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 네어의 연출력을 기둥으로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제작자와 <고스포드 파크>의 각본가가 뭉치다!
“베키 샤프는 저 밖에 좀 더 나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지만 그 당시 사회적 분위기는 계급을 뛰어넘는 게 허락되지 않죠.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 그녀는 그것에 뭔가 공허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겁니다” (- 도나 지글리오티)
제작자 ‘도나 지글리오티’와 ‘자넷 데이’는 10여년 전부터 『Vanity Fair』의 영화화를 꿈꿔 왔다고 한다. 도나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의 대성공 이후, 1999년부터 자넷과 <베니티 페어> 프로젝트 진행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 와중에 2002년 봄, 당시 미라 네어 감독의 <몬순 웨딩>을 작업했던 포커스 픽쳐스에서 이 작품의 투자와 제작을 결정하면서 순조롭게 진행됐다. 데이와 지글리오티가 기대한 <베니티 페어>는 거대하고 화려하며 재밌으면서도 감동을 주는 영화였다. 도나는 <베니티 페어>가 모든 캐릭터와 스토리라인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진실과 휴머니티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 되길 기대했는데, 바로 <몬순 웨딩>을 보면서 미라 네어가 이 작업의 적임자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특히 미라 네어는 모든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나도록 하는 재능을 가졌다고 제작진은 입을 모은다. 그녀는 자신과 함께 일하는 스텝과 의견을 주고 받고, 그들에게 창의적인 에너지를 받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런 연유로 예전부터 미라와 함께 작업했던 스텝들이 이번 영화에 대거 참여했다. 프로듀서 리디아 딘 필처, 촬영감독인 데클란 퀸, 편집자 앨리슨 C. 존슨, 사운드믹서 드류 쿠닌, 그리고 영화음악 마이클 다나 등이 그러하다. 윌리엄 메이크피스 테커레이의 동명소설을 각색하는 작업은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고스포드 파크>로 2001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줄리안 펠로우즈’가 맡았다. 줄리안은 워낙 이 소설이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온 작품이라 다른 작품보다 몇 배는 어려웠다고 한다. 특히 각색작업을 할 때 원작의 어떤 부분을 들어낼 것인가가 어렵고도 중요한 사항인데, 원작 속의 중요한 순간들을 다 살리면서 요즘 관객들에게 어필할 만한 새로운 이야기로 맞추기 위해 영화의 엔딩부분에서 소설의 것과 다르게 수정함으로써 좀더 경쾌한 분위기를 살렸다.
<금발이 너무해>의 리즈 위더스푼, 귀여운 팜므파탈로 돌아오다!
영화 <금발이 너무해> 이후로 할리우드 대스타 반열에 들어선 리즈 위더스푼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대단한, 지적이고 총명한 배우다. <베니티 페어>의 제작진은 테커레이가 그려놓은 베키라는 인물과 그녀가 신기할 정도로 닮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베키역으로 리즈를 점찍었다고 한다. 필요에 따라 술수를 쓰기도 하고 계략을 세우는 베키라는 캐릭터를 사람들이 싫어할 수 있기 때문에 베키역을 맡을 배우는 관객이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매력을 가져야 했다. 물론 리즈는 이 조건을 충족시켰고, 관객은 베키의 흥망 쇠락을 함께 느끼고 공감할 수 있게 됐다.
미라 네어와의 작업을 고대해 온 리즈는 이번 역할을 위해 그 동안 트레이드 마크였던 금발머리를 갈색머리로 바꿨고, 영국식 악센트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무엇보다도, 얄미울 수 있는 베키라는 인물에 리즈만의 색깔을 입혀 사랑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인 캐릭터를 완성시켰다. 그녀는 ‘베키 샤프’에 대해, 자신의 장점을 이용해 꿈을 이뤄나가고, 뛰어난 재주로 난항을 돌파해 나가는 매우 현대적인 캐릭터의 페미니스트라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리즈 위더스푼을 통해 표현되는 베키 샤프는 야심가에다 현실적이며 냉정한 반면, 사랑스럽고 재치만점의 여인으로 재창조 되었다.
이번 영화를 함께 작업한 스텝이나 출연진들은 리즈의 프로페셔널한 면에 모두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출연하는 거의 모든 씬에서 리즈와 함께 연기한 제임스 퓨어포이(로든대위 역)역시 리즈는 매우 특별한 배우이며, 훌륭한 성품을 지녔다고 말한다. 가브리엘 번 또한 리즈에 대해 매우 쾌활하고 헌신적이며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집중력이 강한 배우라고 칭찬했다.
