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으로 간 잭 스패로우 선장... ★★★
<론 레인저>는 오래 전 영화(1956년)와 TV 시리즈로 미국인들(조금 나이든)에게는 익숙한 캐릭터라고 한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인디언(아메리카 원주민) 톤토가 조력자 역할을 한다는 것인데, 원주민을 학살한 역사에 대한 소심한 반성의 의미가 담긴 건 아닐까 하는 느낌이다. 아무튼, 2013년판 <론 레인저>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조력자이던 톤토(조니 뎁)가 이야기 전체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으로 부상한다는 점일 것이다.
영화는 1933년의 늙은 톤토가 1869년에 있었던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는 일종의 액자영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상한 분장과 기괴한 행동을 일삼는 인디언 톤토와 신참내기 검사 존(아미 해머)은 악당 부치(윌리엄 피츠너)를 잡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관계가 되고, 이 과정에서 둘의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난다는 게 영화의 큰 골자다.
우선, 제리 브룩하이머 주연, 고어 버번스키 감독, 조니 뎁 주연의 영화라고 하면 일단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떠오른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론 레인저>는 이들이 바다가 배경인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를 사막으로 그대로(!) 가져왔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조니 뎁이 연기한 톤토는 거의 그대로 잭 스패로우 선장이고, 존은 올란도 볼룸이 연기한 윌 터너, 악역 부치는 빌 나이가 연기한 데비 존스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이들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유머와 피날레의 화끈한 액션도 마치 공식에 대입한 것처럼 등장한다.
그러니깐, <론 레인저>는 약 두 시간을 앉아 시간 때우기에 적당한 즐거움을 주는 나름 깔끔한 블록버스터 영화임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캐리비안의 해적>에 이미 재미를 봤던 사람이라면 다분히 식상한 캐릭터와 이야기로 별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이다.(물론 반대로 <캐리비안의 해적> 때문에 여전히 재미있게 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단적으로 후자다. 동일한 캐릭터가 이름과 분장, 배경만 바꿔 나오는 영화를 또 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단지, <캐리비안의 해적>과 비슷하다는 점만이 <론 레인저>가 실망스러운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건 영화가 대체 산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강으로 가는지 종잡을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다루는 이야기는 많은 데, 하나로 모아지는 느낌도 없고, 산만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길다. 하긴 다루려는 이야기가 많다보니 시간은 늘어질 수밖에 없고, 그러니 지루해지고, 뭔가 악순환에 빠진 모양새다. 톤토의 전사, 레인저의 전사, 인디언의 비극, 은광을 둘러싼 음모, 이루지 못한 첫 사랑의 아픔이 마치 시트콤의 한 단락처럼 번갈아 등장하느라 정신없다. 주인공인 둘의 이야기만 다루기에도 벅차다보니 헬레나 본햄 카터의 이야기는 거의 카메오 수준으로 전락한다.
분명히 <론 레인저>는 나름 장점이 있는 영화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시종일관 깨알 같은 유머와 특히 기차와 말, 거기에 음악이 어우러지는 피날레를 장식하는 액션장면은 볼만하지만, 마지막 여정까지 기다리기엔 좀 지루하다.
※ 인디언의 비극. 마치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처럼 쾌감을 던져줄 것처럼 시작한 액션신은 끔찍하게 막을 내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참극을 배경으로도 유머가 구사되며, 그 참극이 끝나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한 번의 언급도 없이 유쾌한 장면으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좀 불편했다.
※ 속편에 대한 은근한 기대를 품고 제작된 영화 같기는 한데, 현재 미국 흥행이 완전 꽝이라 속편 제작은 사실상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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