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만 영화가 끝나지 않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흡혈귀와 늑대인간 양쪽으로 사랑 받는, 우아하면서도 비현실적인 사랑싸움으로 Fantasy만 제공할 뿐, 괜한 시간낭비란 생각이 드는 그런 지긋지긋해진 10대 영화 시리즈물에 영화 ‘the Hunger Game’은 다른 차원과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의미 있는 작품으로 다가왔다. Fantasy란 배경과 소재는 앞선 것들과 다르지 않지만, 이 영화는 날이 선 채로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것들이 있는 영화다. 마치 야성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하지만 영화, 그런 것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활이 대세인가 보다. 극중 주인공이 화살로서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에서도 청나라의 조선 침략을 시대배경으로 한 ‘최종병기 활’이 그렇고 오늘의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부서진 화살’ 등은 화살의 매력을 영화관객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하지만 참 공교롭게도 이 영화들은 단순한 오락영화들이 아니다. 활을 소재로 한 영화들의 공통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오늘의 슬픈 현실을 갈등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태평양을 건너 있는 나라에서 만든 the Hunger 역시 마찬가지다. 잘 먹지 못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불쌍한 소년 소녀 12명이 한 곳에 모여 목숨을 걸며 서로를 죽여서 최후의 1인이 되면 산다는 설정은 뻔할 것만 같지만 너무 무서운 설정이다. 더 슬픈 것은 선정과정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지만 마치 죽음의 룰렛 경기처럼 억지로 한 명 선정된다. 선발되는 순간 그들은 어느 순간 12분의 1이란 무서운 경쟁을 뚫고 살아야 한다. 거기에 그들의 죽음을 건 승부는 생중계된다. 누군가의 즐거운 오락을 위해 목숨을 건 사투를 해야만 하는 기막힌 운명은 비록 비현실적인 Fantasy지만 그 아래 흐르는 잔혹한 운명은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기치 아래 돈 없고 가난한 노동자를 마치 소품처럼 갖고 노는 재벌들과 있는 자들의 만행의 횡포를 보는 듯 하다. 죽고 사는 문제에서 차이가 날 뿐, 있는 자들과 없는 자들이 처해있는 구도는 묘하게도 똑같다. 여기서 끝난다면 영화는 영화일 뿐이었을 것이다. 운명이라 간주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곡예를 하면서 그 뒤에 숨겨진 잔인한 독재국가의 탐욕, 그리고 그런 독재국가의 탐욕에 기인한 선심으로라도 먹고 살아야 하는 불쌍한 12구역 사람들과 그곳 출신들의 목숨을 건 오디션 게임은 현재의 불평등 구조가 어떻게 유지되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몇만 명 중 한 명 뽑히는 수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은 현실을 외면하는 환상만 심어줄 뿐 진정한 변화를 일으킬 수 없도록 사람들을 제어하는 방법이란 것을 이 영화는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성공을 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모습 속에 노력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망해야 하는 수많은 희생자들을 외면하는 오늘의 우리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다. 바로 그것이 독재국가 ‘판엠’이 체제를 유지하는 방법인 것이다. 한 명의 승자를 탄생시키기 위해 11명의 목숨이 필요한 모습은 결국 재벌들과 있는 자들이 없는 자들을 길들이는 전형적인 수법인 것이고, 영화 the Hunger가 보여주는 현실인 것이다. 목숨 거는 경기를 앞두고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신의 후원자를 만들려는 참가자들의 목숨 건 쇼맨십은 가련하기 그지 없는 광대들의 연기였다. 여기에 사랑 역시도 작위적으로 해야 살 수 있는 기회가 넓어지는 모습은 살기 위해선 무슨 짓이든 해야 하는 없는 자들의 슬픈 모습을 투영한다. 자신의 동생을 살리기 위해 자원한 ‘캣니스(제니퍼 로렌스)’는 어쩌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기 위해 신석기로부터 이어져 온 활로 된 사냥을 하는 모습에서 어떻게든 죽음의 오디션 경기를 피하려는 몸부림을 볼 수 있었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번이 아니라도 다음에 걸릴 수밖에 없는 우울한 현실 앞에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에 정리해고 안 당했다고 다음에 안 당한다는 보장을 못하는 불안한 현실을 이 영화를 통해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남의 일이 아닌 것이다. 캣니스를 연기한 ‘제니퍼 로렌스’의 아름다우면서도 근심 어린 표정은 영화가 상징하고 드러낸 것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모습은 사랑하고 사랑 받는 수준의 일차원적이 아닌, 세상이 현재 어떤 고민을 하고 있고,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오늘의 88만원 세대의 자화상은 물론, 내몰리고 내몰려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노동자들의 피곤한 자화상도 엿볼 수 있다.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할 불운의 운명 앞에서 결국 자신이 살기 위해 짐승처럼 뛰어 다니고 결국 흉기를 써야 하는 그녀의 모습은 신자유주의로 인해 정글에 사는 짐승의 삶으로 들어간 우리들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이 Happy Ending이 결코 마음 편하게 볼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앞으로 또 다른 시리즈물이 보여줄 우울한 자화상을 왠지 모르게 기대하게 된다. 어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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