우아하고 화려한 영상 19세기 영국 상류사회를 제대로 발현시킨 고품격 비쥬얼
<베니티 페어>의 아름다운 영상은 ‘미라 네어’ 감독의 공이 가장 크다. 그녀는 사진과 그림에 있어서 전문가 수준이었으며, 영화의 씬마다 어떻게 해야 스타일리쉬하게 비쳐질 것인가에 대해 확고한 미학적 기준을 지니고 있었다. 슈퍼 35mm 카메라를 사용함으로써 화면 자체에 우아함이 묻어 나도록 했고, 화면을 꼼꼼하게 매만지고 주의깊게 살피는 등 이번 영화에서 미라는 비쥬얼에 굉장히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특히 그녀는 바깥에서 영국을 바라다보는 이방인의 시선으로 접근, 인도적인 특색을 집어넣은 덕분에 <베니티 페어>에는 발리우드 영화의 느낌이 물씬 풍겨나고 있다.
미라 네어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19세기 초 영국사회를 새롭게 해석해 낸 뒤, 거기에 다채롭고 풍부한 시각적 스타일과 감수성을 영화 속에 쏟아내어 전통적인 시대극과는 다른 느낌의 작품으로 연출해냈다. 영화의 배경인 19세기 초 영국은 전세계에 식민지를 두고 있는 열강이었기 때문에 그 기간동안 인도, 북아프리카, 중국 등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때문에 이국적 색깔과 역동성의 영감을 이용한 작업은 매우 중요했다. 텍스처나 종이, 그리고 건물 등도 동양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시기라 중국그릇, 모로코의 랜턴 그리고 인도의 옷감 등으로 화면을 채워 나가는데 신경을 썼다. 굉장히 다채로운 색감과 화려하고 밝은 면들을 주요 컨셉으로 하여 자유롭게 여러 가지를 시도해 나간 결과, <베니티 페어>는 19세기 영국 상류사회를 완벽하게 표현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7번째 영화화되는 소설 『Vanity Fair』와 문학사상 가장 매력적인 여인 ‘베키 샤프’
윌리엄 메이크피스 테커레이(William Makepeace Thackeray,1811~1863)가 1847~1848년에 걸쳐 완성한 소설『Vanity Fair』는 주인공 ‘베키 샤프’의 인생행로를 통해 인간의 위선을 꼬집고 19세기 영국 상류사회를 풍자한 걸작으로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테커레이의 소설에는 마치 시네마 베리테에서처럼 그 당시 시대상이 잘 드러나있어 소설 속 사건들이 그 시절 영국에서 일어난 일들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동시대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찰스 디킨스’의 소설이 플롯을 중심으로 구축된 반면, 테커레이의 『Vanity Fair』는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인간의 내면을 꼬집는다는 점에서 ‘제인 오스틴’의 소설과 같은 맥락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현대인들에게 공감을 불러 일으킬 만큼 다채롭게 표현되어 있는데, 특히 ‘베키 샤프’의 캐릭터는 문학 사상 최고로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베키는 자아를 찾아 노력하는 새로운 여인상이면서 주위의 여건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능통한 재치있고 강인한 인물이다. 항상 다시 일어서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그녀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원동력이란 점에서, 베키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스칼렛 오하라’의 모티브였다는 점도 충분히 수긍이 간다.
톨스토이 소설 『안나 까레리나』의 경우 10번이 넘게 영화화 됐다지만, 이에 버금가게 소설 『Vanity Fair』도 이제까지 총 7번이나 영화화 되었다. 『Vanity Fair』는 1915년에 처음 영화로 만들어진 이후로 1922년, 1923년, 1932년, 1935년에 각각 영화로 제작되었다가, 거의 70년 만인 2004년도에 일곱 번째로 영화화 됐다. 미니시리즈 또한 1967년, 1987년 그리고 최근 1998년까지 3번이나 제작되었다. 그만큼 『Vanity Fair』는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진, 시공을 초월하여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과 관심을 받아온 명작임이 자명하다.
시대 양식에 충실하면서도 독창적인 작업을 선보이다! 다채로운 색깔이 엿보이는 <베니티 페어>의 의상 스타일
의상을 맡은 ‘베아트리스 파스토르’ 역시 전반적으로 다채로운 색깔을 이용하려 애썼다. 영화 속 옷감과 텍스처만 봐도 인도의 영향이 들어간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자주색, 오렌지색 등 강렬한 인도풍의 색깔과 패턴들을 위주로 하고 여기에 영국 스타일을 섞었다.
