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주조가 흥미로운 퓨전 사극... ★★★
※ 영화의 결론이나 주요한 설정을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선 오랫동안 독립 영화 제작에 열과 성의를 다했던 청년필름(김조광수)의 작품이 이번 설을 통과하며 흥행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분명 축하할 일이다. 이번 설 대목을 노리고 개봉한 한국 대중 영화는 세 편, <글러브> <조선명탐정> <평양성>이다. 처음 <글러브>를 보고는 아무래도 이번 설의 승자는 <글러브>가 되지 않을까 예상했다.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와 함께 보는 가족 영화로서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선명탐정>과 <평양성>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첫 주 먼저 개봉한 <글러브>의 파괴력이 예상보다 약했기도 했지만, 의외로 재미 면에서 다른 두 편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세 편을 다 본 후 든 생각은 <글러브>는 초등학생, <평양성>은 중학생, <조선명탐정>은 고등학생의 느낌?
아무튼 <조선명탐정>은 조선 정조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퓨전사극이다. 영화는 조선시대에 찾을 탐(探), 바를 정(正)을 쓰는 탐정이라는 정5품 벼슬이 있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정조(남성진)는 공납비리 사건과 연관된 관리들이 의문의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자 김진(김명민)에게 탐정 벼슬을 내리고 수사를 명한다. 탐정은 우연히 개장수 서필(오달수)의 목숨을 살려주게 되고, 서필과 함께 열녀감찰 업무를 핑계로 적성에 내려가 공납비리 사건의 단서인 각시투구꽃의 비밀을 캐게 된다. 둘은 사건을 파고들수록 적성의 한객주(한지민)가 이 사건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을 품고 한객주에게 접근을 시도한다.
앞에서 잠깐 말했듯이 이 영화는 코미디 장르로서 나름 만족감을 준다. <음란서생>보다 더 노골적으로 현대에서 사용되는 각종 용어라든가 유행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든가 당시 지배층에 대한 풍자로서 현재의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볼 여지를 던져주는 것들도 딱히 나쁘지는 않다.
<조선명탐정>의 장점 중에서 특히 캐릭터 주조는 꽤 흥미로우며 캐릭터만으로도 후속편 제작에 나름 유리할 것이란 판단이었는데, 흥행까지 이어지면서 그 가능성은 거의 100%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캐릭터 중에선 그 동안 진지하거나 어두운 역할을 주로 맡았던 김명민의 새로운 시도가 상대적으로 돋보인다. 워낙 기존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잘 예상하기 힘들었는데, 김명민이 연기하는 허허실실 캐릭터도 의외로 매우, 대단히, 잘 어울린다. 오달수가 연기하는 서필 캐릭터는 기존의 오달수 캐릭터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덜 신선하긴 하지만 최소한 실망을 주지는 않는다.
마치 홈즈와 왓슨의 조화처럼, 머리 좋고 양반으로서의 체통은 지키려 하나 겁도 많고 소심하며 잔머리를 굴려대는 김명민이 연기하는 탐정 캐릭터와 적재적소에 등장해 탐정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서필의 조화야 말로 이 영화가 주는 재미의 대부분이며, 거기에 정체를 알기 힘든 팜프파탈적 매력을 뿜어내는 한지민의 변신도 영화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캐릭터의 흥미로움과 조화가 주는 코믹함이 이 영화의 장점인 반면, 추리 장르로서 빈약한 내러티브는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전반적으로 주요 인물들의 동선이나 감정선도 납득하기 힘들고, 심지어 일부 장면의 연결에 있어서는 불성실한 느낌마저 드는 경우도 있었다.
탐정과 서필의 만남은 우연인가? 아니면 서필의 의도적 계획인가? 우연이라고 하면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연으로만 점철된 보기 드문(!) 추리 영화일 것이고, 결론만 놓고 보면 서필의 의도적 계획이어야(!) 맞을 거 같은데, 그러한 단서는 전혀 주어지지 않는다. 우연한 만남이라면 서필은 어째서 탐정에게 자신의 정체를 끝까지 숨긴 것일까? 그것마저 계획된 것일까? 그렇다면 이 영화의 진정한 설계자이자 천재이며 주인공은 서필일 것이다.
추리 장르로서 <조선명탐정>에 대한 판단이 부정적인 건 기본적으로 이 영화가 별다른 추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탐정의 천재적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오프닝을 장식한 추리 에피소드(색맹)는 꽤 오래 전에 어디에선가 봤던 내용으로 개인적으로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거기에 추리란 기본적으로 의외성에서 재미가 나온다고 보는데, <조선명탐정>에는 그러한 의외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를 테면, 명탐정의 추리 방향은 대체로 일직선처럼 뻗어나간다.(반면 이야기는 너무 가지를 많이 친다) 조사해야 할 열녀가 적성에 있고, 적성 입구에서 각시투구꽃 농장을 발견하며(그리고 이 장소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고), 관리 암살에 사용된 대바늘은 오직 한객주만이 수입할 수 있는 물건이고, 엄청난 공납을 처리할 수 있는 인물도 한객주 밖에는 없다.
서필이 화살을 맞고 치료와 휴식을 취한 곳이 중요한 인물의 집이라는 것도 그렇지만, 시기적으로 보면 청탁까지 한 상황에서 일단 지켜봐야 할 시기에 죽이려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좀 의문이다.(겁만 주려 했다고 보기에도 아리송) 전반적으로 한지민이 연기한 한객주의 정체를 포함해 영화가 던져주는 여러 단서들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틀 안에 존재함으로서 확실히 <조선명탐정>은 추리장르로서의 매력보다는 코믹장르로서의 매력이 더 크게 와 닿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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