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번째 릴테잎이 돌아가자 공포는 현실이 되었다.
운명적 공포와 만나다.
메사추세츠주 덴버의 한적한 숲 속에 위치한 주립 정신병원. 1855년 건립되어 1984년 폐쇄된 이후 지금까지도 해체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세션 나인]의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브래드 앤더슨은 우연히 숲 속을 지나다 이 흉물스런 정신병원을 보게 된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건물은 마치 박쥐를 보는 듯 했다. 주변은 너무나 조용했고, 오래된 건물에서 흔히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후 2시가 조금 지난 시간. 한낮의 태양이 머리 위를 비추고 있었지만 극도의 공포감이 엄습했다. 이곳을 떠나야 겠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떠날 수가 없었다. 무언가에 이끌린 듯 한동안 건물만 멍하게 바라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것이 나와 녀석(덴버 주립 정신병원)이 처음 대면한 순간이었다."
실재했던 정신병원의 괴이한 내력
브래드 앤더슨은 그후 정신병원의 괴이한 내력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한때 크게 번성하기도 했던 이 병원은 인슐린을 강제로 주입해 환자들을 코마 상태로 만든 다음 정신병 치료를 시도했으며, 종교 의식을 통한 치료라는 명목으로 환자를 차가운 물속에 몇 시간이고 방치하는 등 비정상적인 방식의 치료를 감행했고 결국 강제 폐쇄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브래드 앤더슨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그는 이 이상한 정신병원을 무대로 한 공포물을 구상한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독특한 공포를 준비하다.
브래드 앤더슨은 작업실에 틀어박혀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가 원한 것은 흔한 공포물과는 분명히 다른 색다른 그 무엇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공포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공포를 하나씩 분석하기 시작했고, 이를 위해 지나간 공포영화를 빠짐없이 다시 관람한다.
상상 속의 프로젝트를 완성시킬 협력자를 찾아 나서다.
영화에 대한 대략의 구상을 마친 브래드 앤더슨은 자신의 절친한 친구 스티븐 지브든을 찾는다. 무작정 그를 데리고 덴버 주립 정신병원에 도착한 그는 자신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스티븐은 "난 브래드의 갑작스런 방문에 놀랐고, 그가 무작정 데려간 정신병원과 그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다시 놀랐다. 그 곳의 으시시한 분위기는 상당히 불쾌했지만 그가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자 뭔가 근사한 프로젝트가 머리에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이 곳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며 당시를 회상한다. 이때부터 둘은 정신병원 곳곳을 빠짐없이 관찰하며 시나리오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탐구하고 학습한 공포의 원칙을 제시하다. 이들은 먼저 자신들이 그려낼 영화에 대해 몇 가지 원칙을 적용했다. 정신병원 건물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더 헌팅]류의 '귀신들린 집' 영화(Haunted-House Movies)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과 현대인들의 정신적 스트레스와 병적 히스테리. 즉, 의학적(Medical) 요소와 미신적(Superstitious) 요소가 결합한 초현실적 공포를 그려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시나리오로 옮겨내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관객들과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나 그것이 초현실적 공포물일 경우에는 더더욱 쉽지 않은 것이었기에 대단히 많은 고민을 해야했다."
건물 해체팀 명단이 확정되다.
먼저 영화의 중요한 열쇠를 쥔 고든역을 연기할 배우를 찾던 중 제작자는 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피터 물란을 추천했고, 이를 위해 [세션 나인]의 시나리오는 먼저 영국으로 건너간다. 피터 물란은 영화 시나리오를 읽어본 후 그 솔직함과 독창성에 매료되어 출연제의를 받아들인다. 그 후 [세션 나인]에 캐스팅 된 데이비드 카루소는 "대본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읽을수록 점점 흥미로워지는 대본 속에 숨겨진 뭔가가 계속 나를 괴롭혔다." 며 당시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결국 그는 무언가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세션 나인]에 참여한다. 이 외에도 스티븐 지브든이 출연 의사를 밝혔고, [소년은 울지 않는다] 등에 출연했던 스티븐의 친구 브랜단 섹스튼과 [아메리칸 사이코]의 배우이자 [뷰티풀 마인드]를 촬영중이었던 조쉬 루카스가 출연을 결정하는데, 주요 캐릭터가 모두 확정되자 [세션 나인] 프로젝트는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정신병원을 공포로 채색하기 시작하다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캐스팅이 확정되자 감독을 비롯한 배우들과 스텝들이 덴버 주립 정신병원에 모였다. 배우들은 정신병원을 실제로 접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데이비드 카루소는 "이보다 더 두려움을 느끼게 했던 건물을 본적이 없었다. 무거운 중압감과 공포감으로 무장한 듯한 건물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는 마치 들러리 같았고, 영화의 주연배우는 바로 병원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건물의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에 어지러이 널린 집기와 각종 의료기구들은 과연 이 곳에서 촬영이 가능할까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는데, 아마도 세트 안에서 촬영이 진행되었다면 감정이입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감독은 자신의 의도를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표현해 낼 수 있도록 병원을 철저히 이용했으며, 촬영 내내 배우들에게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했다. 피터 물란은 "우리는 감독의 연출 의도를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촬영에 임할 수 있었고, 그러한 이유로 배우들 각자의 연기가 공포감 조성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브래드 앤더슨은 젊은 감독답지 않은 여유가 있고, 자신의 색깔을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표현할 줄 아는 영리한 감독." 이라고 말했다. 5일간 5명의 눈앞에 펼쳐진 참혹한 공포를 위한 1개월의 촬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미술과 소품은 최대한 자제하고 건물 그대로를 보존하다.
