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치기는 홍콩영화가 오랫동안 심심찮게 써먹어온 소재다. 홍금보의 연출작 <제방소수>(1982), 두기봉 감독의 <참새>(2008)처럼 명장면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 하면 관금붕 감독의 <인재뉴약>(1989)처럼 그저 스쳐지나가는 장면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훔치는 장면이라는 것. 그러나 <천하무적>은 왕보가 사근의 돈을 소매치기 일당으로부터 ‘막는 것’이 서사의 목표이자 주요 볼거리라는 점에서 이들과 차별된다. 또한, 소매치기가 그간 길거리에서와 같이 넓은 공간에서 벌어진 것을 의식해서일까. 긴장감을 좀더 유발시키려는 듯 영화는 기차 안이라는 좁은 공간을 배경으로 선택했다.
전작인 <야연>(2006), <집결호>(2007)를 통해 다양하고 규모가 큰 액션을 선보였던 ‘중국의 스필버그’ 펑샤오강 감독은 이번에도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천하무적>에서는 훔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사이에 총 5번의 충돌이 일어나는데, 각각의 장면들이 제법 흥미롭게 그러나 서로 다른 분위기로 연출되었다. 열차 사이의 흡연구역에서 왕보와 두명의 소매치기 일당이 보여주는 면도날 액션 시퀀스는 <와호장룡>(2000)과 같은 무협영화를 떠올리게 하고, 왕보와 소매치기단의 두목 호려(유게) 사이의 ‘계란껍질 까기’ 대결은 주성치의 초기영화에서나 볼법한 유머를 연상시키며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또한, ‘열차 위에 서서 터널이 다가올 때 고개를 늦게 숙이기’ 대결은 영락없는 장 피에르 멜빌의 <형사>(1971) 속 ‘리스본행 특급열차’ 시퀀스나 제이슨 스타뎀의 <트랜스포터: 라스트미션>(2008) 속 열차액션 시퀀스의 변형이다. 수시로 이어지는 액션 사이에 채워 넣은 왕보와 왕려의 절절한 사랑과 티베트의 광활한 자연풍광은 긴장된 가슴을 잠시 풀어주고, 감동을 유도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무엇보다 <천하무적>의 핵심은 사근이라는 캐릭터다. 현실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순수한 사근과 그를 지키려는 왕보와 왕려의 노력은 감독이 희망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삶에 찌든 왕보의 얼굴과 꾸밈없는 사근의 얼굴을 종종 번갈아 보여주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종류만 다양하게 늘어놓은 액션,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악당 때문에 극을 감독의 의도대로 끌고 가기엔 힘겨워 보인다. 마치 밥상 위에 반찬의 종류가 너무 많아서 식단이 중식인지 한정식인지 양식인지 헷갈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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