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고 괴로워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
공지영의 원작 <도가니>를 영화화한 <도가니>는 만약 그 이야기가 실제 존재했던 실화가 아니라고 한다면, ‘너무 나간 것 아닌가?’ ‘가해자에 대한 묘사가 너무 전형적인 거 아닌가?’라는 지적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영화 <도가니>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분노와 절망에 쌓이게 하며, 불편하고 괴로운 마음에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심정이 들게 하기도 한다. 그만큼 본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영화다.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현재 한국이 어지간히 문명화된 사회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가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는 해도 그래도 상식이 통하고, 말이 통하는 사회라고 신뢰를 부여한다. 그러나 <도가니>를 통해 본 한국사회는 여전히 문명과는 거리가 먼 야만이 지배하는 사회임을, 그리고 그 사회를 만드는 데 우리 모두가 사실은 동조해왔거나 침묵해왔음을 고발하고 있다.
이야기는 가상의 도시 무진시의 청각장애아들을 위한 기숙학교인 자애학원에 부임해 간 미술교사 강인호(공유)가 무진시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바닷가를 끼고 있어 항상 안개에 쌓여 있는 도시 무진. 우연찮은 접촉 사고로 인권운동센터에서 간사로 일하고 있는 서유진(정유미)을 알게 된 강인호는 자애학원 학생들에게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다. 어느 날 학생을 상대로 한 끔찍한 폭행을 목격하게 된 인호는 학생을 병원에 입원시킨 후 서유진에게 연락을 취하게 되고, 둘은 오랫동안 교장, 행정실장 등이 장애학생들을 성폭행해 왔음을 알게 된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교육청, 시청, 경찰서 등의 행정관청에 질린 이들은 사건을 방송에 제보, 드디어 가해자들을 법정에 세우게 된다. 그러나 권력의 카르텔은 악마들의 단죄를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다.
원작소설과 영화는 여러 군데서 차이를 보인다. 대부분의 변화는 소설의 영화화에 따른 각색 차원으로 이해함직 하다. 각색의 핵심적 방향은 사건의 부각을 위해 인물의 비중을 줄였다는 점이다. 강인호의 경우 과거 트라우마를 삭제하고 아내 대신 좀 더 드라마틱한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머니로 대체하였으며, 서유진은 아예 개인적인 환경 자체가 삭제되었다. 소설에서 선후배 사이인 둘의 관계는 우연히 처음 알게 된 사이로 변화되었으며, 교회 목사의 비중이 약화되고, 연두 어머니, 해직 교사 등의 주요 배역은 아예 사라졌다.
인물의 약세는 이 영화를 감정선의 흐름, 즉 주요 인물들의 심리변화를 따라가는 소설의 흐름 대신에 사건 자체를 주목하는 방향으로 연출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청각장애인 역할을 한 아역 배우들이 가장 돋보이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사건 자체를 주목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카메라는 아이들이 당하는 장면을 세세히 복기하듯 보여준다. 보는 것만으로도 힘에 겹고 끔찍한 경험이다. 소설에서도 이 부분은 정말 읽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윤리적 논란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는 장면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그르바비차>는 인종 청소의 방법으로 행해진 집단 강간의 결과로 낳은 딸과 함께 사는 여성의 얘기를 하면서 플래시백을 이용, 과거의 잔인한 현장을 단 한 번도 회고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 슬픔의 깊이는 결코 만만치 않다. 어느 게 더 낫다는 얘기를 하기는 곤란하지만, 꼭 사건을 직접 보여주고 이를 복기함으로서만이 그 아픔에 동참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장면이 더욱 끔찍했던 건, 피해자가 타인의 도움을 받기 거의 불가능한 가장 약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소리를 질러 도움을 호소할 수 없는 아이들, 돌보아줄 보호자가 부재한 아이들, 마치 말을 못하는 아이들은 이렇게 당해도 싸다는 식으로 공격성을 드러내는 가해자들의 행동과 표정은 한 마디로 사이코패스, 악마의 현신인 것이다.
