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위로와 차가운 고통... ★★★★☆
사랑하는 아내가 늙고 쇠잔해져 간다. 점점 악화되는 질병, 희망은 보이지 않고 당사자는 다시는 병원에 데리고 가지 말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을 남긴다. 카메라는 질병으로 고생하는 아내의 고통 대신에 그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며 수발하는 남편의 고통에 포커스를 맞춘다. 아내의 질병이 깊어질수록 지켜봐야 하는 남편의 고통도 점점 커져만 간다. 어떻게 하면 이 고통에서 헤어 나올 수 있을까? 당사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심지어 자식마저도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는 고통의 나날들.
첫 장면부터 이 영화가 결코 친절한 영화가 아님을 대번에 알 수 있다. 사람들이 들어찬 어느 공연장의 객석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영화는 배우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가 주인공인지 쉽게 알 수 없도록 해 놓았기 때문이다. 역시 미카엘 하네케인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르>는 <퍼니 게임> <하얀리본>을 연출한 감독의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전반적으로 따뜻한 위로와 사랑, 우아함으로 채색되어 있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에, 내내 솟구쳐 오르는 눈물을 감내하며 영화를 보았다. 당연하게도 내가 바라봤던 위치는 자식의 자리였다. 늙으신 부모님.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머니의 병환과 아버지의 고통, 그리고 어머니의 부재가 가지고 온 아버지의 상실감, 얼마 안 있어 어머니를 따라간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봐야 했던 나로서 <아무르>는 단순히 ‘그저 영화’가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아내를 보살피는 늙은 남편의 불편한 걸음걸이와 느린 동작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눈물을 끊임없이 강제했다. 이건 따뜻한 위로이기도 했지만, 영화 속 남편의 결정은 나에겐 또한 차가운 고통이기도 했다.
두 부부를 연기한 장 루이 트랭티냥, 엠마누엘 리바의 연기는 완벽 그 자체이고, 시종일관 집안 곳곳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안정적인 앵글은 역시 대가의 작품이라는 평가에 인색할 필요가 없음을 명백히 입증하고 있다.
어쩌면 <아무르>의 또 다른 주인공은 두 부부의 손때가 묻은 집,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처음의 아주 짧은 장면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집안에서만 맴돈다. 심지어 창문으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런 차원에서 영화의 첫 장면이 외부에서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외부인(소방관)이라는 건 의미심장하며, 특히 부부가 떠난 뒤 텅 빈 집을 딸이 둘러보는 마지막 장면은 마음에 깊은 잔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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