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하이틴용 <트와일라잇>... ★★☆
먼저 얘길 하자면, 내가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전적으로 원작소설 구매 이벤트로 공짜 예매권을 얻었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는 예매할 수 없는 오로지 <아이 엠 넘버 포>만을(!) 볼 수 있는 영화 티켓이 주어지는 바람에 시간도 남고, 겸사겸사 보게 된 것이다. 소설을 읽었음에도 영화 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원작의 단점이 노정되지 않고 고스란히 영화로 이전되었으며, 어떤 면에선 더욱 확대되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정리해보자면, 주인공의 존재가 사람이든 외계인이든 뱀파이어이든 늑대인간이든 상관없다. 세상에 알리기 곤란한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대략 16세에서 17세 정도의 젊은이가 있으며, 이 젊은이에겐 자신을 위협하는 적이 존재한다. 그 젊은이는 사랑에 빠지게 되고 사랑하는 연인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이게 대체 무슨 얘기란 말인가. <아이 엠 넘버 포> <커버넌트> <트와일라잇> 기타 등등등. 여러 영화의 제목을 갖다 붙인다 해도 별로 상관이 없으며, 몇 가지 설정만 바꾸면 수많은 변주가 가능하다.
심지어 이런 영화들의 특징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그 특별한 능력이란 게 훈련이나 노력 없이 거의 우연히 또는 천부적으로 획득된다는 것이다. 이건 대단히 보수적이고 기득권적 가치관으로 보이기도 한다. 여의주가 그러하다. 이무기가 여의주를 얻어 용이 되기 위해 하는 것이라곤 오랜 세월 강이나 바다의 바닥에 누워, 그저 여의주가 입에 물리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훈련이나 노동 없이 얻어지는 여의주는 그래서 봉건사회 지배계급의 가치관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떠한 노력으로도 너희는 여의주를 얻을 수 없다. 그건 이미 용이 될 수 있는 이무기만이 선천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이 엠 넘버 포>의 원작 소설엔 주인공 존(넘버 포, 알렉스 페티퍼)의 능력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걸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의 보호자인 헨리(티모시 올리펀트)의 스케줄에 따라 꾸준히 훈련을 지속한다. 영화는 그런 부분까지 거세했다)
아무튼 몇 가지 설정만 바꾸면 동일한 이야기임에도 그 몇 가지 설정이 얼마나 매력적인가와 남녀 주인공의 매력지수는 이러한 영화가 계속 나오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멸망한 외계 종족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지구에 들어와 살고 있으며, 이들은 정해진 순서에 의해서만 죽일 수 있고, 이들을 멸종시킨 폭력적인 모가도어인들이 지구 침공을 위한 사전 단계로 로리언의 생존자들을 하나씩 찾아내 죽이고 있다는 등의 설정은 슈퍼맨을 연상시키는 지점이긴 해도 나름 매력적이고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부분이 있다. 거기에 키메라 등의 이름을 통해 신화적 요소를 접목시킨 것도 흥미를 자아내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영화적으로 그걸 전혀 살리지 못했다는 점이다. 로리언과 관련한 부분은 영상적으로 구현되지 않고(영화가 영상예술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출연인물들의 얘기로만 전달되고 있으며, 그것도 정리되지 않은 채 전달되다보니 중언부언한다는 느낌이다.
남녀 주인공의 매력지수도 <트와일라잇>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이건 외적인 매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로서의 매력이다. 아무리 하이틴용 영화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성의 없게 두 남녀의 정분(?)이 싹트는 영화는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별다른 에피소드도 제시되지 않고 동선도 애매모호하게 널뛰듯 흘러간다. 그러다보니 굳이 그걸 이해시키기 위해 로리언인에게 사랑은 한 번이라고 강조한다. 이처럼 지고지순한 사랑이라니. 넘버 포보다는 이 영화 속 캐릭터의 매력은 확실히 넘버 식스(테레사 파머)에게서 나오는 것 같다.
한편, 주요한 두 명의 여성을 비교해보면, 우선 사라(디애나 애그론)의 경우, 처음 등장은 대단히 독립적인 캐릭터인 듯 보였는데, 그저 보호의 대상에 머무르고 만다. 능동적으로 뭔가를 하지 않고 그저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연약한 존재로서의 여성, 반면 넘버 식스는 격렬한 전투를 마다하지 않는 중성적 매력의 여성이다. 이처럼 사라와 넘버 식스는 정반대의 캐릭터로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로망을 전형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트와일라잇>의 간지러움에 손발이 오그라든 하이틴 남성들을 위한 영화임에 분명하다.
※ 처음 TV에서 이 영화의 예고편을 봤을 때 여주인공인 디애나 애그론이 순간적으로 제시카 알바인 줄 알았다. 영화를 보면서도 확실히 비슷한 느낌이 난다.
※ 외계인들의 하체를 비정상적으로 늘인 건 존 트라볼타가 주연을 한 그 유명한(평점 낮기로) <배틀필드>의 외계인을 떠올리게 한다. 생각해보니 기본적인 설정도 비슷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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