 이따가 간담회 때 말할게요. 그리고 여기 많이들 모여 계시니까. 분장 힘들고요. 더워요. 그래도 오늘은 더위도 덜하고 모기도 많지 않은 날이네요. 근데 같은 질문 계속 대답하는 게 더 힘든 거 같아요.”라며 웃으며 애교 섞인 투정도 부렸다.
● 적과의 동침?
이날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배우들의 분장도 화려한 세트도 아니었다. 경극을 위한 오프닝으로 준비한 화려한 액션을 선보일 무술팀으로 세트에 마련된 연회장 에는 이들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지켜보던 본 기자는 이상한 점을 발견을 했다. 분명 무술 감독이 지도를 하고 지휘를 할 터인데 두 명의 남자가 서로 이야기를 하며 지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분명 무술 감독과 서브 감독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무술감독님이 두 분인지를 우선 질문을 했더니 한명은 무술 감독이고 한명은 경극 감독이라고 했다. 자세한 설명을 부탁하자 무술감독이 대답해 주었다.
“<왕의 남자>에는 무술감독과 경극 선생님 그리고 무용을 책임지는 분 거기에 광대놀이를 담당하시는 분까지 다양한 분들이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액션 파트와 경극 파트는 서로 공유하고 협조하는 부분이 많은데 처음에는 어색도 하고 어려운 점도 있었다. 하지만 정말 금방 친해져서 지금은 서로 형 동생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있는 상황이다.”라며 멀리서 연습을 하고 있던 경극 감독을 불러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구까지 했다.
● 배우보다 더 힘든 부채를 든 사람들
이날 현장의 최고의 노력상은 부채를 든 사람들이였다. 푹푹 찌는 듯 한 날씨에 배우들은 숨이 막힐 정도의 분장을 하고 의상을 입고 더위와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배우들이 지칠까 각 배우들 옆에는 커다란 부채를 든 사람들이 따라다녔는데 주연 배우 조연 배우 할 것 없이 모든 스태프들이 각 한명씩 맡아서 번갈아 가면서 부채를 쉴 사이 없이 부쳐주고 있었다. 배우들을 위해 부채질을 하면서 정작 자신은 땀으로 범벅이 되는 그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이날 현장의 주인공은 바로 그들이었다.
● 지쳐만 가는 사람들...
시간이 자정이 다되어 가면서 배우들은 익숙한 듯 스스로 장난도 치고 나름의 방법을 이용 피곤함과 지겨움을 달래고 있었다. 그러나 영화를 위해 동원된 엑스트라들과 경극단원들 그리고 액션 연기자들은 무료함을 어찌할 바를 몰라 세트 구석에 모여 담배를 피워대거나 편안한 곳을 찾아 누워 막간의 잠을 청하기도 했다.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는데 변기 형님의 간절한 면담 요청으로 잠시 형님 댁을 들러 면담을 하던 중 옆방에서 함께 들어왔던 한 엑스트라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애인 그것도 사귄지 얼마 안 되었거나 작업 중인 커플 같았다. 남자의 목소리에 엄청난 힘이 들어간 상태로 형님 댁의 울리는 현상 때문에 가히 성우 뺨치는 목소리로 통화 중이였다. 그 내용을 잠시 살펴보면 이러하다.
“응 나 좀 전에 촬영 끝났어. 애들이 못해서 힘들었어. 전에 내가 말했지? 내가 애들 가르친다고. 애들 연기가 안돼서 큰일이야. 감독이 나한테 머라고 하잖아. 애들 좀 신경 쓰라고.”
“이제 또 촬영 들어가야 해. 나 볼 수 있냐고? 당연하지 내가 메인으로 나오는 장면인데. 내가 앞에 서고 애들이 뒤에 서서 나를 보조하지. 정면으로 나를 클로즈업해서 잡아. 나오면 시사회 날 보여줄게. 응, 그래 이거 끝나면 만나자.”
이 이야기가 장장 10여분에 걸쳐 수다를 떤 내용의 핵심만 뽑은 내용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본 기자가 옆방의 잘나가시는 엑스트라님의 연애 사업을 위해 숨소리 죽여 가며 면담을 진행 중 변기형님의 왕 펀치가 터져 방안의 공기가 진동하고 말았다는 사실. 옆방의 그 사나이는 황당한 소리에 놀라 황급히 촬영 들어간다며 전화를 끊고 나갔다. 곧바로 면담을 마치고 나간 본 기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화장실 앞에서 그와 동료들은 얼굴에는 모두들 똑같이 분장을 두껍게 하고 담베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은 촬영이 시작된다는 말이 들리자 황급히 뛰어갔고 뒤를 따라 촬영장으로 따라갔다. 군중 씬은 진행되었고 맨 앞 줄 어디서도 그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를 찾은 곳은 맨 뒤 구석이었다. 그는 이름도 없는 엑스트라 00번 이였던 것이다.
이번 촬영현장 스케치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알찬 취재였다. 다음 2부에서는 현장스케치와 함께 간담회 현장, 아주 특별한 배우 유해진의 특별 인터뷰가 준비 중이다. 2부도 많은 기대로 기다려주기 바라며 이번 기사를 마무리 한다.
취재. 사진: 최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