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적 쾌감 대신 깊은 한숨이.. ★★★★
추수감사절을 맞아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도버(휴 잭맨)와 버치(테렌스 하워드)는 자신들의 딸이 실종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경찰에 신고한다. 형사 로키(제이크 질렌할)는 알렉스(폴 다노)를 용의자로 지목해 체포하지만, 10살 지능의 알렉스에게서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방면한다. 그러나 알렉스를 범인이라고 확신한 도버는 알렉스를 납치, 가혹한 고문을 하고, 다른 용의자를 쫓던 로키는 도버의 행보를 의심스럽게 관찰하기 시작한다.
<프리즈너스>는 <그을린 사랑>으로 인상적인 데뷔작을 발표한 드니 빌뇌브의 헐리우드 데뷔작이자 두 번째 작품이다. <그을린 사랑>을 돌이켜보면, 충격적인 결말이 드러나기 전까지 영화는 느리면서도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단서들을 하나씩 여기저기 흩뿌리듯 뿌려 놓았었다. 그리고 마침내 드러나는 진실은 그 무게감에 허덕일 정도의 힘이 있었다. <프리즈너스>도 이런 차원에서 <그을린 사랑>을 많이 닮아있다. 이제 겨우 두 작품이어서 판단이 빠르긴 하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 진행, 연출, 편집이야말로 드니 빌뇌브 영화의 특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알렉스는 도버에게만 들리도록 얘기를 한다. “제가 올 때까지는 울지 않았어요” 이런 대사들은 관객들로 하여금 알렉스가 저능아 행세를 한다는 의심을 갖게 만든다. 로키가 찾은 성범죄 전력의 신부와 지하실에서 발견된 이상한 시체는 또 어떠한가. 대체 이게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애매모호하고, 촛불집회 현장에서 달아난 수상한 남자는 왜 딸이 실종된 두 집에 몰래 드나드는 것인가. 집안싸움 후 집을 나가 실종됐다는 알렉스 숙부의 존재는? 이처럼 <프리즈너스>도 <그을린 사랑>과 마찬가지로 사건과 직접 관련 없어 보이는 단서들이 여기저기 뿌려져 있으며, 영화를 보는 관객을 미로 속으로 밀어 넣는다.
그 미로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도버와 로키의 어두운 과거사 - 도버가 왜 가족들을 과잉보호하는 것인지, 로키가 왜 이 사건에 미치도록 몰입하는 것인지 알 수 있는 단초들이며, 미로는 그들이 받는 정신적 압박감으로 인해 어둡고 우울하다. 영화는 직선으로 내달리지 않음에도 숨 막힐 듯한, 그리고 곧 폭발할 것 같은 긴장감으로 인해 153분이란 시간이 짧게 느껴지며, 스크린에의 몰입도를 유지시켜 준다.
영화의 첫 장면인 도버의 주기도문이 끝나자마자 아들의 사격으로 쓰러지는 사슴의 모습은 도버에게 종교, 폭력, 가족에 대한 무한 애정이라고 하는 모순된 감정들이 중쳡되어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알렉스를 고문하면서 죄를 용서해 달라며 읊조리는 기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졌음을, 더 이상 선과 악이 중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하나씩 던져지던 퍼즐들이 드디어 완성되는 순간, 미로 속을 빠져나오는 순간, 악이 눈앞에 드러나고 최후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프리즈너스>는 통쾌하다는 장르적 쾌감을 제공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는 깊은 한숨을 내쉬게 만든다. 왜냐면 이미 선과 악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음을, 그리고 이들이 행복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 퍼즐이 맞춰지는 과정의 무게감에 비해 결말은 다소 편의적으로 던져지는 것 같아 좀 아쉽다.
※ 이 영화의 정서를 대변하는 건 무엇보다 비 내리고 어두운 화면이 주는 우울함이다.
※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영화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차량 질주씬인데, 과도한 차량 소음과 스피드를 강조하지 않고서도 묻어나는 절박함은 관객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는 경지.
※ 상영 중인 극장 내 분위기가 조용하고 뭔가 집중된 느낌은 오랜만이었던 것 같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