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카메론 미첼의 영화를 보곤(2편 보았지만) 항상 표현이 세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그것이 다 납득이 가는 것이었고, 개인적으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3번째 연출인 <래빗홀>은 앞의 두편과 비슷한 주제를 안고 있지만, 표현하는데 있어선
거의 정반대였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상처(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를 안고
사는 부부와 그 부부의 아이를 사고로 숨지게 한 고등학생의 관계를 통해
남겨진 자와 남겨지게 만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깊게 고찰하고 있는 작품이다.
아이를 잃은 엄마인 베카(니콜 키드먼)과 아빠인 호위(애론 에크하트)는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모임에 나가지만, 하나님이 자식들을 천사로 먼저 데리갔는식의 발언을 하는
부부에게 동의를 하지 못하고 모임을 떠난다. 베카는 그 모임에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그녀의 마음 속 공허함을 아들을 숨지게 한 제이슨(고등학생)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를 용서함으로써 서서히 극복해나간다. 하지만, 남편과의 관계는 서로 다른 치유법으로 인해점점 멀어져가고, 오히려 제이슨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진다. 남편 호위는 모임에서 만난 개비(산드라 오)와 대마초를 피우며 조금씩 가까워지지만, 아내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개비와의 관계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롭게 본 설정은
아들을 똑같이 잃은 모녀였다. 베카의 엄마는 자신의 아들을 잃었다. 즉 베카의 오빠를 잃은 것 베카의 엄마는 베카를 이해한다 하지만, 베카는 약물과다로 죽은 자신의 오빠와 아들을 동일시하는 엄마를 증오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제이슨을 용서하는 등의 과정을 통해 엄마의 입장과생각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그녀의 생각을 존중해준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서로가 다른 치유법을점점 인정해주고, 별거하려던 둘은 서먹했던 이웃들과 파티를 벌이고 난뒤 같이 지내기로 한다. 하지만, 엔딩에서 나란히 앉은 둘은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해지 못한채 영화는 끝이 난다.
니콜 키드먼의 뛰어난 연기가 없었다면 이 작품이 과연 이루어졌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연기는 가히 대단했다. 물론 그녀를 받쳐주는 애론 에크하트와 엄마역을 맡은 배우들의 앙상블도 좋았다. 아마 미첼 감독의 작품 중 가장 배우들이 빛난 작품이 아닌가하다. 또한 소중한 것을 잃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감독의 생각을 분명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물론 정답은 없지만, 그의 생각에 난 동의한다. 영화를 다 본뒤 <밀양>이 떠올랐다. 피해자가 용서를 하지 않았는데 피의자가 신께 용서받았다고 하는 아이러니와 <래빗 홀>에서 신이 자식들을 데려갔다는 것을 부정하는 베카의 모습 또한 스스로가 직접 피의자를 용서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행위가 얼마나 숭고한지 보여주는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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