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의 다운그레이드.. ★★☆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시대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중세의 한적한 외딴 마을은 20년 동안 늑대인간에게 제물을 바쳐왔다. 가난한 피터(실로 페르난데즈)를 사랑하는 발레리(아만다 사이프리드)는 부자인 헨리(맥스 아이언스)와 결혼시키려는 부모님을 피해 피터와 함께 먼 곳으로 떠나기로 한다. 그런데 떠나려는 순간, 언니가 늑대에게 살해당한다. 마을 사람들은 흥분해 동굴로 몰려가 늑대를 사냥하지만, 늑대인간 사냥꾼으로 유명한 솔로몬 신부(게리 올드만)는 마을주민들이 사냥한 늑대가 아니라 마을 사람 중 하나가 늑대인간이라고 주장한다.
이 영화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면 우선은 제목이 어떠하든지 간에 ‘빨간 모자와 늑대’를 다룬 동화를 원전으로 하고 있으며, 이는 많은 영화와 만화로 리메이크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원작 자체가 워낙 풍부한 텍스트를 담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적으로 2005년작 애니메이션 <빨간모자의 진실>은 이 동화가 얼마나 다양하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는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아만다 사이프리드라고 하는 배우에 대한 궁금증(!)이다. 큰 눈과 금발, 하얀 피부는 묘하게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있어서 왠지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빨간모자 동화>에 누구보다 잘 어울릴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결국 전자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후자는 충분히 만족한 결과물을 보이고 있다. 덧붙여 <트와일라잇>을 연출했다는 캐서린 하드윅 감독의 전력은 새 영화에 대한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는 지점인데, 다분히 우려스러운 결과물을 낳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 <레드 라이딩 후드>는 그저 배경만 달리한 또 다른 <트와일라잇>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이야기도 그러하거니와 분위기, 음악, 심지어 카메라 앵글조차 흡사하다. 이건 동화 <빨간모자와 늑대>의 변주가 아니라 또 다른 하이틴 판타지 로맨스를 만들기 위해 단지(!) 동화적 설정을 빌려왔을 뿐이다.
숲 속에 자리한 외딴 마을을 공중에서 하강하며 보여주는 영화 도입부는 꽤 근사하다. 도입부가 말해주듯 이 영화의 비주얼은 괜찮은 편이다. 화사한 색감, 마을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의 느낌, 거기에 외모가 아름다운 배우들까지. 특히 안 그래도 유달리 하얀 피부의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하얀 눈을 배경으로 빨간색 망토를 두르고 걸어가는 장면은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시각적 아름다움이 그저 하이틴을 지향하는 고움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이야기와는 동떨어진 별개의 세계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붉은 보름달이 뜰 때 늑대인간에게 물리면 역시 늑대인간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과 속출하는 희생자는 이 영화의 색채를 어둡게 물들인다. 그런데 화면의 화사함은 이런 어두움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영화의 분위기를 깨는 데 일조한다.
이러다보니 <레드 라이딩 후드>는 하이틴 멜로로서도, 늑대인간을 다룬 호러로서도, 스릴러로서도 어정쩡한 스탠스를 취한다. 이야기도 뒤죽박죽이다. 멜로 살짝, 호러 살짝, 스릴러 살짝, 이런 식이니 배우들의 동선도 애매하고 스토리 구조도 허술하다.(왜 늑대인간 입장에서 정말 죽어야 할 존재는 살려두고, 스스로 선택한 잘못이 아닌 존재는 죽였는가) 모두 취할 수 없으면 어느 하나라도 확실히 장악하는 게 좋은 전략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차라리 소녀팬만(!)을 잡고자 했던 <트와일라잇>의 전략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해줄만 하다.
배우들도 전반적으로 안습이다.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상대역인 하이틴 소녀 팬을 겨냥한 두 명의 남자배우들은 외모는 근사할지 모르겠지만, 기본적인 발성부터가 거슬릴 정도의 어설픈 연기로 몰입을 방해하며, 연기파 배우인 게리 올드만도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인다. 반면 운명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독립심 강한 소녀를 연기한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매력은 흘러넘친다. 만약 아만다 사이프리드 때문에 이 영화를 관람한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만족은 누렸을 것이다.
※ 이 영화를 팀 버튼의 <슬리피 할로우>같은 좀 더 고딕적이고 어두우며, 그로테스크하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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