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기타노 다케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하나-비>로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90년대 일본 최고의 시네아스트. 그것은 웃음을 팔던 한 성공적인 코미디언의 10년 동안 고집스레 쌓아온 영화 사랑에 대한 힘겨운 수확이었다. 농담처럼 영화 감독이 되어, 밑천 없이 열정만을 담보로 한 고집스런 영화 작업으로 주위를 긴장케 한 기타노 다케시. 그러나 세계는 그의 '하드보일드 로맨티시즘'에 경탄을 금치 못했고, <소나티네>가 93년 깐느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대되면서부터 그는 90년대 일본 영화의 부흥에 선봉장이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교통사고로 사선을 넘나들던 그는, 주 활약 무대인 공중파에서 떠나 오랜 휴지기를 보내야만 했다. 이미 수 십 년 간 쌓아온 멀티 엔터테이너의 인생과 더불어 그의 출발부터 화려했던 영화 인생은 그래서 바뀌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1997년 <하나-비>로 그는 세계가 감동하는 가운데 20세기 최고의 명장 반열에 올랐다. <소나티네>의 죽음을 향한 무례하기 그지없는 저돌성은 <하나-비>에서 삶으로 충만 된 죽음으로 승화되었으며, 그 변화의 사이에 <키즈리턴>이 있었다. 1996년, <키즈리턴>은 그간 무던하지 못했던 삶에 대한 자조와 크나큰 좌절 끝에서 좀더 겸허하게 생을 정리함으로써, 그를 삶으로 다시 초대했다.
영화 <키즈리턴>
돌아온 그 자리에 희망은 아직 남아있었다 두 소년, 말 그대로 비행청소년인 이들은 학교와 사회에서 이지메 당한 청춘들이다. 뒷골목에서 삥이나 뜯고, 성인 영화관을 기웃거리고, 수업 시간엔 선생님을 골탕먹이기 일쑤인 이들. 자전거 한대를 타고 비틀거리는 이들은 앞으로도 뒤로도 갈 곳 없는 절망의 곡예를 벌이는 것 같다. 그들은 다른 아이들처럼 고분고분하지도 않고, 만담가가 되겠다는 어설픈 꿈도 없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그들의 삼류 인생을 포기한지 오래다. 그래서 마침내 권투선수가 되겠다고 욕심부리는 이들의 꿈은 애당초 좌절을 내포한 듯이 보인다. 결국 권투와 야쿠자 세계의 룰에도 적응하지 못한 이들은 또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인생의 쓴 물을 감내하듯이 비틀거린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 절망을 말하지 않기로 한다. 고단한 젊은 시절을 겪었던 기타노 다케시가 스스로에게 다짐이나 하듯 '아직 시작도 안 했는걸'이라는 마지막 대사는 그의 생에서 새로운 지향점의 발견과 그곳에 대한 솟아오르는 희망을 뜻하는 것이다. 영화의 첫 시작, 단 3명의 관객을 앞에 두고 만담을 하고 있는 두 친구가 있다. 이들은 신지와 마짱과 함께 열 아홉의 고비를 넘기고 마침내 수많은 관객들의 환호 속에서 만담을 하게된다. 삶은 피곤했지만 희망은 그들의 곁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기타노 다케시 없이 가장 기타노 다케시다운 영화
기타노 다케시가 출연하지 않은 영화는 그의 아홉 작품 중 단 두 개,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와 <키즈리턴>이다. 그러나 <키즈리턴>에서 우리는 중년의 기타노 다케시 대신, 스무 살의 기타노를 만날 수 있다. 신지와 마짱이라는 상반된 성격의 두 캐릭터는 기타노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현재 삶을 대변하고 있기도 하며, 과거 그를 키워온 청춘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신지가 보여주는 무표정한 방황은 감독으로, 작가로서의 침묵과 일맥상통하며, 마짱은 비트 다케시로 살아가는 다소 허풍기 많은 모습을 대신한다. 자신의 두 가지 페르소나가 집약된 캐릭터들의 입을 빌려 희망을 말하는 기타노 다케시는 <키즈리턴>에서 가장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낸다. 그리하여 <키즈리턴>은 기타노 다케시 없이 가장 기타노 다케시 다운 영화가 된다.
자전거 바퀴처럼... 절망을 따라 희망이 굴러온다
<키즈리턴>은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두 주인공의 모습으로 시작하여 자전거를 탄 그 두 명의 모습으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순환적 구조의 원동력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자전거에 있다. 자전거의 뒷바퀴가 앞바퀴를 뒤좇아 움직이는 구조는 영화 속, 마짱의 꿈과 좌절을 신지가 동일하게 답습한다는 내러티브의 운동성을 상징한다. 반면 뒷바퀴는 다가올 미래의 희망처럼, 앞바퀴가 만들어 놓은 과거 절망의 흔적들을 좇아가며 쓰다듬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자전거는 오랜만에 먼길을 둘러온 실패한 두 주인공을 다시 예전의 화해 속으로 인도한다. 자전거에 함께 올라타는 순간 고된 지난 세월은 씁쓸한 웃음의 추억이 되고, 마짱과 신지의 우정은 다시 회복된다. 자전거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해주며, 미래의 희망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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