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다고 선뜻 인정하기엔 뭔가 꺼림칙한... ★★★
※ 영화의 결말에 대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때는 1985년. 연일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던 대학가에 배달을 다니던 철가방 강대오(김인권)은 우연히 여대생 예린(유다인)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대오는 높은 현실의 벽에도 불구하고 단골 교수의 격려에 힘입어 예린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려 한다. 기회만 엿보던 대오는 우연히 예린의 생일파티가 열리는 것을 알게 되어 그곳으로 무작정 찾아가는 데, 그 생일파티가 열리는 곳은 바로 대학생들의 미국 문화원 점거 농성 현장이었다.
<강철대오 : 구국의 철가방> (이하 <강철대오>)을 의외로(!) 재밌게 봤다. 정말 의외였다. 이로서 육상효 감독은 전작인 <방가방가>에서 보여준 코미디 연출 능력, 특히 사회적으로 민감하거나 어두운 이슈의 무게에 눌리지 않으면서 웃음과 동시에 나름 감동까지 안겨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과시했다고까지 보인다.
만약 이 영화가 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환기시키며 교훈을 주려했다면, 또는 대오가 사랑하는 여자로 인해 사회적 모순을 깨닫고 즉자적 민중에서 대자적 민중으로 발전하는 전형적인 영웅 탄생 신화를 보여주려 했다면, 그것도 아니라면 현실적인 난관을 극복하고 사랑을 쟁취하는 판타지를 보여주려 했다면, 아마도 그 교훈 내지 판타지의 무게에 짓눌려 편히 웃을 수 있는 영화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신파로 끝나버리는 결말(결말의 다른 문제는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이 조금 맘에 안 들기는 해도 전체적인 흐름상 충분히 이해될 여지는 있다.
특히 김인권의 연기는 정말 발군이다. 사실 이 괴상망측한(?) 코미디 영화, 무거운 과거사를 다루면서도 결코 무게에 짓눌리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백안시하지는 않는 어정쩡한 자세라든가 코미디, 멜로, 사회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가 섞이지 못한 채 그저 물리적으로 결합되어 흘러가는 영화에서 이런 단점들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 거의 유일한 이유는 아마도 김인권이란 존재가 주는 안정감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인권의 진가는 사람을 웃게 만드는 코미디 연기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예린을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현재의 이 고초를 감수한다는 그 진정성을 정말이라고 믿게 만드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강철대오>를 재미있다며 박수 쳐주기엔 뭔가 꺼림칙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사실 <강철대오>는 80년대 중반 미문화원 점거라는 시대상을 제외하고 본다면 흔한 설정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다름 아니다. <강철대오>에도 출연한 박철민이 역시 조연으로 등장하는 <위험한 상견례>만 하더라도 여자 친구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호남 출신)을 숨기고 거짓말을 하는 설정의 영화다. 그런데 이런 설정에 미문화원 점거라는 역사적 사건을 대입해 놓고는 그게 그저 설정에 불과하다고, 배경에 불과하다고, 중요한 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진실된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화에서도 이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만큼 미문화원 점거는 단순한 코미디 소재로 삼기엔 거시기(?)한 측면이 존재한다.
솔직히 제일 궁금한 건 80년대 중반의 시대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요즘 10대 20대의 감상평이다. 왜냐면 <강철대오>엔 왜 대학생들이 미국 문화원을 점거한 것인지에 대해 별다른 배경설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미국 문화원 정도는 점거할 수 있다는 게 상식이 된 건가? 80년대 중반까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국가 중 유일하게 한국만이 반미 무풍지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한 건 80년 광주부터였다. 주지하다시피 당시 광주시민들은 미국이 전두환을 압박해 자신들을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단지 광주 시민만이 아니라 많은 반독재 인사들도 미국을 상대로 한국 민주화에 대한 지원을 호소하며 지지를 얻고자 노력했던 시대였다. 광주로 인해 그 믿음이 깨어지자 미국에 대한 의문들이 제기되기 시작했고, 그 첫 신호탄은 82년의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이었다. 반미 무풍지대로 일컬어지던 한국에서 미국 관련 시설물에 대한 공격은 정치적으로 대단히 민감한 사건이었고, 이의 정점이 바로 85년 미국 문화원 점거사건이었던 것이다. 연일 언론은 대서특필했고, 정권은 바로 당장 한국 사회가 뒤집힐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해 분주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서는 대체 왜 대학생들이 미 문화원을 점거했는지 이유를 알기 어렵다. 그저 한국 독재정권에 대한 지원 철회라는 피상적 주장만을 반복하고 있는데, 당시 가장 큰 이슈는 광주항쟁 진압 과정에서의 미국의 역할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런데 미 문화원 점거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가장 첨예한 사안이었던 광주 진압과 관련한 얘기가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 건 어색함을 넘어 뭔가 이상하다. 의도적인가?
두 번째로 결말에 대한 부분이다. 이게 참 찝찝하다. 대체 철가방들이 무슨 죄란 말인가. 아니 철가방으로 대표되는 민중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 철가방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는 민중을 얘기하면서 이들에 대해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 떠나는 이들은 보여주면서 왜 남겨진 이들은 보여주지 않는 것인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게 이 영화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긴 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싸우는 건 민중들이고, 그 피해도 고스란히 민중들이 입는다는. 실제 미문화원 점거 농성에 참여했거나 기획했던 학생 운동 지도부는 국회의원이 되거나 유력한 정치인이 되었다는 현실도 반영된다. 그런데 이런 나의 의구심은 영화를 관람한 며칠 후 올라온 김인권의 트윗으로 인해 나름 해소가 되긴 했다. 김인권은 자신의 트윗에서 이 영화 <강철대오>에 편집된 대사를 소개하고 있다. 그가 소개한 대사는 이렇다. “민중을 사랑한다면서요! 그런데 나같은 진짜 민중이 나타나니깐 다들 도망가네요??” 편집된 대사로 인해 육상효 감독이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다는 건 알겠다. 문제는 그런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여전히 남는 의구심은 한국 사회가 이런 소재를 코미디로 삼아도 괜찮을 만큼 진화된 사회인가에 대한 미심쩍음이다. 이건 영화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사회의 문제다. 박정근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직도 어떤 세력이나 집단에 대한 유머나 비웃음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될 수 있는 정치적으로 후진 사회이기 때문이다.
※ 1985년도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87년 영화인 로보캅, 91년 영화인 황비홍을 별명으로 사용한다든가, 당시로선 보기 힘들었던 피자를 짜장면의 라이벌 음식으로 거론한다든가, 중국집 배달 음식에 비닐랩을 씌우거나 바닥에 까는 비닐깔개를 주는 장면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