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시간 만에 읽고 3년을 몰입하게 만든 시나리오! 세계적인 거장 감독과 아시아 최고 여배우의 만남!
2007년 시나리오를 받는 순간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역할이 주어짐을 알게 된 양자경은 시나리오를 들고 친분이 있던 뤽 베송을 찾아가게 된다. 그 이유는 <그랑블루>부터 지금까지 열혈 팬이기도 하며 살아있는 인물을 영화로 만들기 위해선 세밀한 계획과 조심성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양자경은 이에 가장 적합한 감독이 뤽 베송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향후 몇 년간의 일정이 가득 차 있던 뤽 베송 감독은 정중히 거절했지만 아웅 산 수 치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며 시나리오를 읽어보라는 양자경의 설득은 거듭되기에 이른다. 뤽 베송은 그저 미얀마에 사는 독립운동가 아웅 산 수 치로만 알고 있던 그녀의 인생을 시나리오를 통해 접하게 되고 결국 시나리오를 읽는 내내 눈물을 흘리게 되고 만다.
모든 프로젝트를 뒤로 하고 <더 레이디>에 몰입하게 된 뤽 베송은 완벽한 아웅 산 수 치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그녀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였는데, 감옥에 갇힌 수 십만 명의 기록을 찾아보고 석방 된 몇 몇의 미얀마인들의 증언 등을 직접 조사하는 등 아웅 산 수 치의 존재를 전세계에 알리고자 혼신의 힘을 쏟기 시작하였다.
그녀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총력을 기울인 뤽 베송 촬영 중 기적이 일어나다!
양자경과 뤽 베송이 아웅 산 수 치의 특별한 여정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한 것은 그녀가 혼자서 잔인하고 폭압적인 정권과 싸우며 보여준 꺾이지 않는 의지와 놀라운 용기 때문이었다. 2007년 시나리오를 받았을 당시 단순히 감동적인 사랑과 희생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영화를 통해 세상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기에 뤽 베송 감독은 영화의 제작에 필요한 자금 조달은 뒤로한 채 기필코 영화의 완성을 목표로 촬영을 서두르기 시작하였다.
가택연금이란 상황에 놓여있는 아웅 산 수 치에게 세상이 절대 그녀를 잊지 않고 있음을 전달하고도 싶었지만, 세상에 그녀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에 시작 된 영화 촬영. 태국 촬영이 중간쯤 진행되었을 때, 놀랍게도 수 치 여사가 가택연금에서 해방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 소식을 들은 감독, 배우 등 모든 스텝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에 충격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 무렵 촬영팀은 1995년 그녀가 처음으로 해방되어 풀려나던 장면을 촬영하던 중 이였는데 나무 문에서 걸어 나와서 계단을 올라 기다리던 군중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장면은 그날 밤 실제 뉴스 속 그녀의 해방 소식에 등장한 아웅 산 수 치의 모습과 똑같아 뤽 베송 감독마저도 자신이 촬영한 분량이 노출되었다고 착각할 정도였다라고 전했다.
그녀의 해방을 위해 시작된 촬영이기에 모든 스텝들이 놀란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그녀의 해방에는 여러 제한이 붙어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된 제작진은 가택연금 때보다도 더 자유롭지 못한 그녀를 위해 끝까지 제작에 임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또한 그녀가 해방 되면서 언론을 향해 전달했던 “부디 우리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여러분의 자유를 행사해 주세요”란 메시지는 전세계의 예술인들을 향한 요청이였기에 뤽 베송 감독은 더욱 큰 책임감을 느끼고 촬영을 지속하게 되었다.
3개월 간의 노력 끝에 만나게 된 아웅 산 수 치와 양자경 24시간 동안 그들은 마음으로 대화하였다!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배우라면 모두 갖게 되는 욕심이다. 하지만 양자경은 실존 인물인 아웅 산 수 치의 10년 이상 기간에 걸친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평소와는 다른 훈련을 원했고, 확실히 중심을 잡아줄 경험을 필요로 했다. 또한 미얀마 국민들에게 존경의 대상인 만큼 작은 언행에도 섬세함이 나타나는 아웅 산 수 치가 되기 위해서는 언어의 훈련 또한 만만치 않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끊임없는 연구에도 불구하고 실존 인물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에 갈증을 느끼고, 큰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양자경은 촬영 도중 그녀의 해방 소식을 듣고 즉시 만남을 요청하고자 몇몇 스텝들과 함께 비자 신청을 시도하였다. 3개월의 부단한 노력 끝에 양자경만이 미얀마 정부로부터 입국 허가를 받았으며 그것도 단 24시간 동안이었다. 뤽 베송 감독을 비롯한 스텝들은 기쁨과 동시에 불안함도 전하였으나 양자경은 설레는 마음으로 미얀마에 입국을 하게 되었다.
