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안개의 도시 시애틀을 배경으로 탕웨이의 표정을 담아내다... ★★★★
온통 멍이 든 얼굴로 시애틀의 한적한 주택가 골목을 휘청 거리며 내려오는 애나(탕웨이)의 모습을 비추며 영화는 시작한다.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감옥에 수감된 애나는 9년의 형기 중 7년을 보냈을 때, 어머니의 사망으로 72시간이라는 짧은 특별휴가를 허락받는다. 시애틀로 가는 버스에서 애나는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는 훈(현빈)을 만나게 되고, 둘은 애나의 짧은 특별휴가 기간 동안 인연을 이어나간다.
이미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선보였으며, 토론토 영화제 및 베를린 영화제 출품과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추>의 개봉은 계속 연기되었다. 이유야 당연히 흥행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사이에 배급사마저 변경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전화위복이라고 했든가, 당초 약하지 않을까 염려되던 현빈이 TV 드라마 <시크릿 가든>으로 대박을 치면서 사회에 소위 ‘현빈 신드롬’이 불었고, 이 신드롬이 결국 현빈 입대 전에 <만추>의 개봉이라는 결실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만추>의 개봉이 분명 현빈 효과 때문임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시사회 분위기로 봤을 때) 아마도 많은 여성관객들이 현빈을 보기 위해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물론 <만추>의 현빈도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결론적으로 말해 <만추>는 마치 탕웨이의 표정을 담아내기 위해 만든 영화인 것처럼 느껴지며, 현빈은 단지 탕웨이의 표정을 뽑아내기 위해 거들 뿐이다. (물론 거든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류담이나 노우진이 없는 김병만의 달인을 떠올릴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탕웨이의 얼굴을 스토커처럼 따라 다니며 하나하나의 표정 변화를 세밀하게 살피고, 대사보다는 그것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데 치중한다. 그렇다면 대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여기에서 이 영화가 매우 지루하다는 편견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외로 영화는 연출이나 편집에서 너무 넘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대중성에 대한 고려가 느껴진다. 우선 결론 부분의 롱테이크를 제외한다면 생각보다 컷 수도 많고 넘어가는 속도도 빠른 편이다. 그리고 7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의 인연을 담았음에도 다양하고 풍부한 에피소드가 흘러넘친다. 심지어 버스가 안개 자욱한 시애틀로 들어가는 장면은 마치 호러영화의 한 장면을 담아낸 듯 보이기도 한다.
훈과 애나, 애나와 훈. 둘의 관계에서 시계와 안개는 큰 의미로 다가온다. 훈과 애나가 처음 만났을 때, 훈은 애나에게 차비를 빌려준 대가로 자신의 시계를 건네준다. 훈이 애나의 손목에 시계를 걸어주는 순간은 둘의 첫 접촉(터치)이 일어나는 순간이고, 7년 동안 정지되어 있던 애나의 시간이 다시 흘러가는 계기가 된다. 손목시계는 둘 사이에서 몇 차례 건네지다가 애나가 감옥으로 복귀하게 되는 순간, 이 영화의 가장 가슴 아픈 순간에 홀연히 애나의 손목에 등장한다. 아니 손목시계가 있음으로 해서 그 장면이 가장 애달프게 느껴지는 것이다.
비와 안개의 도시 시애틀. 시애틀은 어쩌면 제3의 주인공이다. 시애틀의 안개는 그 자체로 둘의 사랑에 깊은 심연과 애처로움을 안겨다 준다. 애나는 감옥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훈과 함께 안개가 자욱한 시애틀로 들어갔다가 안개가 걷히자 혼자서 감옥으로 복귀한다. 안개가 의미하는 건 무엇일까? 안개는 곧 애나의 마음을 표현한다. 애나는 자발적 의지로 감옥을 벗어난 게 아니라,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돌발적 상황의 발생으로 수동적으로 벗어나게 된 것이다. 7년 동안의 수감, 무표정한 애나의 얼굴, 과자를 먹으며 눈치만 살피는 애나의 눈빛. 버스 운전기사의 ‘괜찮다’는 말에 겨우 용기를 내어 버스에 오르는 애나. 가족들마저 자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허둥지둥 대고, 남편 살해의 원인을 제공했던 남자와의 우연한 마주침은 애나를 더욱 힘들게 한다. 이러한 모든 혼란이 바로 시애틀의 짙게 드리워진 안개이며, 안개의 걷힘은 바로 애나가 혼란한 마음을 정리했음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깐 애나의 손목에 걸린 훈의 시계가 가슴을 애달프게 하는 것은 안개는 걷혔지만 그 순간이 바로 훈의 부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애잔하고 가슴 시린 로맨스 영화인 <만추>엔 매우 인상적인 몇 장면이 담겨져 있으며, 이러한 장면의 연결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아름답다. 하나. 어색한 가족들 사이를 빠져나와 애나는 7년 만에 닫힌 귀를 뚫으며 귀걸이를 하고,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시애틀을 활보한다. 마치 자유의 몸이 된 듯한 착각과 함께. 그러나 그 착각은 교도소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로 산산조각난다. 자신이 자유의 몸이 아니라는 자각, 옷과 귀걸이를 벗고 교도소로 다시 돌아가려는 애나, 그리고 그 앞에 돌연 나타난 훈. 알레르기로 가려운 귀를 신경질적으로 긁어대는 애나와 덧난다며 걱정해주는 훈.