사실 테커레이가 소설속에서 의상들을 디테일하게 묘사해 놓았기 때문에, 새로운 텍스처를 쓰면서도 책 속에 제시해 놓은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않도록 옷의 실루엣이나 모양은 모두 그 시대 양식을 따랐다. 가령, 회색이 채워지는 곳에 그린이 들어가는 식으로 기본적인 시대적 양식에 충실하면서도 새로운 무언가를 첨가하는 식의 작업을 해나갔다. 특히 이 영화에서 베아트리스는 놀라운 레이어드 룩을 선보이는데, 여배우들의 경우 스카프와 드레스, 블라우스를 덧입혀서 좀 더 풍부한 느낌이 살도록 애썼다. 가끔은 너무나 옷을 겹겹이 많이 입혔는지, 배우 호스킨스는 베아트리스가 사람한테 얼마나 많은 옷을 한 번에 입힐 수 있는 가로 돈을 받는 사람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의상들을 약간 경사지게 만들었는데, 경사진 의상때문에 연극적으로 보여지는 면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베아트리스가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스타일리쉬함을 추구한 작업이 감독의 열정적인 접근과 어우러져 일반적인 시대극과는 다른 독창적인 스타일의 의상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베아트리스는 각 배우들에게 맞는 옷이 아니라 각 캐릭터들에게 맞는 옷을 만들어 냈다. 베키에겐 높이 세워진 머리와 더불어 작은 모자만을 씌웠고, 로든 대위에겐 구레나룻 선에 맞춰 옷의 칼라가 달려 있도록 했다. 스타인 백작 역을 연기한 가브리엘 번에 따르면 이제까지 영화하면서 촬영 조명 스탭들이 와서 의상을 만져보며 옷이 너무 예쁘다고 말하는 건 처음 본다며 의상에 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19세기 영국 건축물의 보고(寶庫) 영국의 고풍스런 명소를 찾아…
짧은 분량의 인도 촬영을 마치고, <베니티 페어>는 2003년 봄부터 여름까지 11주에 걸쳐 영국 남부 전역과 엘스트리 스튜디오에서 촬영됐다. 크롤리경이 맨 처음 살던 곳의 촬영은 챌튼햄 근처에 있는 스탄웨이 하우스에서 이루어 졌는데, 그곳엔 예술적 기운이 흘러 넘쳤고 중국풍의 침대 등 영화에 불어놓고 싶었던 스타일들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작진들이 한 눈에 보고 반했다고 한다. 영화 속 런던 거리 장면들은 19세기 영국의 건축물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베스에서 촬영됐다. 스타인 백작의 저택은 홀번 뮤지엄에서, 오스본 저택은 보포드 스퀘어에서 그리고 런던의 커존 스트리트는 그레이트 풀트니 거리에서 찍었는데, 그레이트 풀트니 거리는 아주 넓으면서도 원형 그대로 간직된 곳이라 자갈과 먼지만 조금 깔아놓아도 1800년대 거리로 복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촬영은 360도 거의 모든 각도로 카메라를 뻗어 진행되었고, 시대극 촬영이라 모든 것이 다 통제되어야 해서 창문과 문마다 모두 페인트를 칠하고, 간판도 모두 다 떼어 내리고, 도로도 통제하는 등 무척 힘들게 작업해야 했다. 이밖에, 그레이트 풀트니 거리에서의 촬영 시 설치한 옛날 가로등을 촬영이 끝난 다음에도 그대로 놔두기로 해 베스와 북동 서머셋 지역 주민들이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또한, 베스 주민 350명 정도가 엑스트라로 참여했고, 촬영으로 인한 지출로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될 정도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영국의 여러 저택 곳곳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미스 크롤리네 저택 내부는 옥스포드셔의 디칠리 파크에서, 그리고 건트 저택의 내부는 허트포드셔의 로담 파크에서, 아멜리아네 저택은 버킹햄프셔의 웨스트 위컴비 파크에서, 그리고 베드포드셔의 루턴 후에서도 여러 씬의 내부를 찍었다. 하이드 파크 장면과 햄프턴 궁전에서의 촬영때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소덕에 배우와 스탭들이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이밖에 브뤼셀의 시골 장면과 워털루 전쟁이 끝난 후의 모습은 하트필드 하우스에서 촬영됐다. 또한, 인도에서의 피크닉 씬은 웨스트 런던의 치스윅 하우스 정원에서 찍었으며, 커존 스트리트에 있는 집의 내부는 런던 중심부에 있는 피츠로이 스퀘어에서 촬영한 것이라고 하니, <베니티 페어>를 보면서 수 많은 저택과 야외풍경을 눈여겨보는 것도 시각적으로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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