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독립 영화계가 점 찍은 2010년 최고 개봉 기대작, <경계도시2>
2009 부산국제영화제 ‘배급지원펀드’ 수상, 2009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관객상’ 수상, 2009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독불장군상’ 동시 수상, 한국독립영화협회가 선정하는 ‘2009 올해의 독립영화상’ 수상 등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는 2009부산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상영된 이후, 작년 하반기 국내에서 열린 주요 영화제의 상들을 모조리 휩쓴 화제의 작품.
또한 새해에 들어서면서 크고 작은 해외 영화제에서의 관심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미 3월 21일 개막되는 홍콩국제영화제(Hong Kong International Film Festiva) 공식 경쟁작으로 상영이 결정되었으며, 유럽 최대 영화제이자 마켓인 ‘FIPA’에 등록되어 전 세계 영화 바이어들에게 소개되는 등 3월 18일 국내 개봉 준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배급에 들어간 <경계도시2>에 대한 해외 영화제들의 러브콜 역시 앞으로 상당수 이어질 것이라 전망된다.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계의 대표감독, 홍형숙 7년 만의 신작 <경계도시2>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1995), <변방에서 중심으로>(1997), <본명선언>(1998) 등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품들을 꾸준히 연출해 온 홍형숙 감독의 신작으로, 2002년 제작되었던 <경계도시>의 후일담 격이다.
1987년부터 서울영상집단에서 <전열>, <54일, 그 여름의 기록> 등 노동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5년 작은 학교를 지키고자 투쟁하는 농촌 공동체에 관한 작품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로 제1회 서울다큐멘터리영상제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 독립 영화인들의 고민과 성찰을 다룬 <변방에서 중심으로>(1997)는 그해 베를린영화제, 암스테르담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 상영되는 등 국내외 주요 영화제들에서 큰 주목을 받았으며, 1998년 재일 한국인 학생들의 이름 안에 숨겨진 민족 차별의 모순을 선명하게 드러낸 작품 <본명선언>으로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한국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리고, 2002년의 <경계도시1>과 지금의 <경계도시2>에 이르기까지,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중요한 의미의 작품들을 꾸준히 연출해 온 홍형숙 감독은 명실공히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史를 관통하는 대표 감독이다.
오직 <경계도시2>만을 위한 특별한 다큐프렌즈! 박원순 변호사 & 가수 김C
국내외 영화제에서 주요 상을 휩쓸며 2010년 최고의 기대작으로 떠오른 도발다큐 <경계도시2>의 다큐프렌즈로 박원순 변호사와 가수 김C가 함께 한다.
‘다큐프렌즈’는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가 좀 더 많은 대중들과 만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에서 활동을 펼치는 다큐멘터리 홍보대사를 지칭한다. 지난 해 <워낭소리> 개봉을 위해 배우 권해효와 방은진이 짝을 이뤄 제1기 다큐프렌즈로 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배우 문소리와 김태용 감독이 다큐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개봉 시 제2기 다큐프렌즈로, 배우 정찬과 변영주 감독이 다큐 <길> 개봉 시 제3기 다큐프렌즈로 활동한 바 있다.
2010년, 올해 가장 처음 개봉하는 독립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의 다큐프렌즈로는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이자 ‘우리 시대 대표적 시민운동가’라는 별칭을 얻으며 두터운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와 밴드 ‘뜨거운 감자’의 멤버이자 방송인 김C가 짝을 이뤄 활동하게 되었다.
‘1박 2일’, ‘청년불패’, ‘천하무적 야구단’ 등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으며 ‘재미있는 방송인’으로 각인되었던 김C는 최근 음악 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천하무적 야구단’의 감독직을 그만두고, 지난 22일 ‘어쿠스틱 레인보우’라는 제목의 공연을 시작으로 그가 속한 밴드의 활동 재개에 들어갔다. 이 공연은 지난해 ‘뜨거운 감자’와 ‘강산에’가 함께 펼친 인권콘서트 '휴먼'의 후속으로, 콘서트의 주제에 맞게 소외계층의 현실에 대해 분노를 담은 뜨거운 감자의 삐딱한 노래들을 선보인 바 있다. 이러한 김C의 음악적 행보와 공연 성격에 비추어 볼 때,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경계도시2>의 다큐프렌즈로 활동하는 것이 그리 낯설지 만은 않은 듯.