촬영기간 동안 감독은 계속해서 안전사고를 걱정했다. 건물은 100년이 넘은 데다 20년 가량 사용하지 않았기에 붕괴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으며, 낡은 계단과 석면으로 가득한 천장 등은 보기에도 아찔했다. 감독은 건물의 본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는데 주력했는데, 이를 위해 미술과 소품은 최대한 자제했고, 위험을 감수해가며 적합한 촬영장소를 선택했다. "건물 내부는 내가 의도했던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오래된 건물인 만큼 위험이 없을 수는 없었지만 건물에 적응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건물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조금씩 파악하기 시작했다."
촬영기간 내내 실재 공포와 싸우다.
밤낮으로 진행된 촬영으로 배우와 스텝들은 조금씩 지쳐갔다. 더군다나 정신병원이라는 답답하고 음울한 공간에서만 진행된 로케이션 일정은 이들에게 꽤나 버티기 힘든 시간이었다. 그런 이유에선지 이들 사이에서도 이상한 일들이 자주 일어나곤 했는데, 극중 폐소공포증 환자로 등장하는 제프역의 브랜단 섹스튼은 촬영 기간동안 실제로 환청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하루는 눈에 얼음 송곳을 꽂는 장면을 어떻게 촬영할 것인가 의논하고 있었다. 그와 관련된 끔찍한 이야기들이 오가자 자리를 피해 스탭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는데, 등뒤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너는 여기 있어서는 안돼(You should not be here)'라는 굵은 남자의 소름끼치는 목소리였다." 데이비드 카루소 역시 촬영 중 겪은 이상한 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어두운 복도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난 후 답답하고 기분 나쁜 느낌을 잊기 위해 밖으로 빠져나와 건물을 등진 채 앉아서 쉬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뒤에서 느껴져 별 생각 없이 뒤를 돌아 봤는데, 건물의 창문에 무언가 휙하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그 곳에 있어본 사람이라면 내 말을 분명 믿었을 것이다." 이외에도 피터 물란은 자신에게만 들렸다며 사람의 목소리가 아닌 이상한 기계음을 이야기했고, 조쉬 루카스는 촬영 전 혼자 어둠 속에서 느꼈던 누군가의 인기척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공포를 실험하다!
소리
[세션 나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만으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공포에 관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정신병원 한 구석에서 발견된 박스. 그리고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9개의 릴테잎. 이 테잎들을 통해 흘러나오는 정신과 의사와 다중인격(Alter-Ego) 환자의 대화 내용은 영화 속 장면들과 자연스럽게 섞이는데, 감독은 이를 마치 영화음악처럼 사용하고 있다. 이런 개연성 없어 보이는 영상과 소리의 조합이 오히려 관객들을 몰입시키며, 테잎 속에 하나 둘 등장하는 다중인격 환자의 또 다른 자아들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섬뜩한 공포감을 극대화하고 있다.
공간
[세션 나인]의 무대는 1855년에 지어진 박쥐 형상의 정신병원 건물로 영화는 밀폐되고 한정된 공간 속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공포감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헌티드 힐]이나 [더 헌팅] 등의 작품과는 확연히 구분되는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공포감을 자극하는 매개체로서 정신병원은 적극 활용된다. 건물 내부는 폐쇄된 정신병원의 음습함, 불완전함이 가득하다. 건물 해체작업으로 인해 먼지 가득한 건물 내부는 밀폐된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답답함을, 벽에 너저분하게 붙어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사진과 물리치료 기구들은 낯선 이미지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션 나인]에서 공간은 감춰진 무의식적 혼돈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자, 보이지 않는 세계, 감춰진 세계로의 통로이다.
빛
[세션 나인]에서는 다량의 빛이 사용된다. 공포영화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지만, 밝은 빛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은 대단히 독특한 공포감을 선사한다. 빛은 흔히 공포영화 속에서 사건의 일단락 또는 해결을 암시하지만 [세션 나인]의 빛은 그와는 조금 다른데, 감독은 빛의 몽환적 느낌을 영화 속에 적절히 사용함으로서 초현실적 분위기를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세션 나인]의 빛은 바로 현실 속에서 영적 세계와 교감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브래드 앤더슨 감독은 빛의 노골적인 노출을 통해 영화의 공포감을 과감히 확장시키고 있다. 자연광에 의해 드러나는 사물들과 랜턴의 빛을 통해 클로즈업되는 정신병원의 어두운 내부 등 감춰진 것들이 빛에 노출되면서 드러나는 공포감은 마치 영화 [디 아더스]에서 빛이 건물 내부에 스며들면서 비롯된 공포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귀신들림
귀신들림(Possession) 현상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는 [세션 나인]은 [엑소시스트]나 [디 아더스] 등과 같이 초현실적인 현상을 영화의 소재로 사용했지만 정신병을 마치 바이러스처럼 표현해낸 것이 눈길을 끈다. 감독은 다중인격 환자의 정신세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자아를 하나의 영적인 존재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는 영화 속에서 심약한 인간의 정신세계 속에 기생하며, 육체와 정신을 파괴하는 악성 바이러스로 그려지고 있다. 감독은 현실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과학적 세계관과 초현실적 세계관의 모호한 중심에서 귀신들림이라는 소재를 끌어들임으로서 현대인의 정체성 혼란까지 담아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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