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산 채로 생매장 당하는 고통을 느껴봐.. ★★★☆
<렛 미 인>처럼 겨울이 영원히 지속될 거 같은 하얀 시골마을이 <소녀>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이다. 역시 <렛 미 인>처럼 소년 소녀의 애틋한 사랑이 담겨져 있지만, <소녀>는 <렛 미 인>이 아니다. 사실 <소녀>의 핵심은 말의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사소한 말실수, 그로 인한 친구의 자살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소년 윤수(김시후)는 낯선 시골로 전학을 오게 된다. 첫날,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던 신비스런 분위기의 소녀 해원(김윤혜)에게 마음을 빼앗긴 윤수. 그러나 소녀에겐 신기가 있다, 아버지와 이상한 관계다, 헤프다 등의 소문이 떠돌고, 학교 아이들은 누구도 소녀와 가까이 지내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소문을 믿지 않으려 노력하는 윤수는 해원과 점점 가까워지지만, 해원을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와 해원의 이상한 행동에 점점 해원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소녀>는 이미지의 영화이며, 대표적인 이미지는 단연코 ‘아름답다’ 일 것이다. 무엇보다 두 남녀 주연배우와 하얀 눈에 덮인 풍경이 주는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인상을 남긴다. <소녀>에서 <렛 미 인>을 떠올리는 것도 아마 이 아름다움에 근거해 있을 것이다. 물론, 하고자 하는 얘기는 전혀 다르다.
영화 <소녀>는 ‘소문’이 어떻게 사람을 생매장 시키듯 고통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잘못된 ‘소문’이 드러나야 할 추악한 진실을 감추고 있는지를 아름다운 풍경과 윤수, 해원의 침묵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그런데 영화의 이미지들이 주는 아련한 느낌에 비해 그 시도가 성공적이었는지는 자신할 수 없다. 영화가 주제를 위해 때때로 삽입장면처럼 보여주는 ‘생매장 당하는 돼지’들의 끔찍한 장면과 개기월식에 대한 이야기들은 영화의 주제에 잘 녹아들어갔다고 보기엔 겉돈다. 게다가 필히 관객에게 설명이 필요한 장면에 대해 뭉개듯 넘어가는 것도 좀 꺼림칙하다.
게다가 전반부 영화가 품고 있었던 그 신비스럽고 묘한 분위기가 추악한 진실의 공개와 함께 깨어나가는 것까진 좋은 데, 전반부의 분위기를 이어나갈 강력한 한 방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니깐 진실이 드러나기 전에 비해 후반부가 너무 평이해 진다. 또한 <소녀>를 복수극으로 봤을 때 역시, 좀 아쉽게 느껴지는 게, 복수라는 감정을 위해 쌓여지는 고통의 크기를 관객이 절실하게 공감하기 어렵다는 점, 그리고 복수 장면 그 자체가 발산하는 강렬함이나 아이어디에서도 조금 미진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다.
물론 몇몇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소녀>는 그 아름다운 이미지와 함께 최근 한국 대중영화들이 보여준 ‘뻔한’ 기획과 ‘뻔한’ 연출, ‘뻔한’ 이야기에서 한 발 비켜서 있다는 점 자체만으로도 박수 받아 마땅하다.
※ <점쟁이들>과 <소녀>에서 김윤혜는 표현하기 힘든 신비로운 매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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