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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르미날(1993, Germinal)


리얼리즘의 극치를 보여준 백미같은 영화임..감동의전율~ ★★★★★  newface444 07.03.28
웃긴다 ㅡㅡ 점수 너무 높다 어설픈 연출에 러닝타임만 쓸데없이 길다 ☆  leehyosoo 06.12.17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없는 자는 힘들다. ★★★★★  clear38 06.12.17



1884년 초 프랑스의 자연주의 작가 에밀 졸라는 광부들에 대한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는 실증주의의 선구자이자 절친한 친구인 에드몽 드 공쿠르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고, 드디어 광산 파업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는 인간들의 방황하고 투쟁하는 미로의 적절한 상징인 지하 갱도의 이미지를 좋아했다. 2월 10일부터 그는 100여 쪽애 달하는 초고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글쓰기에 도움을 준 것은 당시 프랑스 최대의 광산인 양쟁 광산의 파업이었다. 그는 직접 양쟁 광산에 가서 광부들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직접 지하 675미터의 갱도까지 내려가보기도 했다. 광부들의 거주지는 불결했으며, 임금은 열악했고, 주변 환경은 온통 검은 진흙탕이었다. 그래서 졸라의 소설 <레즈미날>은 밤이 지배한다. 40개의 장 가운데 무려 30개가 지하 갱도처럼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양쟁 광산의 광산주는 파리인이었고, 광부들은 대개가 성격이 급한 플랑드르인들이었는데, 졸라는 그들로부터 등장 인물들의 성격을 만들었다.

1884년부터 일간지에 연재된 <제르미날>은 이윽고 책으로 묶여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소설에서 졸라는 인간의 사랑과 죽음, 저항과 정의, 그리고 자유와 행복에 대한 대서사시를 썼다. 그는 이 소설에서 "나는 20세기에 가장 중요해질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미래를 예언하고 싶다"라고 썼다. 과연 졸라의 혜안은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었다. 오늘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저항과 투쟁은 아직도 세계 각처에서 계속되고 있다. 졸라는 또 "노동자는 진정한 호머의 영웅'이라고 썼다. 그는 "고대를 본받고 역사적 시간의 깊이를 다시 찾고 싶으면 민중을 연구하고 그들의 삶을 그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민중의 애환과 축제는 졸라에게 언제나 서사시였다. 1902년 8월 5일 졸라가 죽었을 때, 광부들은 붉은 꽃을 들고 모여들어 꽃을 그의 관에 던지며, "제르미날!"하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졸라의 이 소설 덕분으로 광부들의 삶은 잊혀지지 않았으며, 새로운 저항과 자유의 '씨앗'이 배태되었기 때문이었다.

<제르미날>은 영화 개봉에 맞추어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제르미날>의 주인공은 프랑스 제2제정 시대의 실업자 에티엔 랑티에다. 그는 프랑스 북구 몽수에서 광부가 되면서 자본의 착취에 차츰 눈떠간다. 주위는 온통 가난과 알코올 중독, 그리고 불결한 환경과 열악한 생활로 둘러싸여 있다. 그곳에서 그는 마유 같이 충직한 사람과 샤발처럼 비겁하고 교활한 사람들을 만난다. 임금이 깎이자 광산에는 파업이 일어나고, 에티엔은 광산주에 맞서 사회주의 투쟁에 나선다. 그러나 파업은 군대에 의해 진압되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광부들이 죽는다. 에티엔은 그들의 피가 헛되지 않고 언젠가는 사회주의 혁명의 씨앗이 되리라는 희망을 안고 그곳을 떠난다. <제르미날>은 클로드 베리 감독과 광부 출신 가수 르노, 그리고 프랑스가 자랑하는 명배우 제라르 드파르듀와 미우미우가 힘을 합해 만든 대작 프랑스 영화다. 이 영화는 졸라가 그린 지도에 따라 충실하게 당시의 광산을 재현했으며, 6천 평방미터의 공간에 실제로 세워진 삼사백 미터의 갱도들에서 촬영되었다. 광부들의 축제를 위해서는 그 시대에 쓰이넏 100여 개의 술잔을 구했다고 한다. 그와 같은 철저한 고증은 배우들의 멋진 연기와 더불어 이 영화의 진가를 더욱 빛내주었다.

영화 <제르미날>은 얼마 전 파리에서 프랑스 영화의 자존심을 걸고 미국 영화 <쥬라기 공원>과 대결을 벌였던 화제의 대작이다. <목로주점>이나 <대지>나 <나나>로 유명한 프랑스의 자연주의 작가 졸라의 원작을 영화화한 <제르미날>은 19세기 말 비참했던 광산 노동자들의 삶과, 싹터가는 그들의 투쟁 의식을 서사시적으로 그려내는 데 성공한 근래에 보기 드문 명화로 기억된다. <제르미날>은 노동자와 민중을 역사적 계급적 변혁의 주체로 본 최초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갖는다. <제르미날>이라는 말 역시 프랑스 대혁명 당시 공화력 3월 22일부터 4월 19일까지 혁명의 기운이 '싹트는 날'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이 세상의 모든 노동자들과 민중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의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소설 만큼이나 강렬하고 획기적인 영화가 되었다. 졸라의 사회 현실 개혁에 대한 깊은 감동을 담은 울림은 영화의 중심부에 고스라니 자리매김되어 있다. 이 영화의 사람을 끄는 흡인력은 용기있는 깨달음을 얻어 투쟁하는 광부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로 같은 탄광 터널을 묵직한 무게감으로 훑어 주는 카메라의 힘에도 있다.

우리에겐 <마농의 샘>으로 잘 알려진 클로드 베리 감독은 그의 아버지를 위해 <제르미날>을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 자신이 평생을 고단한 직공으로 살다 58세로 별세한 모피상이었고,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 베리 감독은 노동자의 비애와 소망을 엿보았다고 한다. 주인공인 제라르 드빠르디유와 미유 미유의 아버지 또한 노동자였고 그들은 영화를 통해 부모들을 추모했다. 에티엔느 역의 르노는 사회 의식 있는 노래를 주로 부르는 가수로 <제르미날>의 취지에 공감해 참여했다고 한다. 이처럼 적극적인 참여 의식과 문제 의식을 가진 영화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좋은 노동 영화이다.

<쥬라기 공원>을 앞세운 할리우드의 습격에 대항하기 위해 거국적인 힘을 모아 제작된 영화로 막대한 예산은 인상적인 시대 재현에서 빛을 발한다. 지금 서구 사회에서 19세기 말의 노동 운동에 관심을 쏟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으나 봄만 되면 노동쟁의로 떠들썩해지는 우리 상황에서는 한 번쯤 진지하게 봐둘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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