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바꼭질>은 꽤 괜찮은 소재의 공포 영화입니다. 얼마 전 방송 보도로도 나간 '숨바꼭질 괴담'에서 따온 이야기예요. 아파트의 각 초인종마다 암호로 보이는 표식들이 써 있더라는 거죠. 혼자 사는 여성들은 이런 표식들이 얼마나 오싹하겠습니까. 영화는 이 괴담을 '누군가 우리 집에 숨어 살고 있다.'라는 설정으로 확장시켰습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얘기예요. 그 아파트가 아주 낡아서 철거 얘기까지 떠돌 정도라면 더하죠. 하우스 푸어와 빈민가 안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다면 더 끔찍하고 추해질겁니다. 그 악당이라는 놈이 얼마나 변태일지 상상도 안 가고요. 영화의 주인공은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는 '성수'입니다. 하나뿐인 형에 대해서는 안 좋은 기억과 결벽증까지 있죠. 어느 날 형의 실종 소식을 듣고 그가 살던 아파트로 찾아가는데 각 가정의 초인종마다 암호로 보이는 표식들이 써져 있는 걸 발견합니다. 근처에 딸과 살고 있는 주희라는 여자는 형보고 내 딸 그만 훔쳐보라고 횡설수설하고요. 집으로 돌아오니 이게 웬일. 자신이 살고 있는 고급 아파트에도 각 가정마다 그 표식들이 써 있더라는 겁니다. 허정이 확장한 이야기도 나쁘지 않습니다. 안 좋은 기억으로 수십년간 헤어졌던 형을 다시 만나려고 하니 수상쩍은 아파트에 수상쩍은 주민들 뿐입니다. 거기에 미스터리한 암호 표식까지 있으니 아주 그럴싸한 떡밥들이죠. 이 영화에서 귀결되는 방향도 그럭저럭 쓸만합니다.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리에게는 꽤 비극적인 호러물로 통용될만하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쓰이는 재료들은 좀 위태롭습니다. 이 영화의 맥거핀을 둘러 칠 적당한 이야깃거리들이 없다는 게 문제예요. 추리와 스릴러라는 장르를 달고 나온 기존 국내 영화를 생각해보면 같은 수순의 시행착오로 봐도 무방합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배우들만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죠. 이를 애써 무시하면 이제 이 영화의 리액션들이 여러분들을 괴롭힐겁니다. 7,80년대 한심하기 그지 없던 하이틴 호러 영화들을 바라보던 그 시선으로 돌아 보면 답은 금방 나옵니다. 예를 들어 이런거죠. "왜 주인공은 안 죽이지?" "재는 왜 또 안 죽이고 저러는 거지?" 영화는 괜찮은 괴담의 아이디어와 확장된 이야기를 갖고 있어요. 결과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공포감을 선사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를 논리적으로 들여다보면 갑갑합니다. 결말로 갈수록 상상력과 괴담과의 연결은 보기 좋게 무너지고 결국에는 평범한 공포물로 남아버린 것 같습니다. 차라리 오컬트로 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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