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좋아하세요? 전 어렸을 때 야구하는 애들 옆에 지나가다가 야구공에 맞아서 머리 깨질 뻔 하고 나서는 야구공 가까이엔 절대 안 가게 되더군요. 그때 정말 얼마나 아프던지... ㅠ.ㅠ 하지만 그런 고통도 제가 유일무이하게 좋아한 야구선수 박철순 아저씨에 대한 애정만은 앗아가지 못했습니다. 박철순 아저씨 때문에 파란잠바 입은 애들과 흰잠바 입은 애들이 싸우기만 하면 전 언제나 흰잠바 편을 들었었죠. ㅡㅡV 한번은 패싸움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야구가 뭔지~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경기만 시작하면 또다시 이성을 잃어버립니다. 아마 호창선비도 그랬겠죠?
아버지 앞에 앉은 호창은 가만히 옷 보따리를 뒤로 숨깁니다. 얼마 전 서울 집으로 전달되어 온 형의 옷 보따리 속엔 피에 절은 도포가 들어있습니다. 차마 아버지에게 그 옷의 의미를 말할 수 없었던 호창은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군요. 어렸을 적부터 형에 대해 남다른 기대를 하셨던 아버지에게 이런 비보를 전할 수는 없으니까요. 어린 시절부터 형은 언제나 호창에게 결코 넘을 수 없는 커다란 벽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형을 미워한 건 아니지만 언제나 형만 바라보던 아버지가 항일운동 하겠다고 떠난 형을 생각하며 자신을 바라보시는 눈길에 더욱 기가 꺾인 그였거든요. 나라가 쓰러지면서 유일한 목표였던 과거도 사라졌고 새로이 찾았던 목표인 야구와 사랑도 덧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신념에 차 떠났던 형마저 이렇게 되어 버렸고... 과연 삶에서 꿈이라는 게 의미가 있는 걸까요?
호창이 정말 야구를 좋아한 건지 아니면 야구라도 잘 하는 자신을 좋아한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가장 큰 꿈이 ‘누군가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이 되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누군들 필요 없는 사람이 되고 싶겠습니까...? 다만 호창에겐 그 꿈이 더 절절했던 거죠. 단 한번이라도 형처럼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믿음을 주고 싶었지만 과거라는 수단도 이미 물 건너갔고 인생의 헛스윙만 하는 그에게 야구라는 존재는 만루홈런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아버지에게 오리를 학이라고 우기고, 숫자가 맘에 안 든다고 땡깡을 부리다가 정림에게서 4번 타자의 의미를 듣고 흐뭇하게 웃으며 나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왠지 안쓰러웠거든요.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사람을 참 힘들게 하는 일임이 틀림없습니다. ㅡㅡ;;;
이 영화에서 송강호의 모습을 보니까 제가 좋아하는 [반칙왕]-의 부자지간이 또 등장한 탓도 있겠지만-이 떠올랐습니다. 무료한 일상에 무언가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소시민이라는 점에서 두 캐릭터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자신이 과거에 했던 비슷한 역할과 어떻게 차별성을 두느냐가 나름대로 고민거리였을 거 같더군요. 그 차별성을 전 선비와 부자지간의 관계에서 찾았는데 다른 분은 어떠셨는지 모르겠습니다. 6^^;; 재미없다는 분도 꽤 많지만 전 고만고만했던 코미디영화보다 훨씬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을 받고 돌아올 수 있어서 참 기분이 좋았어요. 다만 주역을 뺀 주변캐릭터를 제대로 못 살린 게 이 영화의 코믹함을 죽인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코미디의 공백을 받쳐줄 만큼 스포츠의 선동성을 못 살린 점이 더 아쉬웠구요.
야구를 통해 꿈의 진정한 가치와 자신의 위치에 대한 책임감을 배워가는 호창의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멈춰 서서 생각만 하는 그가 아니라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갈 줄 아는 결단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이제 어떤 인생을 살지는 아무도 모르죠. 형님처럼 항일운동을 위해 길을 나서던, 낙향하여 평생 서당선생으로 늙던 이제 그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야구선수이며 진정한 선비입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책임질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게 바로 선비의 본질이 아닐까요? [YMCA야구단]은 바로 그런 느낌 때문에 응원하고 싶은 영화였답니다~ ^^)/ 그런데... 조승우를 까메오라고 칭하기엔 너무 비중 있지 않았나요? 후훗~ ^^;; 조승우만큼만 다른 캐릭터도 좀 살려주시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