둘의 만남은 15년의 감금 생활이 무색해 보일 정도로 따뜻함과 너그러움이 느껴지는 아웅 산 수 치의 정겨운 손짓으로 시작 되었으며, 양자경은 그녀와의 만남을 통해 비록 작고 가냘픈 여성일지라도 내면에서 뿜어지는 에너지는 세상 어느 누구와도 비교 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고 전했다.
쉐다곤 파고다에서의 아웅 산 수 치의 연설 미얀마 국민들에게 또 다른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다! 촬영 중 태국 정부는 소동이 일어날 것을 대비하여 영화의 소재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전하기도 하였다. 그렇기에 태국인과 미얀마인 등 많은 엑스트라가 동원되어야 했던 쉐다곤 파고다 연설 장면은 뤽 베송이 감독이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장면이기도 하다.
이 날 재현된 쉐다곤 파고다 연설은 민족민주동맹(NLD)의 선두에 아웅 산 수 치가 서겠다고 선언하며 미얀마 전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 날로서 촬영을 위해 연단에 오르는 양자경의 곁에는 15명 정도의 민족민주동맹(NLD) 사람들이 출연을 하였다. 그 중 예순을 넘긴 한 미얀마인은 20여 년 전 실제로 아웅 산 수 치의 연설을 들었던 인물 중에 한 명 이였고 또한 조연으로 출연했던 한 미얀마 여배우는 그 연설이 있던 당일 태어나, 아직까지도 부모님으로부터 자신 때문에 존경하는 아웅 산 수 치의 연설을 듣지 못했다며 놀림을 받곤 한다는 말을 전했다.
20여 년 전의 고통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울음 소리와 다시 한번 자유에 대한 희망을 느낀 몇몇 미얀마인들의 환호 소리로 가득했던 이 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많은 스텝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촬영하였다고 전해지며 많은 영화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관광객으로 위장 입국! 주도 면밀한 계획아래 이루어진 15시간 분량의 귀중한 장면!
<더 레이디>의 주요 촬영지는 태국의 북부 지역이었다. 세계적인 거장 뤽 베송에게는 실제 장소를 담지 못함이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촬영을 위해 비자를 신청 할 경우, 당연히 거절 당할 것을 예상하여 관광객을 위장해 비밀리에 촬영을 진행하자는 위험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언제 발견되어, 어떻게 추방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뤽 베송 감독은 총 세 개의 촬영팀으로 나눠 입국을 시도했으며, 디지털 카메라 세 대로 정확히 어느 지역을 어떻게 촬영해야 할지 주도 면밀한 계획을 세워서 입국하였다. 비밀리에 촬영된 이 장면들을 품에 안고 프랑스로 귀국한 제작진은 15시간이나 되는 녹화 분량을 보며 위험했던 순간을 떠올리고 무사히 귀국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 외에도 위기의 순간마다 재치를 발휘했던 뤽 베송의 여행담이 전해져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안겨 줬다고 한다. 그의 아내는 흑인으로서 미얀마인들에게는 생소함의 대상이 되었고, 더불어 수염으로 가득한 뤽 베송의 얼굴은 수염이 잘 나지 않는 미얀마인들에겐 신기한 볼거리와 놀림의 대상이 되어, 간혹 직접 와서 만져 보고 도망가는 미얀마인들이 있었다고 한다.
양자경, 오직 그녀만이 할 수 있었던 도전!
“그녀를 연기하는 것은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되는 것과 같았다.” 양자경은 시나리오를 보는 순간부터 아웅 산 수 치가 쓴 글과 그녀가 좋아했던 글을 읽는 것을 시작으로 아웅 산 수 치에 대해 연구를 해 나갔다. 우아한 영국식 발음뿐만 아니라, 실제 장군의 딸로서 위엄이 느껴지는 중후한 미얀마어 억양을 익히기 위해서 대사를 다 외운다는 마음으로 어딜 가든, 어디에서나 정확하게 될 때까지 연습을 하였다. 그 결과 6개월간 피나는 노력 끝에 양자경은 자신의 대사를 미얀마어로 소화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완벽하게 미얀마어로 소화해낸 연설 장면은 뤽 베송의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며 양자경의 혼신의 열연을 느끼게 했다. 또한 촬영 전 실제 아웅 산 수 치의 아들 킴을 만나 실제 어머니는 양자경씨보다 더 마르셨다는 말을 들으며 5kg을 감량하는 노력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양자경은 단순히 아웅 산 수 치의 헤어스타일과 몸짓, 억양을 흉내 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그녀가 사랑하는 가족과 모든 것을 버려가며 미얀마인들의 희망이 되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시간에 달하는 아웅 산 수 치의 영상을 보고 연구하며 행동과 겉모습을 넘어서 완벽하게 아웅 산 수 치의 영혼을 이해하는 경지에 달한다. 또한 양자경은 촬영 도중 아웅 산 수 치의 가택연금이 해제되어 직접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영화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며 아웅 산 수 치와 혼연일체가 되어 <더 레이디>속에서 양자경의 모습이 아닌 10여 년의 세월의 흐름을 담아낸 아웅 산 수 치의 모습으로 완벽한 변신을 보여줘 관객들에게 세계 최고의 연기파 배우임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준다.
