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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빨고 만든 살육의 현장.. 악의교전
ldk209 2013-09-10 오후 4:43:35 452   [1]

 

약빨고 만든 살육의 현장.. ★★★★

 

영화의 도입부. 한 부모가 최근 살인사건의 범인이 아들 같다며 걱정을 한다. 그 순간 칼을 들고 나타나는 어린 아들. 섬뜩하면서도 매혹적인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리고 수십 년 후, 한 고등학교 영어교사 하스미(이토 히데아키)의 이야기로 점프한다. 키도 크고, 얼굴도 잘생긴데다가 학벌 좋고,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아이들과 대화도 잘 통하는 한마디로 만능 교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스미는 안 보이는 곳에서 다른 교사의 약점을 잡아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가 하면, 제자와의 밀회를 즐기고,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는 등의 극단적 성향을 표출하며, 급기야 자신을 의심하는 교사와 학생들을 차례로 죽이는 잔혹성을 드러낸다.

 

영화 <악의교전>은 기시 유스케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기스 유스케는 <검은 집>을 통해 사이코패스란 존재를 각인시켰다면, <악의교전>에선 왜 사이코패스가 위험한 존재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보통 사이코패스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없거나 떨어지는 존재라고 하는데, 현실의 사이코패스 대부분이 평범하게 살아간다고 하며, 오히려 집중력과 성취욕이 높아 직장에서 높은 업무평점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마 영화 <악의교전>에서 하스미에게 살인마로서의 모습을 제거했을 때의 결과물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영화는 거의 두 편의 영화를 별개로 만들어 이어 붙인 듯한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좋은 교사로서의 하스미, 그리고 그의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일들을 스릴러적 기법으로 다룬 중후반까지와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학급 학생 전원을 죽이는 후반부의 피칠갑 호러영화가 그것이다. 사실 영화의 약 3/4 지점까지 영화는 느슨하면서도 조금은 루즈하게 흘러간다. “미이케 다카시가 연출한 영화 맞아?”란 의문점이 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거기에 왜 도대체 하스미가 이런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인지 별다른 설명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하스미는 자신이 악을 처단하러 다니는 정의의 사도라고 믿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물론 처단할 악이라는 게 고작 컨닝 등의 사소한 범죄이긴 하지만) 이런 차원에서 보자면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은 인과관계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내러티브의 블랙홀일지도 모른다.

 

영화의 중후반부까지, 조금은 산만하면서 루즈하게 흘러가는 부분임에도 묘하게 집중력을 잃지는 않는다. 그게 바로 영화의 도입부 효과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도입부가 없이 처음부터 성인 교사인 하스미의 이야기가 나왔다면 집중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실 영화는 도입부의 어린 소년이 성인의 하스미가 되었음을 바로 알려주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관객은 하스미에게 잔인한 살인마였던 어린 소년의 모습을 투영하고, 하스미가 사람 좋은 미소로 학생들을 대하는 순간에조차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이제, 모든 정체가 공개된 하스미가 샷건을 들고 아이들을 사냥하러 다니는 순간부터 미이케 다카시 감독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엄청난 소리의 샷건이 폭발할 때마다 아이들의 머리가 박살나고 피가 튀며 뇌수가 흐른다. 그러는 순간에도 어떤 아이들은 평소 친절했던 하스미에게 목숨을 구걸하지만, 오히려 하스미의 살인 본능을 더 자극할 뿐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참으로 이상한 현상이 나타난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후반부 살육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킥킥 웃음이 유발된다는 점이다.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에서 기대했던 장면이 나와서인지도 모른다. <악의교전>을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미이케 다카시는 마지막 장면을 보여주고 싶어 안달했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요새 유머로 약빨고 만든 영화랄까. “야! 이 변태 감독아! 이거 너무 죽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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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교전(2012, Lesson of the Ev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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