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영화제에 초대를 받아 간 적이 있습니다. 총 3편의 단편 영화를 봤는데, 그 중 가장 좋게 봤던 영화는 <주희>였습니다. 오컬트적인 분위기와 안정된 공포연출이 인상적이었는데요. 그때 <주희>를 만든 감독이 상업영화를 찍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괜찮은 영화가 나올것 같다는 생각이 딱 들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그 영화가 바로 <숨바꼭질>입니다. '허정' 감독의 상업영화 데뷔작인 <숨바꼭질>은 '숨바꼭질 괴담'을 바탕으로 한 공포스릴러인데요. 그는 데뷔작인 이번 영화에서도 그 짧은 단편에서 보여줬던 자신의 장기들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허정' 감독은 지난 <주희>에 이어 이번 <숨바꼭질>에서도 본인이 공포스릴러라는 장르에 재능이 있음을 확실히 증명해냅니다. 여러 상황들속에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요. 특히 '숨바꼭질'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누군가 숨어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를 잘 조성해놓고, 이것을 통해 관객들을 제대로 쪼아대고 있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후반부때는 그러한 상황을 반대로 뒤집으면서 또 긴장감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요. 게다가 이런 장면들이 귀신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보니, 그 효과는 배가 됩니다. 오싹하게 편곡된 '숨바꼭질 테마송(?)'도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요. 근래 나온 한국 공포스릴러 장르의 영화들 중에서 긴장감과 공포로는 단연 으뜸이 아니었나 싶네요.
그럼에도 이 긴장감과 공포가 결국 최고수준까지 도달하지는 못한다는게 정말 아쉽습니다. 그 이유는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들 때문인데요. 영화가 주는 긴장감에 빠져서 몰입하려고만 하면, 캐릭터들이 도저히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동들을 계속 하는 바람에 그 긴장감이 계속 꺾이곤 했습니다. 캐릭터들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다기보단 시나리오에 의해 미리 짜여져 있는대로 움직인다는 느낌이랄까요? 이렇게 사소한 것에서 영화가 계속 어긋나버리니까 머릿속에 '왜 저러지'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고, 결국 영화에 온전히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도 아쉬움이 많습니다. 바로 범인의 정체가 밝혀지고, 본격적으로 그 범인과의 대결이 시작되는 부분인데요. 일단 클라이막스치고는 너무 깁니다. 정작 필요한 내용들은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하고, 별다른 내용없이 계속해서 비슷한 장면들이 반복하고 있는데, 굳이 이렇게 길게 늘려야 했나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영화의 템포가 여기서 좀 죽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요.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 클라이막스가 너무 막나간다는 겁니다. 마치 터미네이터들의 전투를 방불케하는 이 부분에서 감독의 의도대로 주인공의 광기가 느껴진다기보단 오히려 황당함만 느껴지더군요. 열정적으로 연기하시는 배우분들이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네요.
디테일 결여와 욕심이 과했던 후반부라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숨바꼭질>은 <감시자들>과 <더 테러 라이브>를 잇는 '잘 빠진 스릴러'라고 충분히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사실 후반부도 긴장감이 나쁘진 않았고요.) 또한 공포영화 측면에서 이 영화를 바라본다면 '근래 나온 한국 장편 공포영화 중 가장 괜찮은 작품'으로 그 가치는 더욱 높아지죠. 첫 데뷔작부터 나름 괜찮은 결과물을 만들어낸 '허정' 감독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대되는군요.
+ 이왕이면 시나리오는 더 잘 쓰시는 분에게(...)
++ 사진은 네이버 영화 출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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