도발다큐 <경계도시2>의 다큐프렌즈, 박원순 변호사와 가수 김C는 영화 개봉에 맞춰 관객과의 만남, 영화와 함께 하는 공연 등 여러 가지 홍보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우리 모두가 보아야 할 必見의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 다큐프렌즈를 자청하는 각계각층의 서포터들
박원순 변호사와 가수 김C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경계도시2> 개봉을 응원하기 위해 법조계, 학계, 정치계 인사들은 물론, 사전 상영회를 통해 영화를 접한 다양한 영화계, 문화계 인사들이 <경계도시2>가 이야기하고 있는 문제의식에 깊은 공감을 표하며 지원 사격에 나선다.
새 앨범 <레미제라블>로 인기몰이 중인 가수 루시드 폴, <88만원 세대> 저자로 유명한 우석훈 박사, 진보적 칼럼니스트 김규항과 한윤형, 영화배우 권해효, 뮤지컬 <빨래>의 제작자이자 명랑시어터 ‘수박’의 추민주 대표, 소설가 김이환 등의 문화계 인사들, 그리고 이희영 교수(대구대 사회학과), 서복경 교수(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임지현 교수(한양대 사학과), 정유성 교수(서강대 교육문화과), 등 주요 학계 인사들까지.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경계도시2>에 지지를 보내며 작품에 대한 릴레이 기고에서부터 개봉 후 이어질 관객과의 대담 진행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를 알리기 위한 다양한 지지 활동을 함께 펼칠 예정이다.
이렇듯 웬만해서는 한 자리에 모이기 힘든 인물들이 오로지 <경계도시2>라는 하나의 공통 분모를 놓고 함께 하기로 약속한 것은 바로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가 지금 이 사회가 원하는 진정한 성찰의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어떤 드라마보다도 강렬한 매력의 다큐! 인기 뮤지컬 <빨래>의 제작자가 꼽은 2010년 가장 뮤지컬화 하고 싶은 영화, <경계도시2>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는 도발적인 인물과 그를 둘러싼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풀어놓으며, 관객들에게 여느 극영화 못지 않은 드라마틱한 경험을 제공한다.
뮤지컬 극단 ‘명랑씨어터’의 대표 이자 인기 뮤지컬 <빨래>의 연출가로 작년 한해 공연계를 이끈 대표적인 여성 연출가로 평가 받고 있는 추민주 대표는 얼마 전 주간한국과의 인터뷰에서 ‘뮤지컬 무대에 올리고 싶은 영화’로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를 주저 없이 꼽았다. 함께 인터뷰에 참석한 다른 연출가들이 인기 만화나 영화, 미국 드라마 등 공연화에 익숙한 장르의 작품들을 추천한 데 반해, 추민주 대표는 다큐멘터리 <경계도시2>를 꼭 뮤지컬화 하고 싶다 밝히며, ‘다큐멘터리는 지루하다’, ‘다큐멘터리는 너무 진지하다’ 라는 편견을 날려 준 최초의 다큐멘터리이자, 그녀가 근래에 본 최고의 영화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듯 <경계도시2>는 사회성 짙은 주제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등장 인물들이 갖고 있는 날 것 그대로의 드라마틱한 힘으로 인해 극적 재미까지 충분히 갖춘 수작 다큐멘터리이다.
2002년의 <경계도시1>, 그리고 2010년의 <경계도시2>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는가?
2002년의 <경계도시1>이 간첩 혐의를 받으며 35년 간 입국금지 상태였던 재독 철학자 송두율이 재차 귀국을 시도하다 좌절되는 과정을 인물 중심으로 풀어낸 작품이라면, 이번에 개봉하는 <경계도시2>는 2003년, 마침내 37년 만에 귀국하게 된 송두율과 그를 둘러 싸고 벌어진 대한민국 이데올로기의 광풍을 적나라하게 기록한 작품이다.
<경계도시1>과 <경계도시2> 사이의 시간적 간극은 7년. <경계도시2>는 다큐멘터리치고는 상당히 긴, 7년을 작업한 영화이다. 촬영기간은 1년 정도였고 감독이 마음먹기에 따라 더 일찍 선보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러나 7년을 끌어야 했을 만큼 감독에게는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감독 스스로도 혼란을 겪으며 생각을 정리하는 데 적지 않은 고뇌의 시간이 이어졌다.
2003년에 촬영된 테이프 더미를 마냥 껴안고 고민하던 감독이 영화의 구체적인 틀거리를 짜기 시작한 것도 4년 전인 2006년에 들어와서다. 그리고 꼬박 3년에 걸쳐 편집을 해 2009년에야 완성될 수 있었다. 영화 안에도 감독이 오랜 편집 시간 동안 느꼈던 여러 가지 혼란과 방황이 내레이션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감독은 프레시안과의 인터뷰를 통해 “태풍의 시간을 통과한 후에 시간을 가져야 했다. 편집기에 앉아 화면을 응시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일이었고, 덮어버리거나 외면하고, 포기하고 싶을 만큼 갈등의 시간이었다.”고 후기를 밝힌 바 있다.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당시 벌였던 이념 논쟁이 얼마나 허구에 찬 인격모독인지를 보여주는 한편으로, 자신 역시 그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데 대한 반성의 의미를 영화 속에 담고 싶었다고 한다.
