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어둡고, 우울하고, 한없이 쓸쓸하고, 슬픈 영화가 찾아온다. 이 세상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짊어진 듯한 영화.. 그 영화의 주인공들의 어깨는 천근만근 무거워만 보이고, 누구
하나 대신 짊어 줄 사람도 없어 보인다. 모두 이래저래 피하고 도망치기만 할 듯... 하지만,
그 와중에도 사랑은 어김없이 등장하고, 그 힘은 실로 대단하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 대식
(황정민).. 그는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삶에서 한가닥 희망을 건진다. 그건 바로 석원(정찬)
이라는 또 다른 남자의 등장이다. 그는 석원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보살펴 주게 된다.
그리고 대식을 사랑하는 여자 일주(서린).. 그녀는 무명의 배우가 자신의 존재를 관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발악을 하듯이 대식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들의 끝 모를 여행에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모든 걸 일어버린 증권쟁이 석원.. 그는 여자를 사랑하고,
가정도 꾸렸지만, 고생을 해보지 않은 아내 덕(?)에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그에게는 사랑이
란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란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 듯이 그들
은 자신의 주어진 운명에 굴복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석원을 제외하고, 대상
이야 어찌됐든간에 이유야 어찌됐든간에 그들에게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랑
을 이루려 발버둥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떠나간 자리에는 끝없는 슬픔과 고
통, 좌절만이 뒤따르게 된다.
필자는 솔직히 이런 영화들에게는 심각한 채 하기가 싫다. 아니.. 이때까지 심각한 채 한걸
로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을 수 도 있는 동성애자들의 느낌이 그다지
달갑지많은 않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우리 심정을 알기나 해?!" 라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말
하고 있을지도 모를 그들의 모습만 떠올리면 실로 미안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미안
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지만, 남의 속사정도 모르고, 이렇게 떠들어대기만 하는 내 자신
을 볼 때, 참으로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는 것 같이 때문이다. 도대체 그
어느누구가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했던가.....!!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에 이어 세 번째 영화에서 드디어 주연을 맡은
황정민이라는 배우를 보면 온몸 사리지 않고 영화에 한껏 몰입하는 연기파 배우라는걸 대번
에 알 수 있다. 그 아무리 훌륭한 연기자라 할지라도 동성 섹스씬 까지 있는 영화에 출연하
기가 그렇게 쉽지 많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황정민은 이번에도 100% 자신의 연기능력을
선보이며, 대식이라는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해 냈고, 관객들의 찬사를 받아내었다. 하지만,
석원이라는 캐릭터의 정찬은 연기가 어색하거나 못했다고는 느끼지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몸을 많이 사리는 듯해 보였고, 상투적인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로드무비>에서는 밝은 모습을 가진 인물은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석원이 하루아침
에 모든걸 잃었다고 해서 같이 힘을 합쳐 재기를 할 생각은 없이 단칸방에서 살기는 죽기보
다 싫다며, 끝내 도망쳐 버리는 아내의 모습.. 대식, 석원과 같이 자동차까지 대여(?)해 주며,
여행에 참여하다가 어느순간 댐 위에서 몸을 투신해 버리는 민석(정형기).. 아빠에게 담배를
꾸고, 그 옆에서 담배를 태연히 같이 펴대는 초등학생.. 바다가 날 부른다며, 거친 파도속으
로 유유히 들어가는 일주.. 인생의 허무를 마음껏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어차피 한번 죽
으면 끝날 것을 왜이리 허둥지둥대며, 아웅바웅하며 살아 왔는지.. 그리고 또 앞으로도 그렇
게 계속 살아가야 하는지.. 헛되고, 헛된 인생역정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 너
사랑해도 되지?!" 라고 대식은 말한다. 이때까지 참고, 참고 또 참아왔던 마음속의 말이 끝
내 입 밖으로 표출되었을 때 많은 관객들은 웃어버렸지만, 이 얼마나 가슴 절절한 순간이
었던가.. 필자는 감히 이 한 구절의 대사를 올해 최고의 명 대사로 기꺼이 추천한다.
마지막으로 영화 전 후반에 걸쳐져 암울하기 그지없는 배경음악.. 화려하진 않지만, 등장인
물들의 마음을 잘 표현해준 것 같은 화면의 색채.. 결코 웃을 수많은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지만, 그 와중에도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감독의 연출력은 실로 대단해 보였다. 물론 미리
준비된 듯 호루라기 한번 불었다고 뛰쳐나오는 네명의 경찰관은 그 근처에 파출소가 있었다
고 굳게 믿어 버리고 싶을 만큼 어색했고, 뛰쳐나와서 하는 행동은 더더욱 봐주기 힘들만큼
웃음을 유발해 버렸다. 그리고 한편의 영화를 위해 몸을 과감히 내던진 서린이지만, 나체쇼
장면에서는 다각도로 보여주지 않고, 너무 뒷모습만 보여줘 아쉬움(?)을 남겼고, 언론의 도
마위에 까지 올랐던 정찬의 체모는 유도된 연출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가 없었다. 하지만,
이 모든걸 다 배재하고, 이들의 영화인생에 끝이 없음을 상징하듯 끝없는 길.. 그 길 위의
영화 <로드무비>를 탄생시킨 감독과 배우, 제작자, 스텝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족
개인적으로 참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본 어떤분은 눈물까지 흘렸다고 하네요.
정말 오랜만에 스크린에 얼굴을 내비친 방은진의 깜짝 등장도 반가웠고, 황정민의 다음 작
품도 기대가 됩니다. 하지만, 초반부터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한 것과 화장실 안에서의 그 장
면은 솔직히 거부감이 들기도 하네요.
<도망자>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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