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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이 주인공인 자신만의 역사가 있다... 써니
ldk209 2011-05-12 오후 3:25:18 1405   [0]
누구에게나 자신이 주인공인 자신만의 역사가 있다... ★★★☆

 

사실 <과속스캔들>은 제목부터 소재까지, 막장 코믹 드라마가 연상됐지만, 의외로(?) 웰메이드 코미디라는 결과물을 선보였고, 입소문을 타고 800만이라는 어마 어마한 흥행 스코어를 달성하기에 이르렀다. <과속스캔들>을 보면서 느꼈던 건 자극적 소재를 막장스럽게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 그러니깐 웃음을 위해 일부러 터트리기보다는 절제할 줄 안다는 점과 음악을 잘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또 하나 붙이자면 적절한 캐스팅.

 

강형철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인 <써니> 역시 전편의 장점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써니>의 주인공인 나미(유효정)는 남편,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과는 딱히 소통이 없지만, 여유 있게 살아가고 있는 강남에 사는 아주머니. 어느 날 나미는 우연히 병원에서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고등학교 동창 춘화(진희경)를 만나게 된다. 춘화의 마지막 소원은 학창시절 같이 어울렸던 써니 멤버들을 만나는 것. 나미는 고등학교 동창들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자신에게도 자신이 주인공인 자신만의 역사가 있었음을 기억해 낸다.

 

영화는 어른 나미가 써니 멤버를 찾기 위해 학교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 나미(심은경)가 전남 벌교에서 전학와 처음 학교에 등교하는 모습으로 바뀌며 과거로 돌아간다. 이후 영화는 몇 차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데, 주된 스토리는 과거가 이끌어가며 (일종의 회상 장면) 이를 기반으로 현재의 나미가 변화 또는 성장하는 모습을 담아낸다. 즉, 어른도 성장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영화의 배경은 대략 83년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전두환 정권 아래서 두발 자율화가 실시된 게 82년이었고, 교복 자율화는 이듬해는 83년에 실시되었다. 처음 두발자율화를 했기 때문인지 어지간해선 교사들이 머리 길이를 간섭하지 않았고 옷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써니>에서 보이는 컬러풀한 의상과 현재 학생들보다 더 요란한 듯 보이는 머리 스타일이 거리엔 넘쳐 났드랬다. 불과 몇 년 만에 두발, 교복 자율화가 사라지면서 고등학교를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고 다닌 세대는 우리 사회에서 나름 특이한(?) 학창시절을 보냈다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세대라면 특히 <써니>에 깊이 공감했을 것이다.

 

<써니>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억지스럽지 않은 웃음의 유발과 드라마의 조화라고 할 수 있다. <과속스캔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에피소드와 대사발로 이어지는 코믹함은 객석 여기저기에서 웃음을 터트리게 한다. 사실 <써니>의 과거 에피소드는 80년대의 학창시절을 다룬 다른 영화의 에피소드와 많이 겹친다. <라붐>의 주제가인 Richard Sanderson의 <Reality>는 영화 장면 그대로를 사용하고 있어 어떻게 보면 차용의 정도가 뻔뻔하다고 여겨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그것이 이야기 속에 잘 녹아 스며들어 딱히 거슬리지 않는다. 재활용의 좋은 예라고나 할까.

 

다음으로 음악의 절묘한 사용을 들 수 있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장식하는 Tuck & Patti의 <Time After Time>은 마치 이 영화를 위해 만든 노래인 듯 느껴지고, Cyndi Lauper의 <Girl Just Want To Have Fun>은 오래 전 보았던 그 노래의 뮤직비디오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로 활기차다. 그 외에 영화의 제목이자 써클 이름인 Boney M의 <Sunny>나 Joy의 <Touch By Touch> 같은 80년대 노래들이 시종일관 귀를 호강시키고 노래를 배경으로 흐르는 장면은 눈을 즐겁게 한다.

 

마지막으로 <써니>의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캐스팅의 힘이다. 아무래도 이야기의 중심이 과거에 있다 보니 심은경, 강소라 등 과거의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힘이 더 느껴진다. 여기에서 연출이 좋다고 평가해야 할 지점은 과거 현재 합쳐 무려 13명이나 되는 배우들이 떼로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복잡하거나 혼란스럽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되고 연결된다는 점이다. 연기와 관련해선 특히 심은경에게 눈길이 머문다. 웃음만이 아니라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연기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심은경의 연기는 그녀의 미래를 더욱 기대하게 만들며, <써니>에서 처음 만나게 된 강소라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써니>의 가장 아쉬운 점은 마무리다. 웃음과 눈물로 가슴 따뜻하게 이끌어져 오던 영화가 내리는 결론이 돈이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가치관이라니, 사실 좀 당황스러웠다.(아무리 이를 의리로 포장한다 해도 마찬가지다) 마지막에 이토록 감동을 말아먹을 줄이야. 누구나 돈 많은 친구 하나는 둬야 행복해지는 것일까? 그나마 엔딩 크래딧이 올라가면서 춘화의 무덤을 배경으로 친구들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장면이 결말의 당황스러움을 조금 상쇄시켜주기는 했다.

 

※ 개인적으로 또 하나의 아쉬움을 들자면 유효정이었다. 어린 시절의 심은경이 자라 유효정 같은 캐릭터가 됐다는 것도 연결이 쉽지 않고 전반적으로 연기가 묻히는 느낌이었다.

 

※ 영화의 마지막에 어린 시절 수지(민효린)가 성인이 되어 등장하는 배우는 일종의 스포일이다. 그런데 기대만큼의 효과는 없었다. 난 혹시 심은하 정도의 인물이 등장하나 싶어 기대했지만, 막상 등장한 배우(배우라기보다는 모델)는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다. 언뜻 기억이 나지 않아 “누구드라?” 고민하다가 엔딩 크래딧을 보고는 떠올랐다. 주위에 물어봐도 딱히 감흥을 받았다는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게다가 민효린과 닮지도 않았다.

 

※ TV의 영화 소개 프로그램이 영화의 관람 욕구를 불러일으키는지, 아니면 오히려 떨어트리는지 모르겠다. <써니>의 경우, 웃을 지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TV의 하이라이트 소개에서 대부분 나온 장면이라 웃음이 감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테면 어린 나미가 “당뇨가 쪼까 있는데요”라며 말하는 장면이나 써클 이름을 <소녀시대> 또는 <핑클>이라고 명명하는 부분들을 모르고 봤다면 극장에서 조금 더 크게 웃었을 것이다.

 

※ 영화를 보다가 떠오른 나이키와 관련한 일화. 대한극장에서 제니퍼 빌즈 주연의 영화 <플래시댄스>를 보았는데, 제니퍼 빌즈가 기도를 하기 위해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는 장면이 있었다. 이 때 카메라는 제니퍼 빌즈의 발을 비추는 데, 신발이 바로 나이키였다. 당시 관객으로 꽉 찬 대한극장에서 “와! 나이키다”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울려 퍼졌다. 그만큼 나이키는 당시 최대의 화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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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2011, sunny)
제작사 : 토일렛 픽처스, (주)알로하픽쳐스 / 배급사 : CJ ENM
공식홈페이지 : http://www.sunny201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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