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종 드 히미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 모든 감동은 <금발의 초원>에서 시작되었다!
2004년 가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라는 낯선 제목의 영화가 개봉했다. 다리가 불편한 소녀와 평범한 대학생의 쌉싸름한 러브스토리에 공감한 관객들의 자발적인 입소문을 통해 영화는 개봉 당시 3개월이 넘는 롱런 상영을 했으며, 1년 후 다시 한 번 조제를 만나고 싶다는 관객들의 요청에 의해 재개봉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2006년 1월, <메종 드 히미코>라는 이색적인 제목의 영화가 개봉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잊지 않은 팬들의 성원은 물론, 동성애 커뮤니티를 감독 특유의 따뜻한 어법으로 풀어낸 영화 <메종 드 히미코>는 주연 오다리기 죠를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배우로 자리매김시켰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슴 싸해지는 현실을 담담히 보듬는 솔직담백한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가 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리며 영화는 3개월간 장기 상영되었을 뿐 아니라 10만에 가까운 관객을 동원하는 슬리퍼 히트를 기록했다. 한국인들의 가슴에 가장 가까이 다가와 있는 감독인 이누도 잇신. 2006년 9월, 지금의 그를 만든 작품 <금발의 초원>이 드디어 공개된다.
‘경계선’ 3부작의 시초 <금발의 초원>
<메종 드 히미코>라는 동성애 영화에 대해 이누도 잇신 감독은 ‘나와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의 하나이다. 다른 세계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세계에도 희망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역시 장애 때문에 자신의 공간 안에만 갇혀 살던 소녀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 평범한 대학생의 이야기이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경계선, 그 선을 넘을 때 일어나는 드라마에 흥미로움을 느낀다고 말하는 감독은 ‘연애’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한다. 남성과 여성, 국가와 국가, 문화, 종교를 포함한 그곳에 존재하는 경계선에 흥미를 가지고 있고 그 경계선을 지워버리려는 행위에 위화감을 느끼기에,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계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에 가까이 다가가고 또 넘으려는 시도를 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공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발의 초원> 역시, 자신의 꿈과 현실을 어떻게 구분해야 좋을지, 그 경계선 긋기에 실패한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소녀의 섬세한 감수성, 생소한 상상력이 만드는 커다란 울림!
일본 순정 만화계의 거장 오시마 유미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금발의 초원>. 오시마 유미코의 만화는 지금까지 여러 작품이 영화화 되었지만, 실제 살아 숨쉬는 배우들을 데리고 그녀 특유의 추상적인 묘선과 정밀하게 구성된 이야기의 독자적인 분위기를 재현해내는 것은 무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10대 시절부터 오시마 유미코의 팬이었다고 자처하는 이누도 감독은 이미 대학 재학 시절 그녀의 작품을 원작으로 <빨간 수박, 노란 수박>이라는 영화를 만들 정도로 그녀 작품의 영화화에 대한 의지가 높았다. 훗날 <메종 드 히미코>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게 된 계기 또한 게이의 일생을 그린 오시마 유미코의 <넝쿨장미>의 영화화를 준비하면서라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감독이 <금발의 초원>을 처음 읽은 것은 20대의 일. 꿈과 현실을 어떻게 구분해야 좋을까에 대한 테마는 당시의 그에게 너무나도 절실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약 20년 후, 감독을 감복시킨 그 메시지 그대로 담긴, 21세기를 살고 있는 젊은 이들을 향한 또 한 편의 새로운 작품인 <금발의 초원>이 완성되었다.
꿈과 웃음 넘치는 이공간, 금빛 물결 넘치는 초원 안으로…
자신이 20살이라는 착각에 빠진 80세 노인 닛포리를 찾아온 신임 도우미 나리스. 18세의 나리스는 닛포리가 동경하던 학교 앞의 마돈나와 너무나도 닮아있다. 마돈나가 매일같이 자신의 집에 와서 가사를 도와주는 행복한 현실 속의 꿈, 그리고 심장병 때문에 팔십 평생을 집안에서 지낸 현실. 상반되는 꿈과 현실 속에서 괴로워하는 닛포리. 그리고 피가 이어지지 않은 동생을 향한 마음 때문에 괴로운 나리스의 청춘. 두 사람의 감정을 잡아내는 이누도 감독 특유의 섬세한 터치는 원작의 기발한 상상력 안에서도 녹록치 않은 현실을 잊지 않게 한다. 그저 평범한 ‘러브스토리’의 변형일지도 모를 이야기는 등장 인물간의 미묘한 관계와 적절히 억제된 감정 묘사,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을 통해 꿈도 웃음도 없는 현실이라는 공간을 미소번지는 금빛 물결 넘치는 초원으로 탈바꿈시키는 마법을 부린다. 눈물을 미소로 바꾸는 ‘금발의 초원’ 안에서 두 사람이 찾는 인생의 해답은 과연 어떤 것일까.
오시마 유미코가 이어준 인연
뮤직비디오 작업을 통해 처음 알게된 쿠보타 오사무 프로듀서와 이누도 잇신 감독. 이누도감독을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시네필 정도로 알았던 쿠보타 프로듀서는 우연히 이누도 감독이 만든 <두 사람이 말한다>를 보고 감동받은 나머지 극장 개봉을 추진할 정도로 그의 팬이 되었다. 쿠보타 프로듀서가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를 제작하며 영화제작사를 설립, 차기작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이 바로 이누도 잇신 감독이었다. 몇 번의 회의 끝에 나온 결론은 바로 오시마 유미코의 만화를 영화화해 보자는 것. 그도 그럴 것이 이누도 감독은 대학 시절 이미 <빨간 수박, 노란 수박>을 영화화했으며 쿠보타 프로듀서 자신도 대학 시절 그녀의 만화 <초원의 공주>를 기초로 작품을 만들 정도로 팬이었기에 둘의 의견은 일치할 수 밖에 없었다.
나리스와 닛포리를 애타게 찾아서…
영화화에 있어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바로 캐스팅. 순정만화 원작의 경우, 여배우 캐스팅이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거기다 나리스는 특별히 까다로운 캐릭터였다. 그녀는 18세라는 젊은 여성인 동시에 노인의 가사 도우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꿈에 빠진 노인의 구애를 받아들이려고까지 하는, 어떤 의미로는 별종이라 할 수 있는 여성을 리얼리티가 생생히 살아있게 연기할 여배우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때, 이누도 감독은 이치가와 준 감독의 <오사카 이야기>의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거기서 15세의 이케와키 치즈루를 처음 만난 감독은 그녀라면 나리스를 연기할 수 있을 것이라 직감했다. 그토록 현실감 넘치는 젊은 여배우는 흔히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닛포리의 캐스팅도 쉽지 않았다. 1920년대에 태어난 인물을 20대의 배우가 연기해야 하는 상황. 간단하게 캐스팅될 리는 없었다. 쿠보타 프로듀서는 그 무렵 에드워드 양 감독의 합작영화의 후보로 점 찍어 두었던 이세야 유스케를 기억해낸다. 그의 사진에서 풍겨 나오는 현대적인 동시에 ‘일본’적인 느낌. 그리고 첫 미팅에서 그는 오토바이 사고로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이세야 유스케는 지금 이런 청년이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귀중한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다. 전쟁 전의 옛 일본청년이 가지고 있었을 자연스러움을 그에게서 발견한 감독은 그를 바로 닛포리 역으로 결정했다고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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