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가치관을 인정하지 않는 건 교수나 란초나 마찬가지... ★★☆
만약 이 영화가 2009년이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제작해 개봉하는 영화였다면 아마도 ‘KAIST 사태를 모델로 만든 영화인가’했을 것이다. 그만큼 <세 얼간이>에서 다루는 얘기는 비단 카이스트만이 아니라 경쟁과 성공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한국적 교육 시스템, 이런 시스템 속에서 스펙 쌓기에만(!) 열심힌 한국 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뤘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현실적인 고민과 결부되어 있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은 인도 최고의 천재들만 입학할 수 있다는 명문 ICE. 경쟁을 부추기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만이 최고라고 가르치는 ICE에 입학한 란초(아미르 칸)는 입학 첫날부터 학교의 관행에 저항하며 자신만의 가치관대로 학교생활을 해 나가고, 기숙사 룸메이트인 파르한(마드하반), 라주(셔만 조쉬)와 함께, 학교의 골칫덩어리로 꼽히게 된다. 이 셋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총장 비루(보만 이라니)는 이들을 학교에서 쫓아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우연히 결혼식장에서 만나게 된 란초와 비루 총장의 딸 피아(카리나 카푸르)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다.
단적으로 말해 <세 얼간이>가 매우 매력적인 영화임은 부정할 수 없다. 우선 그 동안 우리가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인도 영화 특유의 매력이 그것이다. 인도 영화는 상영시간이 길다. 일반적으로 거의 세 시간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길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건 인도 영화가 종합 엔터테인먼트로서 관객에게 120% 만족을 주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깐 인도 관객이 특정 영화를 볼 때에는 영화에서 모든 엔터테인먼트를 즐기길 기대하고 있으며, 이에 부응하기 위해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애기다. 따라서 영화의 기본적인 흐름과 맞지 않을 수도 있는, 화려한 뮤지컬 장면이 뜬금없이 등장하는 인도 영화의 특별함은 나름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인도는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자국 영화 상영 비율(아마 98% 정도?)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뻔하고 단순한 반면 선하고 소박한 가치관, 인도 특유의 낙천적 가치관을 표방하는 이야기도 매력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주어진 과제만을 해야 하는 학생들, 그 과정에서 그저 기계의 부속품이 되어 버린 학생들과 끝내 경쟁에 밀려버린 학생들의 좌절과 자살이라는 현실 속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All Is Well (실제 원작 소설엔 없다고 한다)의 울림은 예상보다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인도의 가장 대표적인 스타, 무려 47살의 나이에 대학생 역을 맡았음에도 별로 이질감이 들지 않는 아미르 칸 등 배우들도 이 영화의 매력에 한 몫 한다. 같은 룸메이트들이나 조금은 얄미운 캐릭터인 소음기, 비루 총장, 그리고 란초와 사랑에 빠지는 피아 등의 캐릭터 하나하나가 영화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그럼에도 난 이 영화에서 재미를 별로 느끼지 못했으며 한편으론 좀 불편하기까지 했다. 내가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로는 우선적으로 영화에서 소개된 에피소드가 이미 리더스 다이제스트 유머란에 등장했을 법한 익숙한 에피소드였기 때문이다. 엄청난 예산으로 우주공간에서 사용 가능한 펜을 개발하는 대신 연필을 쓰면 되지 않느냐란 란초의 의문을 담은 에피소드, 늦게 제출했다는 이유로 시험지를 받지 않자 시험지를 마구 뒤섞는 에피소드 등이 그것이다. 반면 공학도로서의 천재성을 발휘하는 기발한 장면은 거의 보이지 않아 란초는 천재라기보다 그저 말 빨이 좀 센 오지랖 넓은 인간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영화의 재미를 담보하는 주요한 에피소드를 이미 알고 있으니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건 어쩌면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재미라는 차원을 넘어 영화가 불편하다고 느끼게 됐던 지점은 란초란 캐릭터 때문이다. 어쩌면 총장과 란초는 동전의 양면일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획일적인 가치관을 강요하는 총장과 그 반대로 각자의 자율적 선택을 강요하는 란초. 그 중간은 없다. 그것이 옳은 가치관이건 그른 가치관이건 강요한다는 점에서 둘은 이란성 쌍생아에 가깝다. 좀 더 얘기를 해 보면, 란초는 분명 잘못된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알고 있으며, 이로 인해 죽어가는 친구들에 대해 분노하기도 한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시스템의 개선을 위해 란초가 하는 게 과연 무엇인가? 친구들과 함께 항의 농성을 조직하는 것도 아니고, 혼자 일인 시위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총장에게 개인적인 불만을 털어 놓을 뿐이고, 주위 친구들의 개인적 변화만을 추구한다. 시스템은 변화됐는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총장을 감화시켜 졸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시스템의 변화와 무슨 상관인가? 그건 그저 자신과 친구들이 구제되었다는 사실만을 의미한다. 행동 없는 All Is Well은 무력해 보이고, 더 심하게 말하면 민중의 개혁의지를 억제하고 순치시키는 지배계급의 이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들게 한다.
덧붙여 하고 싶은 것만 하자며 친구들을 선동해 공부대신 여러 가지 것들을 하는 건 좋다.(물론 살다보면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은 현실 세계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친구들이 공부에서 꼴찌를 하는 것도 좋다. 이것도 어차피 자신이 선택한 것이니깐. 그런데 막상 그렇게 선동하고 다닌 본인은 천재적 머리로 졸업식에서 1등상을 수상한다. 이거 뭔가 좀 찝찝하지 않은가? 그나마 친구들은 다른 재능이 있거나 운이 좋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지만, 이건 영화니깐 가능한 얘기다. 란초가 소음기에게 행한 장난을 보자. 소음기는 조금 얄밉긴 해도 알고 보면 귀여운 악당 정도의 캐릭터에 불과하다. 그가 경쟁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는 그저 야한 잡지를 시험 전날 기숙사에 몰래 넣어두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가 가진 가치관의 문제도 그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사회의 문제에 가깝다. 그런데 란초가 소음기를 상대로 친 장난은 장난이라기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는 혐오스러운 학대 행위에 가깝다. 왜 란초는 자신의 룸메이트에게 하듯 다른 친구들의 인생철학을 바꾸기 위해서 진지하게 설득하거나 노력하지 않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164분이라는 오리지널 영화에서 무려 23분이 편집된 141분짜리 영화로 상영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미 표를 예매하고 관람하기 직전에. 김이 샐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아마 극장에서의 관람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한다면 극장에서 영화를 본 후, 어둠의 경로를 거쳐 오리지널을 다시 보았다. 따라서 지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세 얼간이>는 한국 개봉용과 오리지널이 조금 뒤섞여 있기는 하다. 아무튼, 앞에서 얘기했듯이 인도 영화의 매력은 시간이 조금 길지라도 그 안에 다양한 엔터테인먼트가 삽입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래서인지 몰라도 지루하다는 느낌을 별로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영화는 이미 어둠의 경로를 통해 알려질 대로 알려진 영화가 아니던가. 난 평소 인터넷에서 영화를 쉽게 다운 받아 보는 문화에 대해, 그리고 그런 문화를 즐기는 주위 사람들에 대해 노골적인 비난을 퍼붓곤 했다. 냉정하게 말해 좋은 영화를 원한다면 소비자로서도 합리적 수준의 돈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 얼간이>의 사례와 같은 경우를 접하면 왜 불법 다운로드 시장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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