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 소주, 우산, 그리고... 여행.. ★★★★
이 영화를 어떻게 글로 설명해야 할까? 아무튼 일단 이야기는 이렇다. 엄마(윤여정)과 딸 원주(정유미)는 이모부의 빚보증을 섰다가 문제가 생겨 잠시 변산반도 모항해수욕장의 펜션에 내려와 있는데, 영화과 학생인 원주는 무료함과 불안함을 달래기 위해 전주영화제에서 봤던 프랑스 감독을 주인공으로 시나리오를 써 나가기 시작한다. 원주의 시나리오 속 안느(이자벨 위페르)라는 이름의 프랑스 여인은 각각 다른 신분으로 세 번 모항으로 여행을 온다.
첫 번째 파란 안느는 프랑스의 유명한 감독이며, 두 번째 빨란 안느는 한국의 유명감독과 몰래 사귀는 유부녀, 세 번째 녹색 안느는 남편을 한국 여자에게 뺏긴 이혼녀로 등장한다. 이 세 명의 안느는 모두 모항해수욕장 인근 펜션에 묵고 원주에게 우산을 빌리며, 해수욕장에서 안전요원(유준상)을 만나 등대의 위치를 물어본다.
스토리만 놓고 봐도 전형적인 홍상수 영화다. 바로 반복과 차이. 예전 홍상수 영화가 동일한 현상을 사람에 따라 달리 기억하고 반응해왔던 차이에 주목해 왔다면,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은 시간과 정서의 차이에 주목함으로서 새로운 변화를 알렸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그렇다면 <다른나라에서>는 어떨까? <다른나라에서>는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의 연장선에서 또 다른 변화의 시도를 하고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4부로 이뤄진 <옥희의 영화>의 각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배우와 극중 이름이 동일하긴 하지만, 동일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다중적 해석이 가능한 설정이었으며, <북촌방향>의 경우, 모호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분명 동일인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기는 하지만, 사실은 별개의 인물이 겪은 별개의 에피소드로 해석이 가능한 설정이었다.
<다른나라에서>는 아예, 원주가 동일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는, 별개의 캐릭터인 세 편의 시나리오로 만든 세 편의 단편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들 세 명의 안느는 별개의 인물인가? 우리는 쉽게 그렇다고 얘기하지 못한다. 분명 별개의 이야기고 별개의 캐릭터인데 왜 별개의 인물은 아닌가. 2편의 안느가 숨긴 우산을 3편의 안느가 자연스럽게 꺼내고, 3편의 안느가 해변에 던진 소주병의 잔해를 1편의 안느가 발견하는 등 <다른나라에서>는 시간적 모호함과 인물의 중첩이 동시적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다른나라에서>는 꿈과 현실의 조응까지 나아간다. 꿈과 현실, 아니 꿈과 영화가 조응하고 그 감정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깐, <다른나라에서>는 방향으로 말하자면 전작에 비해 좀 더 모호하고 추상적인 지점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느낌은 그다지 모호하고 추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왜일까? 아마 대부분의 의사소통이 단순한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동안 홍상수 영화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화려한 말빨이었는데, 그 말빨이 <다른나라에서>는 별로 힘을 발휘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른나라에서>의 세 명의 안느는 계속 모항해수욕장 근처를 헤맨다. 왜 원주는 등대까지 안느를 안내하지 않았을까? 그 지역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안전요원은 그 작은 동네의 작은 등대를 왜 알지 못할까?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필기체를 잘 읽지 못하는 언어 소통의 문제일까? 어쩌면 이건 안느나 원주나 안전요원이나 모두 다른나라에서 살고 있는 타자, 또는 모두 여행자에 불과하다는 의미는 아닐까? 결국 인생은 초행길의 갈림길에서 50%의 확률로 어디로 가야할지 결정을 해야 함을 의미하는 건 아닐까?
※ 유준상은 정말 웃긴다. 그리고 여전히 홍상수 영화 속 술자리에서의 남자들은 정말 찌질하게 행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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