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품어 안는 넉넉함으로, 새만금 갯벌을 살리러 나선 씩씩한 이모들!
<살기 위하여>에는 갯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은 순덕 이모를 비롯한 계화도의 ‘이모’들이다. 권력에 눈이 먼 자들이 새만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할 때도, 고기잡이 보다 면세유에 눈이 벌건 선외기 선주들과 어촌계장이니 이장이니 하는 감투 쓴 사람들이 처음의 맹세를 저버리고 정부와의 협상에만 목을 맬 때도, 변함없이 한 목소리로 ‘바다와 갯벌을 살려야 한다’고 당당히 소리친 여성어민들.
그동안 ‘바다’, ‘어부’라고 하면, 거친 파도와 험한 바람에 맞서 그물질을 하는 투박한 남성을 먼저 떠올렸지만, <살기 위하여>는 계화도의 이모들을 통해 또 다른 ‘어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툼한 장화에 구럭(조개를 담는 주머니로 어깨에 맬 수 있도록 길게 고리를 달아 쓰는 망태기의 일종)을 맨 그녀들은 달력이나 시계를 보지 않아도, 최첨단 장비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어느 때 어느 곳에 가면 물고기와 조개들이 있는지를 훤히 알고 있는 ‘갯벌 전문가’들이며, 무엇보다 그런 자신들의 삶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타고난, 천상 ‘바다 사람’인 것이다.
‘바다와 갯벌을 살리는 일’이라면 언제 어디서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던 그녀들. 드넓은 갯벌이 모든 생명을 품어안듯, 그 스스로 넉넉하고 따뜻한 갯벌이 되어 소중한 생명들을 지켜내고자 했던 '계화도 이모들'의 고군분투! 그녀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진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부림’이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생합’을 본 적이 있으세요? 갯벌에서 하는 ‘그레질’을 아시나요?
변해가는 새만금 갯벌의 풍경, 10년간의 밀착 취재가 탄생 시킨 소중한 기록
2009년 현재 새만금은 예전 이곳이 바다였다고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변해버렸다. 풀이 무성하게 자란 마른 땅은 물기를 가득 머금어 잘박하던 갯벌의 흔적을 저 깊고 깊은 땅 속으로만 묻어두고 있는 것이다. 드넓은 갯벌에서 ‘뻘짓’하며 장난치던 어린 시절의 기억, 계절 따라 돌아오던 실뱀장어와 도요새들도 이제는 머나먼 추억 속의 이야기.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온 어촌 공동체, ‘바다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화, 언어, 생활양식이 사라졌음은 물론이고 조개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던 지역 어민들은 당장 먹고 살 일이 깜깜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갔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거적데기 프로젝트’, ‘보리심기 프로젝트’ , 등에 동원되어 소중한 갯벌에 제 손으로 거적을 덮으며 일당을 받고 있기도 하다.
첫 물막이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새만금 어민들과 부대끼며 그 가장 가까운 곳에서 주민들의 투쟁을 기록해온 이강길 감독의 카메라는 이렇게 변해가는 새만금의 옛모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화면 속에만 존재하는 생명력 넘치던 갯벌과 그 곳에서 ‘그레질’을 하는 여성 어민들의 모습들… 그들에 대한 충실한 기록인 <살기 위하여>는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소중한 기억이자 계화도 주민들의 든든한 지원자로써 지금도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고 있다. 새만금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 계속되는 한 이 영화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한다! 이 시대에 진정 소중한 가치를 깨닫게 하는 완.소. 다큐멘터리
1987년 첫 계획 발표 후, 1991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새만금지구 간척사업’은 1억 2천만 평의 국토가 새로 생긴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야심차게 출발하였다. 식량단지의 확장으로 농어민의 소득 증대는 물론 상업용지의 확대와 교통/수송비 절감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세계 최대의 간척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그것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현지 주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는 뒷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쓸모 없는 땅’으로 여겨졌던 갯벌은 다양한 생명체를 키우는 완벽한 하나의 생태계로 각종 해양생물과 철새들의 보금자리이자 수많은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뿐만 아니라 하천의 수질을 정화하고, 기후 조절, 수위 조절 기능 등을 수행하는 ‘지구의 콩팥’ 이기도 하다.
실제로 방조제가 완공되고 바다가 막히고 난 후, 말라버린 진흙 속에서 조개들은 바짝 타 들어간 모습으로 떼죽음을 당했고, 조개의 무덤이 되어버린 갯벌에선 악취가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계화도를 비롯한 근처 주민들은 갑자기 변해버린 환경과 막막해진 생계 앞에서 불안함을 넘는 ‘생존’의 위협을 느껴야 했다. 게다가 수문의 열리고 닫힘에 따라 바뀌어버린 바닷물의 흐름에 적응 못하고 ‘내 집 마당 같던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故류기화씨까지...
2009년 끔찍한 비극, 용산 참사 역시 무자비한 개발논리가 ‘생명의 가치’에 앞선 결과였음을 돌아볼 때, ‘살기 위한’ 자들의 몸부림은 비단 새만금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성급하고 무분별한 개발은 결국 인간의 삶을 파괴하고 나아가 생태계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살기 위하여>의 엄중한 경고는 그렇기에 더욱 의미심장하다.
“이제 너도 떠나고, 우린 추억으로 남겠지…” 감독의 마음을 움직인 한 마디.
이강길 감독이 계화도를 처음 찾은 것은2000년이었다. 새만금 문제가 불거져 나오기 시작할 무렵, 당시 감독이 활동하고 있었던 ‘푸른영상’에 새만금 문제를 다룬 기획영상을 만들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고,3개월 정도의 촬영기간을 예상하며 이강길 감독은 계화도를 찾았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찾은 마을의 사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했고, 무언가 예감이 있었던 것인지 마을 주민들도 동갑내기 감독의 카메라에 대고 이런 저런 속사정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약속한 3개월이 지날 무렵 감독의 마음을 움직인 결정적인 한 마디, “이제 너도 떠나고, 우린 추억으로 남겠지…” 당시 계화도 주민들을 힘들게 했던 많은 일 중 하나는 바로 주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해주는 언론이 없었다는 것. 중앙매체는 환경운동가의 의견에 집중했고, 지역 매체들은 새만금 사업 찬성의 의견을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막혀가는 바다를 눈 앞에 두고 당장 막막해진 생계 걱정에 밤잠 못 이루는 주민들의 이야기는 그 어떤 매체에서도 다루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예정된 3개월이 지났지만 차마 그 곳을 ‘추억’ 속에 남겨놓지 못한 감독은 카메라 한 대와 6mm테잎만을 싸들고 아예 계화도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과의 정도 정이지만, 무엇보다도 주민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중요했다.
계화도 주민들의 일기장이 된 카메라, <어부로 살고 싶다> 연작 다큐멘터리의 탄생
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10년을 이어지면서 <어부로 살고 싶다> 연작 다큐멘터리로 태어났다. 2001년 <새만금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로 시작하여 2006년 <살기 위하여>로 이어진 작품들은 새만금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완성시킨 ‘계화도 주민들의 일기장’과 다름없다. 화가 나고, 답답하고, 때로는 서로 상처를 내고, 그러다 웃기도 하고… 어디서도 내보일 수 없었던, 누구도 귀 기울여주지 않았던 주민들의 깊은 속내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것이다. 결국 바다는 막히고 새만금 물막이 공사는 완료되었지만, 주민들과 이강길 감독이 함께 쓰는 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갯벌이 완전히 육지로 바뀌기 전에 공사를 중단하고, 해수를 유통시킨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마음으로 그들은 마지막 힘을 모아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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