둘. 닫힌 놀이공원에서 범퍼카를 타는 애나와 훈. 다른 두 남녀의 모습에 연극처럼 대사를 입히는 훈과 감정이입하며 눈물을 흘리는 애나. 갑자기 뛰기 시작하던 애나는 뜀박질을 멈춘 후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영어로 시작한 얘기는 어느덧 중국어로 변하고, 훈은 눈치껏 ‘하오’(좋다)와 ‘화이’(나쁘다)로 추임새를 넣는다. 애나가 비로소 마음을 열었음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비록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기적과 같은 순간이다.
셋. 예고도 없이 장례식장에 찾아온 훈은 애나의 예전 남자와 싸움을 벌이고, 싸움을 말리는 애나에게 훈은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끄집어낸다. 사실 훈은 애나가 얘기를 했음에도 이 남자가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중국어로 얘기했기 때문에. 그러나 두 남자는 본능적인 라이벌 의식으로 서로를 견제하고 급기야 싸움으로 발전한다. 수면 아래로 잠잠히 흘러가는 듯한 애나의 감정이 폭발하는 유일한 장면이다. 그만큼 폭발력이 있다. 영화에서 가장 코믹한 장면이 가장 격렬한 장면, 그리고 가장 절규하는 장면과 바로 맞닿아있어서 관객으로선 가장 곤혹스런 장면이기도 하다. (실컷 웃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진다)
넷. 감옥으로 복귀하던 버스가 짙은 안개 때문에 잠시 정차하고, 훈은 따라온 남자로부터 자신이 살인사건의 피의자로 몰렸음을 통고 받는다. 버스에서 잠을 자던 애나는 어느 순간, 안개가 걷혔음을 알게 되고, 손목시계의 존재와 함께 훈의 부재를 깨닫는다. 양손에 커피를 들고 훈을 찾아 헤매는 애나. 커피를 흘려가며 훈을 찾던 애나는 어느 순간, 동작을 멈추고 약간 당황한 듯한 표정과 함께 한 곳을 응시한다. 과연 애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훈이 연행되는 모습을 본 것일까? 아니면 달아나는 모습을 본 것일까? 아니면 경찰차를 보곤 훈이 떠났음을 직감한 것일까? 영화는 그 해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섯. 2년 후 훈과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 훈을 기다리는 애나. 화면은 왼쪽에 여백을 두고 그곳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는 애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잠시 후 애나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넨다. 애나도 훈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애나에게 중요한 건, 훈으로 인해 다시금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정상적으로 시간이 흘러간다는 사실, 바로 그 자체.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영화는 단적으로 말하자면 애나, 그러니깐 탕웨이의 표정을 살피는 영화다. 그만큼 영화에서 탕웨이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나 몫은 거의 전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탕웨이는 정말 ‘좋은 배우’다. 영화가 끝난 직후에 든 생각이다. 그저 ‘좋은 배우’라는 표현 밖에는 생각나지 않는다는 게 언어의 한계를 실감할 정도로 ‘좋은 배우’다. 애나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고는 거의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곰곰이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떠오르는 건 애나의 다양한 표정이다. 그 무표정 속에 담긴 슬픔, 기쁨, 호기심과 같은 감정들의 전달. 탕웨이의 무표정 속에 담긴 감정은 보는 관객에게 몇 가지의 상념을 동시에 전달한다. 거기에서 중요한 요소는 바로 탕웨이의 얼굴이다. 얼굴이 예쁘다는 말이 아니라, 그 나이의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얼굴의 자연스러움. 그 주름과 그 미소의 아름다움. 주사와 수술로 쫙쫙 펴버려 대부분의 한국 여배우들의 얼굴에서 보기 힘든 주름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만약 탕웨이의 표정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만추>는 아마도 아주 지루한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반대라면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 재밌고 흥미진진한 영화가 될 것이다. <만추>는 탕웨이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영화다.
※ 놀이공원 장면에서 등장하는 판타지는 보는 사람에 따라 확연하게 호불호가 갈릴 장면이다. <만추>에서의 판타지는 애나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가족의 탄생>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판타지보다는 덜 간지럽게 느껴졌지만, 여전히 간지럽다. 김태용 감독의 취향일 것이므로 다 빼자고는 못하겠지만, 조금만 줄이면 좋을 것 같다.
※ 탕웨이는 외모로만 봤을 때, 김옥빈하고 좀 닮은 것 같다. <만추>의 탕웨이를 대신할 수 있는 여배우를 생각해봤는데, 아무리 쥐어 짜 봐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만추>의 시나리오는 처음부터 탕웨이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 나중에 그나마 떠오른 게 <첨밀밀>의 장만옥 정도.
※ 72시간이라고 하지만, 영화를 보며 느껴지는 시간은 3일을 훌쩍 넘는 것 같다. 이건 영화적 단점이 아니라, 어쩌면 애나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거나 정지해 있는 것은 아닐까.
※ 아마도 사랑에 아파봤던 30~40대의 여성들은 현빈을 보기 위해 이 영화를 봤다가 탕웨이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극장을 나서게 될 것 같다.
※ 전반적으로 음악이 상당히 좋긴 한데, 초반부, 애나가 시애틀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나오는 기타 선율은 나로선 시애틀과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물감이 들었다.
※ 아는 지인 때문에 VIP 시사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 상영 직전, 감독과 배우가 인사하는 데 저 뒤에서 한 남자가 ‘현빈 멋지다’고 소리를 지른다. 돌아보니 홍석천 씨. 나중에 기사를 보니, 댓글에 홍석천 보고 더럽다는 의견을 다는 네티즌들이 있다. 왜 사람이 사람에게 멋지다고 한 게 더러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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