이보다 더 끔찍한 건, 이런 악마들을 벌줄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시스템 자체가 부재한지도 모른다. 관할을 따지는 교육청과 시청 복지과, 수사를 회피하는 경찰, 전관예우로 서로 얽혀있는 판사와 변호사, 대형 로펌 취직에 목을 맨 검사, 미쳐 날뛰며 광신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종교까지. 사회의 정의와 도덕의 기준을 세우고 이를 어긴 자들을 심판해야 할 위치에 있는 모든 세력이 거대한 카르텔을 형성, 서로가 서로를 봐주는 야만 사회. 바로 이게 현실의 대한민국인 것이다.(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죄는 무거우나 그 동안 사회에 기여한 바를 고려하여 ~~’ 우리 사회는 도덕과 정의가 고위층들보다 가난한 서민들에게 더 강요되는 사회, 술에 취해 행한 범죄에 대해선 가중 처벌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경감해주는 이상한 기준을 가진 사회)
원작과 가장 다르게 수정된 부분은 영화의 결론이다. 결국 싸움을 회피하고 도망가는 원작에서의 강인호와 달리 영화에서의 강인호는 법정싸움까지는 같이 한다. 이건 스포일이 아니다. 법정 장면 이후, 그러니깐 가해자들이 권력의 카르텔로 인해 모두 집행유예로 풀려난 후 소설에선 없던 일들이 벌어진다. 소설에서처럼 그냥 끝내지 않고 이 부분을 첨가한 것 때문에 아마도 다수의 관객은 그나마 견딜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현실에서처럼 더 무력하게, 더 처절하게 끝내야 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영화니깐, 이 정도는 이해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2005년 11월 1일 방영된 MBC PD수첩 656회의 제목은 <은폐된 진실 - 특수학교 성폭력 사건>이었다. 바로 소설과 영화 <도가니>의 현실. 이날 방송에선 광주인화학교에서 수년간 은폐되어왔던 청각장애아들을 상대로 교사와 교직원이 자행한 성폭력 실태가 적나라하게 고발되었다. 당시 방송에 알려진 건 12명의 피해 여학생과 8명의 가해자였지만, 방송이 전파를 탄 후 많은 졸업생들의 고발이 이어지는 등 사건은 일파만파 확대되었다.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 1심 재판에서 대부분의 가해자는 징역 3년에서 5년 정도의 형을 선고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정권이 교체되었고, 2심 재판이 벌어지는 도중, 한미FTA 협상과 관련, 전국을 뒤흔든 촛불시위가 일어났다. 아마 권력 자체의 성격 변화도 영향을 미쳤겠지만,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촛불시위로 인해 다른 문제에 관심이 적어지게 된 것도 재판부의 부담을 덜어주었을 것이다. 2심에서 가해자 중 일부는 집행유예로 풀려나, 학교에 복직됐다고 한다. 집행유예가 선고될 때, 청각장애인들이 내지르는 기이한 소리로 가득 찬 법정 풍경에 대한 기사를 본 공지영 씨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소설 <도가니>가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 비록 진실이 불편하고 끔찍하고 괴롭다고 해도,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없어지면, 악마들은 활개를 치기 시작하고, 그들의 카르텔은 마음껏 자신들의 욕구를 채운다. 우리 사회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을 위해 가장 하기 쉬운 일은 지켜보는 것이다.
-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다.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 끔찍한 현실을 소재로 한 영화에서 단점이나 아쉬운 점을 지적하는 건 왠지 피하고 싶어진다. 그건 영화에 관한 글을 써서 돈을 버는 평론가들이나 할 일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내내 나를 거북하게 했던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공유와 정유미의 관계다. 소설에서처럼 이전에 알던 사이도 아니고(그렇다고 해도 이해되지는 않지만) 무진에서 처음 알게 됐으며, 딱히 친해질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나이차이가 많이 나 보이는 것도 아닌데, 영화 초반부터 공유는 반말로 대하고, 정유미는 ‘아저씨’라고 호칭하며 내내 존댓말로 대한다. 조금은 괄괄하게 나오는 정유미 캐릭터와도 전혀 맞지 않는 언어 습관이다. 도대체 왜 둘의 언어 습관이 그래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봉건적 관계에 사로잡힌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게 아니라면 이건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아는 실제 세계에서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둘째, 이 영화만이 아니라 다른 영화에서도 종종 관객이 잘 모를만한 용어 등을 설명하는 장면이 나올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장면에서 가장 피해야 되는 게 직업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그 용어를 알아야 하고, 알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 용어를 모르고 물어보는 것이다. 인권운동단체 간사라면 얼마나 자주 법정을 드나들었을 것이며, 그 부분에 관한한 사실상 전문가적 지식을 갖춘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법정에 와서야 변호사가 누군지 궁금해 하고, 특히 전관예우가 뭐냐며 물어보는 장면은 첫째 경우와 연결 지어 생각하면, 분명 시나리오를 쓴 사람은 여성에 대한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여성은 평소 신문이나 뉴스를 잘 안 보기 때문에, 정치 시사적 상식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정유미는 인권운동센터 간사라고!!!!!
※ 소설을 보며 영화에서 가장 기대했던 장면이 교회에서 목사가 설교하는 장면이었다. 그 궤변을 어떻게 살릴까? 그런데 영화에선 아예 이 부분이 다뤄지지 않았다. 좀 아쉽다.
※ 소설을 통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기는 했지만, 법정 장면에서 연두가 조성모의 <가시나무>를 들을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장면은 가장 긴장되는 순간 중 하나였다. 생각해보면 그런 아름다운 노랫말의 노래를 틀어 놓고 그런 짓을 저지르다니. 토요일에 영화를 보고, 일요일 오랜만에 본 <나는 가수다>에서 자우림이 <가시나무>를 부르는데, 갑자기 영화 속 장면이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몸이 떨려왔다.
※ 소설이나 영화가 너무 끔찍하다고? 작가 공지영의 말에 따르면, 현실이 너무 끔찍해 소설을 쓰면서 오히려 순화시킨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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