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선 저들이 만든 룰을 바꾸고 파괴하라... ★★★
대체 왜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헝거게임’을 해야 하는 것인지 설득되기는 좀 힘들지만, 어쨌거나 독재국가 판엠은 반란을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매년 12개 구역에서 무작위로 뽑힌 소년소녀 24명을 한 곳에 몰아넣고 상대를 죽여야 살 수 있는 잔인한 서바이벌 게임을 벌인다. 12구역의 캣니스(제니퍼 로렌스)는 동생 대신 자원해 피타(조지 허처슨)와 함께 구역의 대표로 헝거게임에 출전한다.
어린 소년소녀들이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헝거게임>의 설정만 보면 <배틀로얄>이 떠오르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러나 원작소설의 저자는 <배틀로얄>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영화는 <배틀로얄>과 설정만 동일할 뿐 규칙도 다르고 이야기 전개도 다르며, 관심을 두는 지점도 다르다. <헝거게임>은 마치 <배틀로얄>과 <트루먼쇼>, 그리고 TV의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을 합친 후 <이퀼리브리엄>을 살짝 뿌려놓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러니깐 이 영화는 미국 대중문화, 주로는 오디션 프로그램과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천박함에 대한 비판이 강하게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헝거게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건 너무 쉽다. 우선 설정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힘이 거의 발휘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말랑말랑하다. 물론 어느 집단인가는 이게 단점이 아니라 이 영화를 사랑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10대 소녀를 노린 간질거리는 로맨스는 무지 뜬금없고 게다가 분량도 많다. 이야기가 달려갈 지점에서 달려가지 않고 멋진 그림을 찾아 헤맨다. 늘어진다는 얘기다. 로맨스 부분을 조금만 스피디하게 다듬었다면 영화는 훨씬 더 재밌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게 둘의 진심인지 아니면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관객에게 점수를 받기 위한 의도적 설정인지 애매하게 처리한 건 그나마 다행이다.
헝거게임에 참여한 아이들에게 별다른 전략전술을 볼 수 없다는 것도 지적될 수 있다. 이건 헝거게임 그 자체가 주는 재미가 결여되어 있다는 얘기다. 캣니스처럼 우연찮게, 억지로 선발된 경우라면 그럴 수 있으나, 의도적으로 오랜 훈련기간을 거쳐 우승하기 위해 뽑힌 참여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야 하지 않을까. <배틀로얄>에서 집단으로 그 게임의 룰에 저항하기 위한 반란을 모색한다든가 하는 다양한 시도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도 <헝거게임>은 설정에 비해 좀 단순하다.
그리고 작위적 설정이 난무한다. 특히 캣니스에게 곤란한 상황, 딜레마를 주지 않으려는 배려가 너무 눈에 띌 정도로 노골적이어서 무안할 지경이다. 캣니스는 한 번도 작정해서 상대를 죽이지 않으며, 죽이는 상대조차도 관객(헝거게임의 관객 또는 영화의 관객)이 죽어야 마땅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런 악당(?)들만 죽인다. 그 외의 참여자들은 캣니스가 죽여야 하는 상황 자체가 오기 전에 알아서들 죽어준다. 너무 얇고 어설프다.
그럼에도 <헝거게임>은 충분히 즐길만한 영화인 것도 사실이다. 첫째, 아무리 말랑말랑하다 해도 설정 자체가 주는 매력이 강하다. 상대를 죽여야만 하는 극한의 서바이벌 게임. <배틀로얄>처럼 극단으로 밀고 갔다면 더욱 매력적인 영화가 나왔겠지만, 처음부터 하이틴을 겨냥해 만든 영화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둘째, 뭐니 뭐니 해도 주인공을 맡은 제니퍼 로렌스의 힘이다. 제니퍼 로렌스가 연기한 캣니스는 <윈터스 본>에서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윈터스 본>에서도 제니퍼 로렌스는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서 엄마와 동생을 돌보며 사냥을 하고 목숨을 건 생존 투쟁을 벌여 나간다. <헝거게임>에서의 제니퍼 로렌스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차원에서 <헝거게임>은 <윈터스 본>에서 이야기가 쭉 이어져 SF영화로 장르가 바뀐 것 같은 착시를 주기도 한다.
<헝거게임>에서의 제니퍼 로렌스는 미국 저예산 독립영화인 <윈터스 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위엄 있는 연기를 보여준다. 제니퍼 로렌스는 영화에 출연한 다른 젊은 하이틴 배우들처럼 공중에 붕 떠 있는 연기(그걸 연기라고 할 수 있다면)가 아니라 땅에 굳건히 발을 딛고 선 현실적 연기를 보여준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이런 허황된 이야기와 허술한 전개가 그나마 현실적 느낌으로 다가오는 유일한 이유는 모든 고난과 역경을 얼굴과 몸으로 진지하게 표현하는 제니퍼 로렌스 때문이다. 그는 가족과 애인까지도 돌보는 자립심과 독립심이 강하며, 무엇보다 자존감이 뚜렷한 캐릭터다. 주로 민폐 캐릭터로 그려지곤 하는 액션영화에서의 여성이 이처럼 멋지게 그려진 적이 최근에 있던가.(특히 <트와일라잇>과 비교해 본다면)
게다가 그는 헝거게임에 참여하면서도 그들이 만든 게임의 룰을 끊임없이 바꾸고 파괴를 시도한다. 아예 상대를 피해버리는가 하면, 끝내는 저들이 원하는 결말로 가지 않기 위해 대담한 결정을 내린다(결정을 내리는 주체도 제니퍼 로렌스다) 결국 룰을 만든 저들은 그 파괴력 앞에 굴복하고 만다. 살아남으려면 그리고 승리하려면 저들이 만든 룰을 바꾸고 파괴하라.
※ 판엠의 구성원들이 입는 옷이나 화장 스타일은 마치 데이비드 보위를 중심으로 했던 글램 록 스타일을 떠오르게 한다.
※ 어쨌거나 <트와일라잇> 시리즈보단 훨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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