진실, 완벽주의자가 만들어낸 현실과 동일한 촬영 현장!
“모든 것은 반드시 완벽하게 동일해야만 한다!” 완벽주의자 뤽 베송이 <더 레이디>를 연출하며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은 진실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었다. 전화, 신문, 텔레비전도 없이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채 15년을 보낸 아웅 산 수 치의 집을 재현하기 어려웠지만, 뤽 베송은 최대한 실제와 동일한 아웅 산 수 치의 삶을 녹여내고자 고민하였다. 아웅 산 수 치 자택의 내부와 외부가 나온 사진을 보며 집의 구조와 가구를 연구하고 실제 크기를 위해 구글 어스 프로그램까지 사용하기도 했다. 그 결과 최대한 세밀한 부분까지 재현해내 똑같은 집을 짓는데 성공하게 된다. 더불어 그의 완벽주의는 소소한 소품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집안 내부에는 아웅 산 수 치가 실제로 치던 피아노와 같은 브랜드를 구해 배치하고 그녀의 부모님 사진이 든 액자도 똑같은 제품으로 준비한다. 심지어 그녀가 키우던 개와 같은 종류의 개를 찾아내는 섬세한 연출로 예전에 아웅 산 수 치의 집을 방문했던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했을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뤽 베송 감독은 아역을 구할 때도 아웅 산 수 치와 닮아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 조건으로 디테일한 부분까지 놓치지 않으며 <더 레이디> 속에 아웅 산 수 치의 인생을 고스란히 재현해 내기에 이른다.
데이빗 듈리스, 그 만이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었던 1인 2역!
“마이클 에어리스로 산다는 것은 나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에 도전했다!” 데이빗 듈리스는 아웅 산 수 치와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며 홀로 쓸쓸히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마이클 에어리스에 몰입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다. 그러나 유독 이 시나리오에 관심을 가진 데이빗 듈리스는 마이클 에어리스역 뿐만 아니라 동생 앤소니 역할까지 실감나게 해내기에 이른다. 특별한 특수 분장 없이도 단순히 행동과 억양만으로도 다른 사람임을 느끼게 할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펼친 그는 시나리오를 읽다가 너무 많은 눈물을 흘린 건 오랜만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더 레이디>에 대한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전혀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완벽한 1인 2역을 소화한 데이빗 듈리스는 영국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다운 면모를 과시하였고,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믿음을 전하며 위대한 업적을 이룰 수 있게 뒷받침 해주었던 마이클 에어리스가 되기 위해 수 많은 연구를 한 결과 관객들에게 영화 속 마이클 에어리스의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큰 안타까움을 느끼게 해 줄 예정이다.
노벨 평화상 수상, 라디오로 들을 수 밖에 없었던 아웅 산 수 치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같은 시간대를 보여준 장면이다!” 1991년 아웅 산 수 치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지만 가택연금에 처해 있어 그녀의 남편과 두 아들이 대리 수상을 한다. 영화 속에서 이 사건은 가장 강렬한 감동을 자아내는 장면 중 하나로 뤽 베송과 배우들은 이 장면을 찍기 위해 당시에 중계되었던 실황 영상을 보며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전 세계 취재진이 촬영해 아주 세세한 디테일까지 드러난 이 영상은 데이빗 듈리스를 비롯하여 두 아들 역할을 맡은 아역 배우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이 당시 아웅 산 수 치는 어떠한 행동을 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가택 연금 상태기도 하며 그녀의 행동에 대한 제한이 가장 삼엄했을 시기였기 때문이다. 시상식이 끝나고 한참 후 한 언론의 도움으로 그녀가 라디오로 시상식을 들었다는 정보만 입수하였을 뿐 실제로 어떠한 행동을 했는지, 어떠한 옷을 입었는지 등은 알 수 없었다. 완벽하게 그녀의 인생을 담고 싶었던 뤽 베송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그만큼 그녀의 입장에 서게 된 뤽 베송은 더욱 세심한 연출로 촬영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같은 시간대를 보여주며 서로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가족간의 그리움을 절실하게 표현한 이 장면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가장 큰 감동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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