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당시에 남한과 북한이 동시에 입장한다고 엄청 소란스러웠던 것도 말이다.
거기서 나는 태극기가 아닌 흰 바탕에 파란색 대지가 떡하니 그려진 깃발을 보았다. 처음 보는지라 무척인 신기했는데, 해설자가
예전에 사용됐던 거라고 설명해줬다. 당시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2012년에 갑자기 <코리아>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면서
1991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탁구대회에서 그 깃발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어린
시절에 그런 이벤트가 있었다니, 게다가 TV에서 많이 보던 현정화 감독이 현역일 때 겪었던 이야기라니 궁금증이 부풀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편하지가 않았는데, 현재 북한의 상황 때문이라는 것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꼬마대장을 주축으로
한 북한의 도발과 장거리 미사일, 핵실험에 이르는 쇼를 보자면 뒷골이 절로 당겨온다. 북한의 밉상이 극에 달하고 국내 보수단체의
종북 타령 또한 날로 심해지고 있어서, 남북이 힘을 합쳐 중국을 넘어선다는 화해 무드 영화가 이 시기에 개봉해도 괜찮을까 우려를
했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잘 된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전세계 1이를 미리 점찍어놓은 <어벤져스>를 피해 와이드 개봉작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코리아>가 2위 전략을 내밀면서 첫주 60만 관객을 모으며 선방한 것이다. 이것은 사실 작품성보다는 타이밍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다. 어린이날 특수 기간에 어린이들은 <백설공주>와 <로렉스>로, 블록버스터 취향의 젊은이들은 <어벤져스>로 갔다. 연령에
관계없이 무난하게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코리아>였던 셈이다. 따라서 개봉을 꺼릴 수도 있는 시점에 관객층을 철저히
분석하여 과감하게 개봉한 CJ의 배급력을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 판에 박힌 감동의 공식이 지루하다는 평도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나 <국가대표>를 보고 스포츠 드라마에 내성이 생긴 관객에게는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한국의 대표적인 여배우인 하지원과 배두나의 연기가 감동을 이끌어내는데 무리가 없다는 점, 다음주에 유일하게 와이드 개봉하는
<다크 섀도우>와는 관객이 겹치지 않는 점, 선관람자 중에서 극중 북한에 관한 내용을 불쾌해하는 관객이 적다는 점이 흥행 포인트로
보인다. 꾸준히 2위 자리를 사수하면서 중박 이상의 관객몰이가 가능하리라고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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