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1999, The Love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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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쉬네의 소설 [더 러브 레터]의 영화화는 소설 그 자체 때문에 시작된 것은 아니다. 캐서린 캡쇼가 어느날 뉴욕 타임즈에서 이 소설에 관한 평을 읽고 흥미를 기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이 소설을 반쯤 읽을 무렵 그녀는 이 소설의 판권을 사들였다.
캡쇼는 처음에는 작은 독립 영화사들에 이 작품을 들고 돌아다녔다. 어느날 그녀의 남편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부엌에 쌓여있는 종이와 책들을 보고 그녀가 소설 [러브 레터]의 판권을 사들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필버그는 캡쇼에게 드림웍스에서 제작해보지 않겠내고 제안했다. 캡쇼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저는 이 영화는 매우 작은 영화라고 말했죠. 그랬더니 한 번 보기나 해 보자구 그러더라구요. 전 이 영화가 작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드림웍스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줄 알았죠. 그런데 다들 매우 좋아하더라구요. 그리고선 갑자기 영화가 만들어졌어요." 그녀의 첫 프로듀서 작업을 함께 할 사람으로 그녀는 그녀가 배우로 참여했던 또 다른 다세대의 이야기를 담았던 영화 [아메리칸 퀼트]의 프로듀서들이었던 밋지 샌포드와 사라 필스버리를 꼽았다.
또 다른 프로듀서 듀오로는 밴데리아 엔터테인먼트의 파트너인 보 플린과 스테판 심쵸위츠가 있다. 그들은 캡쇼와 독립영화 [The Alarmist(공연히 소란을 피우는 사람)]에서 후에 executive producer로 참여해 함께하기도 했었다. "케이트와 다시 함께 일한다는 것은 아주 기뻤죠." 프로듀서 밋지 샌포드는 말한다. "우리는 일단 이 소설을 가장 잘 영화화해줄 시나리오 작가를 찾기 시작했죠. 한 다섯명정도로 그 수를 줄였는데 그 중에서도 마리아 매전티가 가장 뛰어났죠. 그녀의 아이디어들은 아주 훌륭했구요 에너지와 독창성이 넘쳐났거든요." 사라 필스버리도 이에 동의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모두 그녀의 열중에 넘어갔죠. 하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 열정과 흥분들을 시나리오속에 담아낼 수 있었다는 거였어요."
마리아 매젠티는 곧바로 캐서린 쉬네가 쓴 작은 뉴잉글랜드 마을의 동경과 자각에 대한 이야기로 들어갔다. "소설은 정말이지 재치있고 총명했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어려웠던 점은 내면의 움직임을 외부의 행동으로 끌어내는 것이었어요. 헬렌의 마음의 소리를 밖으로 끌어내어 들리게 하는 것같은거 말이에요." 시나리오 작가와 함께 헬렌의 성격들을 만들어내는데 깊게 관여했던 케이트 캡쇼는 이렇게 말한다. "헬렌은 혼자삵도있는 엄마이며 매우 일상적이고 절제되어있는 삶을 살고 있죠. 그러던 어느날 수신자가 적혀있지 않은 매우 정열적인 편지를 발견하게 되요. 이 편지에 그녀는 매우 놀라며 자신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끼죠. 그녀는 이제 자신과 주위의 세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게되고 오래전에 자신이 가졌던 열정들을 기억해내기 시작해요." "케이트는 우리가 회의를 할 때마다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것들을 끌어내었어요." 매전티는 말한다. "제가 매우 추상적으로 말하면 케이트가 이것을 현실로 가져왔어요. 헬렌의 성격을 만들어내자 영화의 받침이 완성된거나 다름없었죠."
영화가 작고 순수한 미국마을의 여성캐릭터들에 관한 얘기를 주로 다루는 것을 생각할 때 중국의 남자감독이며 미국에서는 영화를 처음 만드는 진가신 감독을 선택한 것은 매우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듀서들이 진가신의 [첨밀밀]을 봤을 때 그들은 이 감독이야 말로 [러브 레터]을 맡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이러한 확신은 그들이 진가신 감독을 만나고 더욱 확고해 졌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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