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의 미소와 가벼운 행복감... ★★★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가 신나게 울려 퍼지는 고급 승용차 내부. 경찰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두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과거로 날아간다. 신분부터해서 전혀 다른, 아니 완전히 극과 극의 두 남자(인간)가 우정을 나눈다는 설정이 그렇게 신선하거나 새로운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특이한 건, 두 남자가 소위 상위 1%, 하위 1%에 속할 정도로 극과 극이라는 점이고, 놀랍게도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라는 점이다. 영화 엔딩 크레딧에 올라오는 실제 인물을 보면 하위 1% 남자는 아마도 비서구세계에 속한 백인(아랍인)으로 보인다. 이를 세네갈 출신 흑인으로 바꾼 건 현실보다 더욱 드라마틱한 감정을 불어 넣기 위함이리라.
아무튼 이야기는 이렇다. 24시간 자신을 돌봐줘야 할 도우미를 뽑고 있는 전신마비 갑부 필립(프랑수아 클루제) 앞에 생활보조금을 받기 위해 지원에 응한 드리스(오마 사이)가 나타난다. 자신의 장애를 가지고 마구 농담을 지껄여 대는 드리스의 모습에 흥미를 느낀 필립은 2주를 못 버틸 것이라며 내기를 걸고, 이에 발끈한 드리스가 도우미 생활을 시작하면서 도저히 연결될 것 같지 않은 둘의 관계는 시작된다.
이후 이야기는 대단할 것도 없이 오히려 너무 전형적이다 싶을 정도로 뻔하게 진행된다. 신분부터 취향까지 극과 극인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는 모습은 감동적이긴 하지만, 작위적으로 느껴질 만큼 압축적이다. 이를테면, 다른 도우미들이 당하는(?) 장면에 비해 드리스의 초반 도우미 생활은 ‘저 정도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다’ 정도로 수월하게 느껴지고(이런 일을 위해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조차 견디지 못하는 중노동임에도) 둘의 관계는 단 한 번의 흔들거림도 없이 너무 순탄하게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그런데 이게 실화라니 사실 그게 가장 놀랄 일이다.
다른 차원에서 이 영화는 당연하게도 성장영화로의 결도 보여준다. 특히 드리스가 그러하다. 그가 불법 주차한 차량의 운전자에게 대하는 태도는 극적으로 변화된다. 동생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신을 키워준 어머니에게 먼저 다가서는 모습은 그가 필립과의 우정을 통해 엄청나게 성장했음을 확실히 보여준다. 재밌는 건 필립이다. 드리스를 변화시킨 필립은 정작 자신은 영화를 통해선 별로 성장하거나 변화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자막으로 보이는 후일담으로도 모호하다) 오히려 그는 드리스가 떠난 이후 마치 일부러 그러듯이 도우미들에게 짜증을 내고 화를 내어 견디기 힘든 상황으로 몰아간다. 성장이 아니라 퇴행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영화를 보며, 오래 전 어느 책에서 봤던 글이 떠올랐다.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를 망각한 선물에 대해 오히려 가장 기뻐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시각 장애인에게 멋진 그림을, 청각 장애인에게 음반을, 두 팔이 없는 장애인에게 장갑을, 두 다리가 없는 장애인에게 신발을 선물하는 것 같은 상황. 이는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서로의 처해있는 조건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사람 그 자체로 대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말해주는 글이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억지로 감동을 호소하지 않고 담백하게 농담과 가벼운 웃음으로 채워진 화면은 이를 바라보는 관객에게 살짝의 미소와 가벼운 행복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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