감독이 <경계도시2>에 대해 이야기하며 성찰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른바 ‘송두율 사건’이라 불리는 이러한 일들이 단순히 과거에 있었던, 끝나버린 일이 아닌, 지금도 끝나지 않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
카메라의 시선이 나에게로 돌아온다! 관객들이 주인공이 되는 영화, <경계도시2>
홍형숙 감독은 송두율 교수의 귀국이 확정되자, <경계도시1>의 후일담 정도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경계도시2>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사건은 겉잡을 수 없는 상황 속으로 치달았고, 그의 3주 간의 한국 방문 과정을 카메라에 담고자 생각했던 애초의 계획은 의미를 잃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의 과정 속에서 감독은, 1편에서 보여줬던 객관성을 유지하는 연출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등장인물이 되어 스스로의 고민과 감성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바로 이 점이 <경계도시2>가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상과의 긴장감을 버텨낸 채, 감독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며 카메라에 담아낸 생생한 한국 사회의 단면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감독의 고민에 가까워지게 하는 것은 물론, 화면 속에 펼쳐지는 상황에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입장을 대입시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관객들은 카메라의 시선이 화면 속 ‘송두율 교수’가 아닌 ‘우리 자신’에게 돌아와 있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영화를 완성하는 동안 감독 스스로가 그랬던 것처럼, 관객들은 <경계도시2>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과 한국 사회 자체의 모습에서 관객 스스로의 자화상을 하나쯤 발견할 수 있을 것이며, 극장을 나설 때 질문 혹은 화두를 품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수많은 우리들인 것이며, 바로 이 점이 <경계도시2>가 우리 모두가 보아야 할 必見의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는 중요한 이유이다.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과 충무로 극영화 스태프들의 만남! 3주의 촬영 계획이 7년의 대장정으로!
애초에 <경계도시2>는 홍형숙 감독의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졸업작품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2003년 송두율 교수의 입국이 성사되었을 즈음, 홍 감독은 대학원 동료들과 함께 졸업작품 제작팀을 꾸리고 있었던 터였다. 이에 홍 감독은 <죽어도 좋아>의 김명화 프로듀서, <10억>의 류재훈 촬영감독, <싸움의 기술>의 임재수 촬영감독, <이대로 죽을 순 없다>의 홍종경 촬영감독 등 촉망 받는 충무로의 신진 촬영 감독들과 프로듀서로 구성된 ‘졸업작품 드림팀’을 결성, 송두율 교수의 입국과 동시에 그의 옆방을 기지로 삼아 합숙 체제에 돌입한다. 당초 촬영 예상 기간은 송 교수가 한국에 머무르기로 한 3주!
“프로듀서 : 아니 왜 사람들이 자꾸 PD가 잘못했다는 거야? 내가 뭐?”
그러나 사건이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면서, 제작팀 내부의 긴장 또한 최고조에 달했다. 홍형숙 감독을 제외한 나머지 스태프들은 모두가 다큐멘터리 제작에 처음 도전하는 상태였고, 더불어 송두율이라는 인물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휘몰아치는 ‘송두율 사건의 광풍’은 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충무로 현장에서 NL, PD 논쟁과는 무관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정치적 격동의 한 복판에 서게 된 것.
촬영 테입 400개, 자료 테입 100개의 강행군! 최소 3대에서 5대의 카메라가 돌아가고, 하루에 60개씩 테이프가 쌓였다.
또한 광풍으로 치닫는 사건의 속도를 따라 갈 뿐, 쉴 틈을 주지 않는 홍 감독의 강행군은 제작진의 스트레스를 극에 달하게 했고, 급기야 촬영 감독들은 돌아가면서 가출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송 교수가 선친 묘소를 방문했을 때 흘리는 눈물을 보며, 뷰 파인더를 보고 있던 류재훈 촬영 감독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극영화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대상과의 일체감이 류 감독을 전율케 만들었던 것. 그렇게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과 충무로 극영화 스태프들의 좌충우돌 작업은 끝이 났다. 그리고7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여전히 그때와 같은 사건이 여러 가지 탈을 쓰고 반복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 속에서, 이 영화를 통해 당시 스탭들이 느꼈던 예기치 못한 전율을 관객들 또한 느낄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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