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포함이 되어 있을수 있고, 편의상 말을 짧게 합니다.
또 대사는 일부 틀릴 수 있으나 느낌을 전하기에 충분하리라 판단합니다.
마지막으로 오타가 많을 수 있으니 지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을 적어놓은 것이니만큼 의견을 주시면 감사히 수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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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를 살아가면서, 수 많은 문제들과 우리는 마주하게 된다.
물론 즐거운 일들도 많이 접하게 되지만, 뉴스를 통해서, 신물을 통해서, 비극적인 이야기들을 접한다.
가정사로 이한 폭력문제부터 뜻하지 않게 발생한 사고나 자살문제 등등이 그러하다.
최근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은 뜻하지 않게 발생하지 않은 사고로 인재라고 한다.
총체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다 말하고, 사건발생 2주가 지났음에도 아직도 뜨겁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뜨거움이 더욱 지속되어 구조적인 문제들을 모두 개선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사고들도 있지만, 자살문제도 만만치않게 사회적으로 이슈이다.
OECD 국가중 단연 자살률 1위. 확고부동한 1위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문제다.
물론 그 수로보면 인구가 더욱 많은 국가들이 있어 많이 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살률을보면 정말 어마어마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누군가는 자살할 용기로 더 악착같이 살아라라고 말한다.
하지만, 악착같이 살 수 없다면? 살아갈 용기가 죽을 용기보다 적다면? 등등..자살을 하는 이유는 천차만별일 것이다.
학교폭력에 시달리다가 더이상은 버틸 수 없고, 희망이 보이지 않아 이러한 일을 자행할지도 모른다.
점차 깊어지고, 많아지는 무관심이라는 보이지 않는 벽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기에, 바로 옆집에 누군가가 죽어도 한참동안 모르는 시대에 살기에 그들이 목숨을 유지하는 용기를 주지 못했기에 말이다.
그들이 그러한 문제를 겪는 것은 그들 자신의 정신적인 부분일 수도 있지만,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TV 드라마들을 보면 정말 무시무시하다.
일주일 내내 누군가가 죽고, 연쇄살인마가 판을 치는 이야기들을 보고있자면, 우리 주변에 그렇게도 많은 사이코 패스가 존재할까? 라며 의심하게 된다.
사람은 모두 죽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떻게 죽느냐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 된다.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하고(그것이 인재이건 자연에 의한 것이건), 스스로 목숨을 끊고는 정상적인 범주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물론 예기치 않은 사고사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죽음은 늘 우리의 근처에 머물고 있다.
삶이 있는 곳에 죽음이 있고,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도 우리의 생활일 것이다.
그러한 부분들을 다룬 영화 '천주정'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천주정에는 세명의 살인자와 한명의 자살시도자가 있다.
자살시도자라 하는 것은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구성하는 흐름을 보자면 여섯가지 정도로 분류가 된다.
첫번째 살인자는 강도를 당할 위기에서 알 수 없는 총질을 한다.
너무나 무덤덤하게 발사하는 그의 얼굴은 그 어떠한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는다.
두번째 살인자는 계속해서 분노를 응축시켜놓다가, 그것을 폭발시킨다.
그 응축됨을 표현하는 것처럼 산탄총을 발사하며, 분노를 방출한다.
세번째 살인자는 첫번째 첫번째 살인자이고, 자신의 돈을 거부하는 부인을 뒤로한다.
좋은 아버지처럼, 좋은 남편처럼 보이지만, 그 돈이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획득한 돈이다.
그는 돈 때문에(이 영화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 총을 발사하고, 얼굴을 가리고 태연하게 걸어 사라진다.
네번째 살인자는 불륜남의 부인에게 맞고 처량하게 도망치지만 다시 돌아온다.
그녀는 매춘부로 오해 받으며, 모욕을 당하던 중 칼을 휘두른다. 마치 협객처럼.
다섯번째 살인자(스스로를 살해하는 자살시도자)는 어디에도 제대로 정착을 하지 못한다.
무엇하나 뚜렷함이 없는 그는 '좋아하'는 감정을 느꼇지만 무너지고 가볍게 몸을 던져버린다.
여섯번째 여자는 두번째 살인자가 저지르는 지역에, 그가 살해한 남자의 부인이 있는 회사에 취직하고자 움직인다.
그곳에 당도한 뒤, 그가 봤을 법한 경극을 그녀는 슬픈 눈으로 바라본다.
주요 살인자는 총 네명으로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중국의 실화를 기반으로 만들어 졌다는 이 영화는 어느 사회에도 통용되는 이야기이다.
비리, 집약되는 분노, 물질 만는중의, 무차별 살인, 가벼운 현대인들의 모습과 행동 등등이 지금의 우리들과 꼭 닮아 있다.
또한 그들이 보여주는 매 맞는 말, 우리에 갇혀 어딘가로 이동되는 소, 차안에 갇혀 서성거리는 뱀, 비닐봉지 속 물고기는 또 그들과 닮아 있다.
비록 향후 그들의 행방은 알 수 없지만, 뱀과 소는 늘 갇혀있다.
말은 더이상 맞지 않게 되었고 스스로 움직인다.
물고기는 방생되어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원하는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자유는 어디에 있을까.
누군가가 놓아준다고 그것은 자유일까. 또 다른 세상의 굴레속에 갇히는 것은 아닐까.
그러한 모든 것이 불분명한 영화는 그들이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아도 모두가 이어져있다.
얇은 실타레처럼 말이다.
각각 어느 지점에서 스친적이 있는 네 사람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신들을 해방시켰고, 표현했고, 움직였다.
무엇이 진실인지, 허구인지,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하나는 분명하다.
그들이 곧 우리라고, 다소 과격하고 진하게 보여주지만, 결국 같은 모습이라고.
흐릿하게 잡았다가 다시금 또렷하게 잡는 카메라 앵그러럼, 우리도 때로는 모호하고 흐릿하다.
또 진하고 뚜렷하게 표현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같은 영화. 천주정이다.
★ 5개 만점
★★★★(스토리 8 연출 9 비쥬얼 8 연기 8 오락 7 총점 8) 어딘가 익숙한 이야기는 흔해빠진 모습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단지 우리에게 익숙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때론 나약하기도, 때로는 과격하기도 하다. 표현을 하지 않은 채 억누르고 지내다가도 한순간에 폭발시켜 버리기도 한다. 그들처럼 누군가를 죽이고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것으로 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의도된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흐릿했던 앵글은 그들 자신의 모호함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또 또렷하게 잡힌 앵글은 그들이 확신이 있고 나아갈 때, 변화가 있을 그 순간을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이들 중 세명은 살인자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랑 다르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도 그렇다.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 않더라도, 우리도 그들처럼 지금 어느 곳에서 누군가를 죽이고 있으니까.
우리들의 모습을 실제처럼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든 행동들은 우리들의 모습이다. 잔인하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의 세치혀로 그들보다 더 잔인하게 누군가를 짓밟고 죽이고 있으니까. 우리들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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